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는 1431년, 박연이 세종에게 장애인 처우개선을 주장하면서 한말이다.
장애의 사전적의미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고대사회에는 배제의 대상이었다. 신석기 시대에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의 머리에 구멍을 내었던 흔적도 있었고, 기원전 5세기경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적으로 진단, 치료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파르타에서는 장애인을 추한 인간의 표본으로 생각하여 장애인을 의식적으로 절멸시키려 했고 이는 장애인에 대한 고대사회의 편견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의학이 발전하면서 미신적 편견을 벗어나 과학적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결과 직업재활이 시작되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1975년 UN에 의해 장애인의 권리선언이 선포됨으로써 장애인의 인간적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종래의 수용시설 중심의 복지로부터 권리로서의 장애인복지의 형태로 변모를 가져오기 시작하였고 차별금지법 등이 제정되었다.
우리 역사는 좀더 독특하다. 삼국시대부터 사궁구휼이라는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맹인들을 위한 직업대책을 실시되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더 나아가 공존을 통해서 극복하려했다. 더군다나 명과학이나 관현맹인과 같은 점복과 주술자로서 공식적인 관직도 있었고, 이미 상당한 지위를 획득한 장애있도 있었고, 심지어는 구걸도 엄연한 직업으로써 존중받는 사회였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이미 600년 전에 우리나라는 명통시라는 시각장애인 단체가 있었고,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속의 장애인 단체였다.
세종 때 좌의정 등 최고의 권력핵심에 오른 문경공 허조(許稠:1369-1439)는 등이 굽은 구루병 환자로 속칭 곱사등이로 불리던 장애인이었고, 조선 후기 화가 최북은 한쪽 눈을 실명한 장애인이었다.
"장애는 개인의 특성이 아닌 개인과 사회의 관계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회의 선진성 혹은 성숙정도는 장애인에 대한 태도로 알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현재보다 조선시대가 더 성숙한 측면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위계질서를 강조했던 주자학자들이 그들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 조선후기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궁중에서도 의례적으로 행해졌던 점복과 독경이 축소 혹은 폐지되는 등 장애인들이 설자리를 잃었고,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비하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최근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정치인이 장애인의 낙태를 주장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장애는 신체뿐만 아니라 사고의 장애, 의사소통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있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이미 장애인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장애를 모르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진짜 장애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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