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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단체에는 ‘성소수자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소모임이 있다. 대학생과 일반 직장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또 주로 성소수자들이 모여 활동한다. 그리고 성 소수자 권리에 관심 있는 이성애자들도 있다.
이 모임이 결성되고 한 1년이 지났을 즈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모임에 참여하는 이성애자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10명 남짓 되는 작은 모임이지만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동성애자들이 자기들끼리 익숙한 용어로 또 분위기로 모임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 모임에서는 이성애자들이 소수자였고, 일반사회와는 반대로 동성애자들이 일반사회에서 느끼던 소외감이나 차별을 이성애자들이 받게 된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항상 소수라서 차별받는다며 토로하더니 너네들은 왜 모임에서 소수자인 이성애자들을 소외시키냐 라고 내가 물었고, 동성애자 회원들은 순간 말을 잃을 정도로 당황해 했었다.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의 입장도 다수자의 입장도 될 수 있다. 새로운 직장을 가고 새로운 모임에 나갈 때마다 우리는 소수자가 된다. 그리고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소수자는 낯설음에서 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또 다수자는 새로운 소수자에 대해 이질감에서 오는 불편함을 가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다수든 소수든, 익숙한 것이든 낯선 것이든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이다. 그리고 함께 가기 위해서는 다수가 소수에 대해 특별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성소수자모임에서 일어난 일처럼 특별히 혐오주의가 아닌 이상 사회의 많은 차별과 인권침해는 의도하지 않게 일어난다. 바로 특별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FTA 질서가 비판받는 것도 개발도상국과 각 나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전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배려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공정할 수도 자유로울 수도 없다.
그리고 앞서 성소수자모임에서 일어난 일처럼 특별한 배려는 생각만으로 그리고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배려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존중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의지가 필요하고 학습이 필요하다. 인권을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인권교육이 일천한 우리나라에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