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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정창수ㅣ색깔있는 역사스케치

투기와 공무원

색깔있는 역사스케치 [18]

 

투기와 투자는 구별하기 힘들다. 남이하면 투기이고 자기가 하면 투자이기 때문이다. 로맨스와 불륜은 원래 구별하기 힘들다. 경제학자인 슘페터는 새로운 산업이나 기술이 만들어낼 장래수익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퍼지면서 과도한 자본이 집중될 때 ‘ 투기’가 주로 발생한다고 했다. 발전과정상 한번은 넘어야 할 고비로 본 말이다.  

아무튼 투기의 기록은 이미 로마시대에서도 발견된다. 당시 로마는 금융도 발당해서 ‘퍼블리카니’라고 하는, 지금의 주식회사 같은 것이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땅을 중심으로 투기행위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때의 투기꾼들을 그리크(Greek)라고 불렀다. 이는 로마사람들이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이었다. 그리크는 그리스 사람들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당시 투기꾼의 상당수가 그리스인이었기 때문에 마치 중세의 유태인들처럼 당시에는 그리스인들이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상업이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보가 빨랐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의 상류층은 그리스를 동경해서 교사부터 가정부까지 그리스인으로 둘 정도였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은 정보접근면에서 유리할 수 밖에 없었고 강한 공동체 의식속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로마 정부의 새로운 개발계획을 사전에 알아내서 땅투기를 하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 가장 큰 투기사건은 제국주의시대 네덜란드가 벌였던 ‘튤립 투기사건’이다. 1630년대 네덜란드는 절정의 국력을 구가하고 있었다. 스페인은 무력해졌고 네덜란드는 무역을 독점하였다. 당시 전세계에서 1인당 최고국민소득을 자랑하던 네덜란드는 호황을 만끽하였다. 그러나 과도한 부로 인해 부동산가격이 급상승하고 주식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이때 오스만투르크에서 전해져온 튤립까지 투기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튤립은 조그만 땅만 있어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튤립 한송이의 가격은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한 채 값까지 올랐고 이는 노동자 일년 수입의 20배까지 되었다.

하지만 거품은 언젠가는 꺼지는 법. 13년 후 시장은 붕괴되고 파산자가 넘쳐났다. 마침내 정부가 개입하여 혼란을 막았지만 후유증은 커서 15년 후에는 영국에게 무역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악어와 뱀이 우글거리는 플로리다의 땅 투기 사건 등 투기로 인한 부동산 폭등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황무지에 대한 투기가 잇따랐다. 대공황 직전의 광란의 주식투기는 부동산에서도 동시에 일어나 현금이 돌지 않아 대공황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이용해서 투기를 해서 부를 축적한 것이 적발되었다. 어떤 공무원은 14채의 집을 소유하기도 했다. 공직자의 본분을 망각한 이 사건을 보면서 공직자재산등록을 포함한 공직윤리의 기능이 강화되어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낀다.

정보가 있을 때 이미 그것은 투기가 아니라 투자가 된다. 눈앞에 이익이 있는데 누가 그 유혹을 벗어나겠는가. 개인만을 탓하면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통제하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창수 역사기고가

 

제23호 10면 2007년 10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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