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시민단체가 정부의 예산 사용에 관심을 갖고 시민운동으로 발전시킨 지 10여년이 지났다. 예산감시운동이라는 타이틀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동력은 ‘예산’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과 더불어 실제로 시민의 힘으로 예산낭비를 막아내는 가시적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운동은 실제 정부의 태도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현재 기획예산처가 시민들로부터 예산낭비사례를 접수받아 실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이를 반증하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지방자치단체가 발전하면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 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장시키는 방안으로 지방행정과 정치에 주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들이 고민되기 시작하면서 예산감시운동도 예산참여운동으로 진화하기 시작하였다.
예산감시운동이 정부가 이미 편성한 예산에 대해 의회가 심의하는 과정에서 삭감에 대한 시민단체의 의견을 전달하여 반영하게끔 하는 것이라면 예산참여운동은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는 데 있어 시민사회의 가치가 반영될 수 있도록, 즉 정부와 시민이 함께 예산을 편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이 참여예산제도이고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광주 북구를 시작으로 현재 전국적으로 이 제도가 확산되고 있는 시점이다.
안산시는 경기권에서 최초로 조례에 의거하여 2005년도부터 참여예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안산시가 시행하는 참여예산제도의 유일한 내용은 ‘예산참여주민위원회의 운영’이다. 80명 정도의 시민들로 예산참여주민위원회를 구성하여 예산편성이 완료되기 전에 주민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주민위원회의 임기가 2년인 관계로 올해 제2기 안산시 예산참여주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지난 2년간의 안산시 참여예산제도 운영에 대해 간략히 평가해 본다면 우선 참여예산제도의 내용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참여예산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안산시민들이 안산시 예산 및 참여예산의 의의에 대해 잘 알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양한 창구를 통하여 예산에 대한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공무원은 예산편성이 공무원의 고유권한이 아니라 예산의 주인인 시민이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영역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시민들에게 충분히 정보공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제외하고 단지 각 동이나 단체들에서 추천, 신청 받은 80명의 예산참여주민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는 것만으로 참여예산제도를 시행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예산참여주민위원회 회의 운영에 있어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 예산참여주민위원들은 정부의 각 과별로 예산이 편성되기 전에 어떠한 예산이 시민들을 위해 필요한 지 의견을 제출하고 정부는 그 의견을 토대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데 지난 2년간의 회의는 이미 각 과별로 예산편성이 다 이루어지고 나서 그것에 대한 예산참여주민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마치 의회가 심의하기 전에 예산참여주민위원회를 한번 거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회의도 본예산, 추경예산 등 편성할 때마다 연중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차기년도 본예산 편성 시 1회 정도만 회의를 함으로써 질의응답하기에도 부족하였다. 실제로 2006년도에 예산참여주민위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교육과 정보공개의 확충, 공무원 인식의 변화 등 많은 요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참여예산제도는 시민사회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해 지방재정법의 개정으로 인해 예산편성의 주민참여가 보장됨으로써 지방자치단체들이 속속들이 조례를 제정하여 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예산제도는 시행하는 것 자체로 의미를 두기에는 수반되는 행정력과 예산이 녹록치 않다. 이 말은 제대로 시행해야 예산과 행정력을 들여서라도 민주주의의를 승화시키고자 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안산시가 아직은 부족하다 하더라도 경기권에서 선구적으로 참여예산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며 지역 내 각종 논의의 장을 통하여 여러 시행착오들을 평가하고 변화와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가 굳이 부정적 평가를 내세우는 것은 앞으로 우후죽순으로 시행될 각 지역의 참여예산제도가 내실 있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참여예산제도가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왔던 정책이니만큼 시민사회는 이 제도가 당초 취지대로 시민의 직접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도란 한번 만들어지면 톱니바퀴 돌아가듯 계속 굴러가게 되어 있는 법이다. 때로는 기름칠을 하고 때로는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제17호 18면 2007년 8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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