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정책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뉴딜정책(New Deal)이 대규모 공공건설사업을 진행해 실업자를 구제하고 대공황을 극복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위기가 오면 항상 뉴딜정책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뉴딜의 정식 명칭은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신정책)이다. 제목에서부터 빈곤계층에 대한 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건설이 중심이 아니다.
첫째, 금본위제를 폐지하며 관리통화제로 바꾸었고, 둘째, 산업부흥법과 농업조정법을 통해 공정경쟁과 노동자의 단결권을 인정하면서 최저임금 등을 보장하는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셋째로 연방임시구제국을 두어 극빈자를 구제하는 정책을 폈다. 마지막 넷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건설사업이다.
뉴딜정책은 건설사업이 아니라 자유방임에서 국가개입으로 경제시스템을 바꾸고 사회복지를 시작한 신경제정책이었다. 더구나 뉴딜정책이 미국경제를 살렸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1933년 시작된 뉴딜정책은 인플레이션을 포함한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 그래서 1937년 또다시 공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곧이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급속히 전시경제체제로 전환되었고 덕분에 유럽의 보급 창고가 된 미국은 빠른 속도로 경기가 살아나게 된다. 대공황 당시 실업자는 공업 노동자의 절반인 1천500만 명이었는데 1941년 당시에도 여전히 600만 명의 실업자가 있었다.
분명한 것은 뉴딜정책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사회복지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의 기준이다”라는 모토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설은 전체 도로의 10% 정도를 뉴딜의 건설사업으로 진행했을 뿐인데, 이것은 공공근로의 성격도 있지만 기업을 대신해 정부가 개입한 것이다. 건설사업을 대규모로 진행하고 있던 것을 계속 추진한 것에 불과하다. 별로 한 것은 없는 셈이다.
사회보장이 시작되고 공정노동기준법에 의하여 최저임금과 최고노동시간제가 정해졌다. 이후로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상관없이 확고한 제도가 되었다. 매카시즘도 어쩔 수 없었다.
뉴딜정책은 진정한 성과는 심리적인 것이다. 가난해서 잊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루즈벨트는 ‘노변담화’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당시 골수 공화당원들은 루즈벨트라는 이름조차 부르기 싫어 ‘그 사람’이라고만 불렀다고 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미국에서 가장 소외 받던 흑인 계층의 지지가 대거 민주당으로 옮겨 갔다. 남북전쟁 이후 절대 다수가 공화당을 지지했었지만 현재는 흑인의 90% 이상이 민주당에 투표한다.
현재 대통령 후보들이 뉴딜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건설사업으로 경제를 살린다거나 사회복지의 근간인 국민연금의 재정을 활용한다거나 하는 것은 뉴딜이 아닌 올드딜(옛 정책)에 불과하다. 오도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정책을 펴는 것은 결코 경제위기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제17호 12면 2007년 8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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