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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정창수ㅣ색깔있는 역사스케치

무슬림 여성 '아이샤'

색깔있는 역사스케치 [11]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성운동과 여성주의에 관한 이슈는 주요한 화두이다. 그중에서도 일종의 ‘타자’인 여성 내에서 종교, 인종, 교육, 빈부의 차이에 따라 이중소외의 현실이 나타나는 까닭에 무슬림 여성에 대한 관심이 더 고조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서구의 관점에서 일종의 호기심과 무슬림의 낙후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초기 이슬람은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보호정책’을 시도했었다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반도는 전형적인 유목문화지역으로써 남성중심의 사회였고 여성을 터부시하는 전통이 있었다. 여성은 부정과 오염의 원천이자 남성들의 성적대상으로만 간주되었다. 이슬람 이전 시대 여성들은 상속, 결혼 선택, 경제권 등의 권리가 없었으며 특히 여성 노예는 매매, 임대, 기탁, 선물 등의 형태로 물건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따라서 여아살해와 계모를 취하는 행위 등 악습이 남아 있었고 성욕과 생리중인 여성을 오염과 부정적인 힘의 원천으로 보았다. 무함마드의 이슬람을 통한 사회개혁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평등’을 실현하려고 하는 목적이었다. 당시 메디나의 유태인들도 믿었던 여성차별에 대한 미신은 무함마드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15세기가 흐르도록 타파되지 않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평소에도 “유대인 중 가장 뛰어난 여성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이고 무슬림 중 가장 뛰어난 여성은 카디자(첫부인)이다”라고 늘 말했다. 당시 그들의 이런 자세는 다른 종교와 달리 개혁을 추구하는 상징으로 여겨졌고 여성들은 환호했다.

더구나 이후의 정치인들은 여성 지도자를 탄압하기 위해서 없던 기억을 찾아내기도 했다. 무함마드 사후 20여년 후에 딸에게 권력을 넘기려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의견제시를 거두절미하고 여성에게는 권력을 넘기면 안 된다는 논리로 정식화한다. 물론 증인은 기록자 한사람뿐이다.

마치 제갈공명에 대한 유비의 삼고초려가, 그전까지 아무도 모르다가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죽고난 후 제갈공명이 유선황제에게 자신의 권력을 강조하기 위해 말한 것과 같다. 진실은 제갈공명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두려워한 여성지도자는 무함마드의 부인 12명 중에 유일하게 처녀의 상태로 결혼한 ‘아이샤’이다. 그는 탁월한 정치가로 무함마드 사후인 656년 칼리파였던 알리와 이슬람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낙타전투’를 치룬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패배한 후 정통성 때문에 그는 제거되지 않았지만 여성들의 정치참여 배제를 위한 구실이 되었다. 참고 있었던 여성차별을 위한 좋은 구실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쿠란에도 평등이 언급되어 있음에도 이슬람의 남성 권력자들은 지구상의 절반을 권력 경쟁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현재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려지고 있지만 이라크에 있는 한국인 인질문제, 그중에서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인질에 대한 문제는 이러한 배경에서 다시 주목되고 있다. 탈레반이 필요할 때에만 예언자의 이름을 빌어 여성의 보호를 말하면서 여전히 예언자 이전의 사고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척도일 수 있다.


정창수 역사기고가

 

제15호 12면 2007년 8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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