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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성찰없는 희망은 희망일 리 없다

[시민운동 2.0]

 

올 대선, 시민사회는 희망인가. 정대화 씨는 '희망'이라고 확신했다. 정치학 교수, 시민운동가 이제 정치인 타이틀까지 거머쥔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비서실장. 그는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말했을까.

무엇을 위한 '미래구상'인가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면서 시민사회의 일대일 지분을 약속받고 범여권과 통합을 이뤄낸 '성과'를 두고 질책과 지지 의견이 분분하다.‘미래구상’이 정치운동의 장기적 비전을 가진 단체이기를 바랐던 필자로서는 정당의 길을 걷고 있는 현 상황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특히 미래구상에 참여한 당사자로서 바라본 정대화 씨의 '희망'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미래구상은 "열린우리당의 개혁 실패와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시점에서 범 진보개혁세력의 연대가 절실하다"는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그렇다고 미래구상의 성격을 '반한나라당'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이 현실성 없고, 열린우리당 세력을 대안으로 삼을 수 없는 조건에서 미래구상이 내건 기치는 '반수구 반양극화연대'였다. 범 진보개혁세력의 연대는 무엇보다 시민사회를 비롯한 '사회운동의 위기'를 내부로부터 점검하고 자기반성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했던 사정과 관련된다. 즉, 만일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의 위기감을 조성하여 반사이익을 보고자 한다면, 아무런 대안 없이 사이비 개혁세력에게 집권을 또다시 연장해 주는 결과를 낳을 게 분명하다는 예측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이었다. 그렇다면 발족 취지와는 무관한 범여권과의 통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초창기 정체성 논의에서 해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정체성 논의는 정치체로 간다면 정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운동체로 간다면 진보개혁세력의 연대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는 의미였다. 결론적으로 미래구상은 논의를 매듭짓지 못했다. 정치를 하려는 이들과 운동을 도모하려는 이들의 동상이몽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민주주의의 실종'에 있었다. 논의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집행 체계에서도 민주적 의사결정이란 없었다. 결국 몇몇 인사들은 ‘미래창조연대’를 통한 정당 결성을 합의없이 추진하였고, 4대 개혁 입법을 망쳐먹은 세력과 함께 '한미FTA 연내 처리 유보'라는 기만적 결론에 이른다. "진행 중인 한미FTA 협상을 즉각 중지하고 개방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정신 분열'을 일으킨 것이다.

그럼에도 정대화 씨는 "시민사회의 지분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했음을 강조하며 "시민사회의 참여를 수혈이나 들러리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설령 '대선 승리'가 실패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정치학자로서 행한 '정치적 실험'의 결과는 그에게 엄청난 자산을 남겨줄 것이다. 비록 일부에 불과하지만 시민사회가 모아낸 소중한 사회적 지분마저 정치적 기득권 확대를 위해 마음대로 바꿔치기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시민사회, 냉철한 판단 절실

이번 창당은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이거나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가 아니라 시민운동 출신 몇몇 인사들의 정치 입문으로 보아야 옳다. 시민사회 진영이 쌓아 온 민주주의의 성과가 몇몇 정치인들의 행보에 활용되는 것은 온당치 못하며,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정작 시민사회는 미래구상을 자신들의 대표 선수로 인정한 바 없다. 그렇다면 통합신당 내 '시민사회' 출신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시민사회'를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시민사회가 그들의 '이름 팔아먹기'를 단체의 이름으로 굳이 반박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한다면, 나아가 신당 그룹에게 달리 기대하는 바가 있다고 한다면, 정치권의 2중대 의혹이나 운동의 위기 타령을 넘어 궤멸적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시민사회의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시민사회는 만시지탄의 후회 대신 지금 분명하게 돌아서야 한다. 성찰 없는 '희망'이 희망일 리 없는 까닭이다.

 

 

김세진 전 미래구상 활동가

 

제18호 19면 2007년 9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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