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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북유럽과 유럽연합의 평화관계론

대선주자에게 보내는 평화담론[7]

 

평화경제에 성공한 사례

앞에서 설명한 간디·마르크스·주역을 통한 평화경제의 관계론은 이상적이고 고답적(高踏的)인 느낌을 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세상, 전갈의 늪지대를 연상케 하는 세계화 시대의 국제정세에서 이상적인 평화경제 관계론이 적용될 여지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위의 평화경제 관계론이 통용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경제의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성공한 사례는 있다. 국가별로 보면 덴마크와 코스타리카가 여기에 해당되고, 국가군(國家群)으로 보면 북유럽 나라들과 유럽연합(EU)에서 성공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덴마크의 평화경제

덴마크의 평화경제에 관하여 요령 있게 설명한 요한 갈퉁의 저서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북유럽의 패권을 에워싼 프러시아와의 전쟁(1864년)에서 패배한데 이은 유틀란트 반도 남부의 할양을 계기로 덴마크 국민들은 패권전쟁의 잘못을 깨닫고 ‘밖(해외)으로 확장하지 않고 안(국내)을 잘 가꾼다’는 ‘내발적(內發的) 발전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김상택 기자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은 지난달 20일 한미연합사 전쟁지휘소 앞에서 을지포커스렌즈 연습 중단과 평화실현 촉구 반전평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에 착안한 엔리코 달가스는 다수의 빈농을 조직했으며, 1866년에 히스 협회를 설립하여 유틀란트 반도 북부의 황무지에 나무를 심었다. 히스 밖에 자랄 수 없는 100만 에이커의 황무지는 풍요로운 삼림·농경지로 변했다. 그 결과 비가 많이 내리게 되어 기후가 온화해지고 토양이 비옥해졌다. 풍부한 유기질의 토양은 식물을 건강하게 만들었고 이윽고 동물·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또 협동조합 운동에 의한 경제번영이다. 원래 이 지역은 소농민(小農民)이 많은 토지이었으나 1870년이 되자 이 지역의 경작농민들이 러시아·미국의 대규모 경영과의 국제경쟁에 패배하여 곤경에 빠졌다. 곤란에 직면한 소농민들은 1882~1899년에 700개의 낙농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고립된 경작농민에서 협동조합형 낙농 농민으로 탈바꿈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국내 낙농 생산액의 70%를 지배했을 뿐 아니라 영국의 유제품(乳製品) 시장을 지배하는 등 발군의 국제경쟁력을 갖췄다.

경제적 자립 기반 구축

이러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소농민·도시서민을 개명적(開明的)이고 진보적인 시민으로 기르기 위한 평생학습 운동이 꽃을 피웠다. 원론적인 진보파 교육가인 그룬트비의 영향 아래에서 ‘민중학교’가 각지에 개설되어 학생수가 1866년의 1천명에서 1914년에 8천명으로 늘었다. 그들이 (농민을 모체로 하는) 좌익정당을 약진시키는 지주가 되었다.

좌익정당과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민주당이 낙농동맹을 결성한 뒤 1901년에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덴마크를 ‘평화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복지국가’로 바꿨다. 이 덕분에 덴마크는 빈부의 격차가 비교적 적으며 연대감(連帶感)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곤란할 때 일수록 민족의 진가가 시험받는다. 1941년 덴마크는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러나 가혹한 점령 아래에서도 반(反)유대주의를 고취하는 친(親)나치 세력은 거의 뿌리내리지 못했고, 덴마크에 있던 8천500명의 유대인들이 숨어 지내다가 그중 9할이 이웃의 중립국가인 스웨덴으로 도망쳤다.

2차 대전 말기에 노르웨이와 함께 (독일군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는) 비폭력 저항 운동이 장대(壯大)한 규모로 전개되어 점령 지배를 와해시켰다.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는 (미국의 준 식민지 국가인) 파나마와 (미국에 의해 혁명이 좌절된) 나카라과의 틈바구니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스럽지 않았다. 미국의 개입으로부터의 자유가 평화를 약속해주는 제3세계 나라들과 거의 비슷한 국제적인 환경을 지닌 코스타리카. 이러한 코스타리카가 ‘자주(미국의 입김으로부터의 자유)에 의한 평화-평화경제’를 구가한 내막을 알 필요가 있다.

코스타리카는 평화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간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838년 중남미 연방에서 탈퇴 △1890년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완전 자유선거 실시 △1948년 6주간의 내전. 내전 종결후 군대의 폐지를 선언 △1949년 11월 평화헌법 시행 △1955년 여성에 의한 투표 개시 △1980년 유엔 평화대학 창설 △적극적인 영세 비무장 중립 선언 △아리아스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

앞에서 보듯이 코스타리카는 민주주의, 평등, 평화를 위한 행진을 계속해왔다. 그 중에서도 스위스처럼 영세중립국을 선포한 것이 이채롭다. 영세중립의 대명사인 스위스는 실제로 무장국가이며 최근에 유엔에 가입하면서 보통국가로 되었다. 이와 달리 코스타리카는 비무장 영세중립의 원론을 철저하게 지키며 군대를 폐지했다.

