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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노무현 정부의 분열적 평화관

[시론]

 

지난 5월 14일 김태환 지사가 해군기지 건설동의 입장을 발표한 이후 도민사회에서는 해군기지 반대여론이 오히려 확장되고 있다. 적어도 도지사의 결정이 절차적 정당성면에서 잘못되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반대여론을 더욱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부당한 결정에 대한 반발은 천주교 사제들의 단식과 공식대응기구의 설치, 개신교 목회자들의 금식투쟁, 민주노동당 현애자 국회의원의 27일간의 노상단식, 시민사회단체들의 천막농성과 단식 등 첨예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심지어 찬성여론을 주도해왔던 경제계에서조차 절차의 투명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대두되었다. 해군기지 건설 최종후보지로 결정된 서귀포시 강정마을 역시 기지건설 결정 이후 오히려 많은 주민들이 반대운동에 동참하면서 조만간 마을전체가 기지건설 저항에 나설 태세다. 도민사회 일각에서는 김태환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요구도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이제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행정절차상으로는 이제 정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기지건설논란의 쟁점도 평화-안보에 관한 보다 본질적인 논쟁으로 발전될 전망이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는 기독교계 단체들이 모여 제주 평화의 섬을 기원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목회자들은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새로운 평화운동의 추진력’으로 만들어 가자고 뜻을 모았다. 이 보다 앞선 지난 3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 공식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도 성명을 통해 “동북아 군비 증강과 군사적 긴장의 완충 지대가 되어야 할 평화의 섬 제주도에 대규모의 군사기지를 신설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순”이라며 제주도는 평화지대로서 역할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생명평화를 지향하는 전국의 시민단체와 인사들도 제주도를 생명평화의 섬으로 지키고 가꾸기 위한 논의에 착수하고 있다.

제주도가 정부에 의해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된 배경에는 동북아평화체제 프로세스에서 제주도가 갖는 일종의 역할론이 작용하고 있다. 평화의 섬 과제 중 ‘동아시아 외교중심지 육성’, ‘주변국과의 협력체제 강화’, ‘국제평화기구 설립’ 등의 내용들은 제주도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화의 섬 지정이 국가차원의 의제를 동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중국을 겨냥한 전략기지를 제주도에 추진하는 것은 한반도를 동북아 주변국간의 군비경쟁 대열로 끌고 가겠다는 상징적인 조치로 비춰질 것이다. 실제로 중국관영 신화통신 등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수차례 이를 보도하며 급기야 ‘경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포럼 개막연설에서 “동북아 지역의 상호군비경쟁의 지속”을 걱정하면서 이의 근본적 해소를 위해 6자회담이 동북아 평화안보협력을 위한 다자간협의체로 발전해 나가야함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이 협의체는 동북아지역의 “군비를 통제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항구적인 다자안보협력체로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바로 한 시간 후에 열린 비공식 간담회에서 노대통령은 “무장과 평화가 같이 있는게 잘못이 아니다. 안심할 수 없을지 모르는 평화를 위해서도 무장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합리화하고 말았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분열적 평화관은 점증하는 미·일·중·러의 동북아 대결구도를 완화하고 균형자 노릇을 자처하면서도 결국 군사력 증강으로 한미군사동맹에 기초한 ‘힘의 균형론’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던 지난 2005년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에서 보여준 노무현 정부의 딜레마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과 동시에 추진되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이를 극명하게 대변하는 결정판이라 하겠다.

제주 평화의 섬이 지정되기 까지 지난 10여년 동안 진행된 평화의 섬 논의의 핵심은 바로 ‘비무장-중립화론’이었다. 그런데 해군기지 추진으로 이는 한 순간에 희석되고 말았다. 당시 이를 주창했던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단 한 마디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사이 평화의 섬과 관련한 논의는 관제화되고 근본취지는 왜곡된 채 표류하고 있다.

 

이에 제주도의 시민사회는 최근 도내 일부 지식인 층을 중심으로  평화의 섬 담론의 재생산과 이를 위한 실제 의제구성 논의에 들어가고 있다. 4·3이라는 힘겨운 역사적상처를 화해와 관용으로 해결하고 이를 승화시키는 차원의 소중한 성과로서 평화의 섬 선언과 관련해 더 이상 이를 분열적인 정부와 국가논리에 충실한 도 당국에 맡겨놓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이제 평화를 사랑하는 제주도민이 나서서 가르쳐 줄 것이다. 평화는 더 이상 추상의 가치도, 허명의 이상도 아니라는 것을.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제12호 14면 2007년 7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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