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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시민사회

“사안의 양의성 놓치지 않는 시선 필요”

문부식 전 당대비평 편집위원

 



“일상적 파시즘 논의, 도덕성 회복운동 아니다”
“시민의 자율적 연대 통해 인간다운 사회 가능”

지난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역 문부식 씨가 입을 열었다. 한국 사회운동사의 결정적 획을 그었던 ‘부미방’사건의 장본인으로, ‘일상적 파시즘’에 경고를 보낸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에서 조선일보 인터뷰 사건으로 일각에선 변절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그는 현재 홍대 인근에서 ‘키 작은 자유인’이란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사형수 시절 수번을 아직도 이메일 주소로 사용하는 그를 만났다. /편집자


-지난 2005년 당대비평 휴간 이후 근황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년 3개월여전부터 카페를 꾸려가고 있다. 근 10년째 몸담은 출판·잡지 일을 접으며 개인적으로 반성적인 되돌아봄이 필요했다. 공적인 자리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동안 머리를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면 삶 속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카페 운영 전에는 일년 여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활을 했다.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나이 먹은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시선을 의식하며, 이걸 못 견디면 용기와 버틸 힘도 찾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전까지 일련의 사회운동 경험을 정리하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뭐, 거창하게 말하자면 ‘하방을 스스로 명’했다.

-사유의 시간을 가져서 그런지 편안해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일을 그만두게 된 과정 자체가 회사의 물적 기반이 없어진 것도 있지만 조선일보 인터뷰 건과 잇따른 비판에 정신적 데미지랄까, 내가 사회적으로 발언하고자 했던 것과 사회적 파장 사이의 괴리로 상당히 힘들었다. 이를 회복하고 스스로 다스리는 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조금은 편해지고 단순해져야 반성이란 것도 다른 차원에서 다시 볼 수 있지 않겠나.

“스스로 하방을 명했다”

-말 나온 김에, 2002년 조선일보 인터뷰로 ‘성찰을 하려면 조용히 하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 당시 상황을 묻고 싶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조선일보 인터뷰와 동의대 사건 등에 대한 일련의 기고 간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었다. 인터뷰 건의 경우 되돌아보면 발언의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형식의 문제로 논란이 확산되는데 불만도 없지 않았지만 한사람의 사회적 발언이라는 게 어떤 지면을 통해 소개됐을 때 또 어떤 사회적 반향 영향 미친다는 점 고려했다면 썩 현명한 것은 아니었다. 역사문제연구소를 통해 내 책이 나올 즈음 토론회가 있었고, 그 자리에 참석한 유일한 기자였던 한겨레와 조선일보 기자 중 한겨레 기자가 관련 기사를 먼저 올렸다. 이 후 조선일보 기자가 추가 취재를 했다. 정확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응했던 인터뷰였다. 기획되고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이후 기자의 책임을 묻기보다 내 문제라고 발언한 게 더 자극을 던진 것 같다. 조선일보를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책임을 돌려 면죄부를 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지금 와서 자기 변명하듯 말하는 것도 좀 그렇다.

동의대 건의 경우엔 민주화운동의 내부적 성찰 과정을 이야기 한 것이었다. 당시 민주화운동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가 조금 더 사실관계와 진상규명 쪽에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생명이 죽어간 사건에 좀 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입장이었다. 진영론적 사고로 일방적 자기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견해와 입장은 가질 수 있지만 사실에 접근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그 당시 5·3동의대 사건 홈페이지에서 기념 마라톤대회를 연다는 것을 보고 정서적 충격을 받았다. 비슷한 아픔을 경험한 나로선 조금 더 겸허한 성찰적 태도였다면 더 많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경찰관이 죽은 이유로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의 도덕성을 근원적으로 비판한 것처럼 여기진 것은 오해다. 발언이 공격적으로 비춰져 당사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고,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그래야 하겠지만 그 사건이 어떤 식으로 접근돼야 하는지 솔직히 지금도 생각의 차이는 없다. 심지어 변절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적을 이롭게 했다’는 다분히 진영론적 사고에 대해 차분한 논쟁이 성립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정치적 교환가치로 운동 사유화

