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人/작은 인권이야기

‘쌀’을 사야 하는 돈은 ‘용돈’이 아니다.

작은 인권이야기[2]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모습.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애써 외면해버리고 싶었던 그 풍경에 언제부턴가 익숙해지고 말았다.

폐지를 줍는 경쟁자가 많아지고, 할머니·할아버지들은 폐지가 쌓이는 지하철 안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키가 작은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승객들의 눈치를 살피며 의자를 딛고 종이를 내렸고, 어떤 분은 집게를 사용하셨다.

그런데 참 많이도 불편했나보다. 승객들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던지 아니면 서울메트로측의 눈에 거슬렸는지 서울지하철 1~4호선에서는 무료신문 수거행위를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메트로는 이미 질서기동팀을 투입해 무료신문 수거자 집중 단속을 펼친 결과 1~4호선에서만 무료신문 수거자가 191명에 달하고, 이들은 대부분 60~80대의 노인들이며, 1인당 50~60kg정도씩 수거해 kg당 70원에 판매해 ‘용돈벌이’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용돈[명사]:개인이 자질구레하게 쓰는 돈. 또는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

이처럼 용돈이라는 것은 길을 걷다가 출출해서 핫바 하나 사먹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최저생계비에 아등바등 거리며 휜 허리 편히 피지도 못하는 방에 사는 독거노인이 한두 달 동안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쌀을 사야 하는 데 사용될 때에는 용돈의 개념이 아니다.

최대 60kg를 모아 kg당 70원에 팔아 번 4천200원은 더 이상 용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돈인 것이다. 하루에 4200원씩 한 달 내내 지하철을 휘젓고 돌아다녀도 명품가방 한 개 값도 안 나가는 12만6천000원.

수많은 농민과 노동자·고 허세욱 열사의 목숨과 맞바꾼 한미FTA로 인해 한국 자동차 100대 팔릴 것이 110대 팔렸다고 해서 승객들에게 불편만 주는 저 노인들의 주름진 손에 12만6천000원이 쥐어질 일은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차렷열중쉬엇 만 잘 하면 질서가 잡힌 세상인줄 알았던 나는 이 ’질서’라는 이름하에 생존수단을 가차 이 빼앗아가 버리는 모습에 화를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헌법은 현실 앞에 무기력하다. 헌법 제34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신체장애인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두 눈으로 본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출근길 지하철역 안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버린 음식과 버린 음료를 정말 맛있게 먹고 트림을 하는 정신지체장애인이 어떤 종류의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주가는 상승세를 치닫고 있다는데, 왜 폐지를 줍는 경쟁자가 늘어만 가는지…. 우리는 다 아는데, 서울메트로는 모른다. 국가도 모른다. 진정한 ‘무식’의 결과는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한테 되돌아온다. 참 억울한 세상이다.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사업자 정보 표시
시민사회신문 | 설동본 | (121-865) 서울 마포구 연남동 240-6 504호 | 사업자 등록번호 : 105-20-38740 | TEL : 02-3143-4161 | Mail : ingopress@ingopress.com | 통신판매신고번호 : 서울아02638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

'사람人 > 작은 인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권 말기 공안 사건  (0) 2007.06.04
낯설은 법관들의 저항  (0) 2007.05.28
일상의 평화를 위해  (0) 2007.05.21
아동인권의 시작은 참여  (0) 2007.05.14
특별한 배려  (0) 2007.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