마르크스와 주역의 평화경제

평화의 유력한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 스스로 ‘고한노동’(苦汗勞動)의 성격을 불식시킬 수 없는 ‘labour’를 ‘제작·창작·창조활동 내지 유희의 뉘앙스를 포함한’, ‘Work’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평화를 구가할 수 없다. 필요노동(필요노동 시간)의 극소화와 자유시간의 극대화를 통하여, 즉 labour의 극소화와 Work의 극대화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때 마르크스 방식의 평화경제가 가능하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labour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닌 자유롭게 각기 개성적인 제작-창조활동(Work)에 흥겨워하는 ‘평화의 나라’에서 평화경제를 수립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고타강령 비판’에서 “공산주의 사회의 보다 높은 단계에서 개인이 노예와 같이 분업에 의해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고 이에 따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소멸된 뒤 노동이 단지 생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제1차적인 생활욕구로 된 뒤,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증대하고 협동적인 부(富)가 모두 샘처럼 분출하게 된 뒤-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좁은 지평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기의 깃발에 각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각 사람에게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쓸 수 있다”고 밝히면서 협동적인 부에 의한 평화경제를 예견한다. 이 협동적인 부가 샘처럼 분출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분업노동(특정한 직업)이라는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데, 그러한 노동이 아닌 필요에 따라 소비 물자를 분배받는 사회가 가장 평화로운 사회이다.

‘labour’를 ‘Work’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를 정(正)-반(反)-합(合)의 유물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평화경제를 예견했다. 이와 달리 동양의 사고체계를 대표하는 주역(周易)은,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의 변증법적인 순환을 나타내는 대대관계(對待關係)에 관심을 갖는다(대대관계는 상반하는 타자를 배제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존재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로 요구하는 관계로서, 주역의 64괘에 대대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생산관계 모순’에서 ‘모순’은 서로 배제(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배제하는 생산관계,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를 배제하는 생산관계)하고 2항 대립(부르주아지라는 항(項)과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항이 대립함)하는 관계이다. 그러나 주역의 음양(陰陽) 개념은 ‘2항(음과 양의 2항)이 대립하면서도 상보적인 대대관계’를 강조하는데 특색이 있다.
이를 평화경제와 연결 지어 말하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2항 대립 속에서 평화경제의 가능성’을 마르크스가 제시하는데 비하여 주역의 대대관계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2항이 대립하면서도 상보적인 평화경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주역의 대대관계

여기에서 후자(주역의 대대관계 속에서 평화경제의 가능성을 발견함)에 주목한 김경동 교수는 ‘역경의 원리와 노사관계의 사회화’라는 논문에서 ‘대대관계에 의한 노사 평화’를 논술한다. “노사관계라는 것이 가장 원초적인 수준에서부터 근로자와 사용주(종업원과 경영자)의 양분관계이며, 그것이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인 음양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둘은 서로 하나가 없이는 존재이유가 없음으로 해서 상호보완적, 호혜적인 관계에 있는 동시에 그 관계는 본질상 갈등적이고 모순을 내포하는 것이다. 노사관계가 보기에 따라서는 그 나름의 성격을 지니는 것임에 틀림없겠으나, 그것이 원초적으로 음양적 변증법의 관계라는 인식은 매우 긴요하다...역경의 태극원리를 노사관계의 맥락에서 되새겨 보면 현실적으로 유용한 시사점이 분명히 있다. 근본적으로 갈등성향을 띤 노사관계 속에서 근로자나 경영자가, 정치적, 경제적 혹은 기술적인 측면의 이해관심의 그 어느 영역에서든지, 어떤 한계를 넘어 스스로를 주장하고 내세우고 이득을 얻으려 하고 권위를 독점하고 하는 따위의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지혜가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극히 미묘하고 불안정한 노사관계 체계의 균형이 깨뜨려지게 되기 때문이다. 노사관계의 체계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조화와 평화를 이룩하려면 그 체계의 참여자들 사이에는 갖가지 차원에서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하나의 움직이는 균형으로서의 노사관계 체계 속에서 그 어느 쪽도 한계를 넘어 뻗어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그 원리이다.”(노사관계의 사회학, 서울, 경문사, 1988. 102·105쪽)

노사평화의 계기 마련

위와 같은 김경동 교수의 대대관계에 의한 노사평화가 평화경제로 이어지는 계기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지만, 노사평화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이러한 계기를 발견하기 어려운 측면이 상존한다.


김승국 평화운동가

 

제18호 14면 2007년 9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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