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말 이집트 카이로 도심에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시위가 있었다. 의회가 법관의 정년을 기존 68세에서 70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채택하자 현직 법관들이 이 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법관들이 거리로 나선 것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일이요, 더구나 정년을 연장해 주겠다는데도 이를 마다하며 반정부 투쟁을 벌이는 것도 우리에게는 생경하다.
배경은 이렇다. 무바라크 현 이집트 대통령은 이미 5선을 연임한 상황이고 그동안 인권침해와 독재로 많은 질타를 받아 왔다. 하지만 현재 무바라크 대통령은 정권연장을 위해 차기 대선에서 자신의 아들을 여당 후보로 내세울 준비를 하고 있고, 이 차원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정년이 임박한 고참 법관들의 자리를 보전해 주기 위해 ‘법관 정년 연장’ 법안을 마련했다. 이에 극소수인 22명의 법관을 제외한 전국 3천706명의 법관들이 장기독재를 중단시키기 위해 정년연장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올 3월에 이와 유사한 일이 파키스탄과 우간다에서도 있었다. 특히 우간다에서는 전국 법관 350명이 일주일간 파업에 들어갔는데, 재판부의 판결을 무시하는 경찰과 정부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악명 높은 독재자 이디 아민으로 유명한 우간다는 현재 북부지역 내전이 계속되고 있고 정권연장을 위한 개헌 반대 시위 중 사망자 속출, 정당설립 금지 등 인권상황이 한국의 7,80년대보다도 더욱 심각하다.
특히 재작년부터 야당 대선 후보자를 비롯한 정치적 반대자들을 반역혐의로 체포하고 기소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에 법관들은 보석 혹은 무죄선고를 내리고 경찰은 석방된 사람들을 다시 체포하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이 나라의 법관들은 법치와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의 권력에 굴하는 대신 저항을 선택한 것이다.
누구나 알듯이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법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신헌법이 그러했고, 긴급조치가 그러했다. 이름은 헌법이었지만 그 모든 것은 한국의 근간을 뒤흔든 법위의 법이었고 그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법관들은 이에 침묵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인혁당 사건 재심에서도 밝혀졌듯이 법관들 스스로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어느 사회든 폭력과 차별은 존재한다. 문제는 그러한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항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기본 권리임과 동시에 의무이다. 특히 법조인의 기본 의무는 사법정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법관들은 저항이라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도 의무를 다하지도 않았다.
많은 국제뉴스에서 유독 이 기사들이 눈에 띄는 것은, 그리고 그 내용을 생경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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