-‘부미방’ 사건의 또 다른 주역인 김현장 씨가 최근 박근혜 전 후보 지지선언을 하는 등 과거 운동진영의 급속한 우경화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또 뉴라이트나 비판을 받고 있는 여권 내 386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씁쓸하게도 조선일보 인터뷰와 기고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김현장 씨 지지선언을 보며 나를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그의 선언은 나도 충격적이었다. 정치시장의 교환가치로 만들기 위해 과거의 운동경험을 사유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형선고를 같이 받은 사람의 개인적 선택을 뭐라 하는 것은 그렇지만 한나라당 당사에서 공개적인 기자회견까지 벌여야 했는지 아쉽다.

뉴라이트도 일종의 시민운동을 가장한 정치운동인데, 과거 민주화운동을 공격함으로써 자기 정당화를 얻는 방식, 사회적 설득과정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는 한계가 있다.

소위 386의 행보는 광속의 개발화가 이뤄진 한국적 근대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개인적 가치보다 집단적 가치를 앞세우는 군사주의 문화가 이들에게도 내면화 돼 있는 것 같다. 정치권의 보스, 서열화, 계보 등이 충격이 아니라 쉽게 동화할 수 있는 익숙한 조건이었다.

-당대비평 편집위원 당시 ‘일상적 파시즘’을 논하며 야만의 시대에 진보의 성찰을 촉구하는 지속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성찰의 노정은 계속되는 것인가.

▲‘넌 뭐냐’는 정체성의 질문 앞에서 언제부터인가 어설픈 인문주의자 혹은 인문주의의 실현을 꿈꾸는 자라고 말한다. 비평(criticism)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논평 혹은 굉장히 이론지향적으로 읽히지만 실은 현실에서 사안의 양의성을 놓치지 않는 시선이라고 본다. 맑스 철학에 입각해 보더라도 생성-발전-소멸 과정을 거치는 사물의 긍정과 부정의 면을 동시 봐야 한다. 아무리 정당성을 가진 가치를 주장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집단 실천에서 내포한 여러 모순을 제대로 들여다 볼 때 그 주장도 건강해 질 수 있다. 특히 비평은 이를 위해 가능한 지적행위이고 사회적 실천행위라고 봤다.

“나는 어설픈 인문주의자”

 

너무 거창하게 말한 것 같다. 비평적 자세가 아닌 그냥 어설픈 인문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인간다운 사회, 인간적인 조건을 끊임없이 묻고자 한다. 일상적 파시즘 논의는 운동권 비판이 아니라 사회 전반, 이를테면 홍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그렇게 자유롭다가도 선후배 관계 속에 쩔쩔매는 우리 사회를 볼 때 한 사회가 권력이 교체된다고 좋은 사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촘촘히 규정된 집단화된 혹은 일련의 군사주의적 질서 같은 서열체계와 같이 바닥에서부터 익숙한 것들을 바꿔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바탕으로 한 시민의 자율적 연대를 통해 인간답고 건강한 사회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일상적 파시즘 논의는 한계가 있다. 주로 겨냥하는 반공규율사회, 군사주의적 사회문화에 대한 비판과 집단과 개인의 내면 성찰 등이 ‘부드러운 야만’이라는 첨예화된 신자유주의 자본의 시대에 대응하는 풍부한 대안적 사유, 실천의 논리체계를 갖췄냐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그 제기는 당대비평 때 시작되고 지금도 일정부분 시민사회에 유의미한 문제제기다. 반면에 일상적 파시즘 논의가 마치 개인의 도덕성 회복운동처럼 가자는 것은 아니다.

진지론적 관점이 필요하다. 기동전, 타격전, 가두전 중심의 운동만 있는 게 아니라 지배하는 부르조아 헤게모니 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그람시의 진지전처럼 새로운 변화를 향한 대체작업들이 시도돼야 한다. 민중과 통일만 가지고 정당성을 부여받고 중앙권력을 교체한다 해도 사회적 관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회·문화적 변화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지난 시기 성찰과 소회에 이어 현 시대를 바라보는 문부식 씨의 이야기는 다음호로 이어진다. /편집자

 

이재환 기자

 

제20호 3면 2007년 9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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