어느 스포츠에나 심판이 있다. 축구에도 언제 심판이라는 제도가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1845년 영국의 이튼에서 벌어진 축구경기에 처음으로 심판이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처음부터 심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전까지 심판은 양팀에서 각각 한명씩 선발하여 상대편 골대 옆에 서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시간을 기록하고 분쟁에 대한 결정만을 하는 그야 말로 판사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레프리와 엄파이어의 차이
그런데 이때의 심판은 지금의 레프리(Referee)가 아니라 엄파이어(Umpire)였다. 지금 축구에서는 심판을 레프리(refree)라고 쓴다. 야구는 엄파이어(umpire)이다. 영어에 있어서 어미 -ee는 refugee(망명자)처럼 자기가 능동적으로 상황을 열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 요인으로부터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어미 -re, -er은 자기 스스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teacher(교사), pitcher(투수), trainer(조련사) 등이 그것이다. 영어 사전을 보더라도 레프리는 심판자의 의미보다는 조정자, 중재자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반면 엄파이어는 심판자로 정의된다. 야구보다 축구가 심판 판정에 대한 갈등이 많은 것도 이유일 것이다. 심판 갈등이 많은 축구에서 중재의 역할이 강조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심판의 강력한 권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심판의 카드이다. 그런데 이 레드카드와 옐로카드의 시작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때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케네스 조지 아스턴이라는 심판이 고안했다고 한다. 신호등의 색깔을 보고 고안했는데 결정적으로 196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 심판을 보다가 아르헨티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이 거친 플레이를 해 퇴장명령을 내렸는데 영어를 모르는 라틴이 계속 버티자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축구에서 심판은 항상 야유의 대상이다. 그래서 ‘축구 그 빛과 그림자’를 쓴 에두아르노 갈레아노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에서 유일하게 이의 없이 만장일치로 전원 찬성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주심을 증오한다는 사실이다. 항상 그에게 휘파람을 불어 대며 야유를 퍼붓는다. 그에게는 아무도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주심은 상복(검은옷)을 입어왔다. 누굴 위해? 바로 그 자신을 위해."
법보다 심판하는 사람이 중요
최근 K리그의 심판 판정문제들을 보면 갈레아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축구 심판은 레프리(중재)라도 잘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규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규칙을 운용하는 자가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또 하나, 법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법을 만들고 심판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정치인과 법관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중요성을 잊고 선거 때만 혹은 직접현실에 부딪혀야 비로소 생각한다. 권력은 각성된 사람만을 두려워한다.
제19호 10면 2007년 9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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