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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대지를 뚫는 들풀의 생명력으로 소통하길

창간특별기고

<시민사회신문>이 우리 사회의 꿈을 새롭게 일구겠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힘이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에 있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냥 반가와만 하기에는 그간의 진통이 컸던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시민운동과 시민언론은 동반자 관계에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시민언론은 시민운동의 한 거점으로 언론활동 그 자체가 운동인 셈이었지요. 마침 연구년을 맞아 멀리 나와 있느라 자세한 내막을 듣지를 못했지만, 그간에 치른 내홍이 한 개인의 문제나 한 언론사 내부문제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시민언론의 이런 성격 때문인 모양입니다. 지나친 해석인지 모르겠지만 <시민사회신문>의 창간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는 이제 시민운동이 자기혁신의 시점에 왔다는 여러 조짐 가운데 하나로 읽힙니다.

시민운동 자기혁신 시점

우리 시민운동은 그간에 참으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걸쳐 주요 시민운동단체가 설립되어 많은 개혁정책을 성사시키고 2000년 총선시민연대, 2002년 대선, 2004년 탄핵반대운동을 치르면서 운동의 정당성과 시민기반을 뚜렷이 확인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시민운동과 단체들이 규모나 내용 면에서 모두 많이 성장했지요. 나는 시민단체의 이런 성장을 사회운동의 일상화나 제도화라는 말로 자주 표현했습니다만 그것은 곧 큰 전환을 가져와야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 이런 생각이 더했던 것은 시민단체가 힘은 많이 세어졌는데 새로운 것이 눈에 띠지 않는 탓입니다. 가끔씩 시민단체의 행사장에 가면 민주화운동의 동지였다가 이제는 고관대작이 된 분들이 무슨 축사 같은 걸 하면서 옛 일을 추억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제는 국가권력을 운영하게 된 그 분들과 시민단체도 비슷한 감정에 젖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를 한 적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시민단체가 권력기구가 되었다거나 시쳇말로 배가 불렀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시민단체가 권력과 시민의 틈새에서 불어난 체중으로 쩔쩔매는 모습을 자꾸 떠올립니다.

노무현 정부는 대단히 개혁적인 정부입니다. 처음의 의지가 많이 훼손되기는 했습니다만 나는 여전히 이 정부가 한국사회에서는 처음으로 ‘탈근대정치’를 실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과감한 지역균형발전전략과 협치(governance)를 통한 제도의 개방, 전자적 공론장을 이용한 시민과의 소통만 보더라도 산업사회 단계의 정치를 훌쩍 뛰어넘은 시도로 봐야겠지요. 이처럼 개혁적인 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시민운동의 공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 출범 후 개혁의제를 정부가 주도하면서 시민운동단체는 일손을 놓은 듯해 보입니다. 일종의 역할갈등을 보는 듯도 하고요.

‘사회개혁운동의 주기’로의 이행

이제 한국의 시민운동은 새로운 운동주기에 들어섰습니다. 물론 사회운동이 아주 규칙적인 주기를 갖는 것은 아니지마는 1987년 이후 시민운동을 ‘정치·경제개혁운동의 주기’라고 한다면, 2000년대 들어 시민운동은 새로운 주기를 맞았다는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는 2004년 총선을 기점으로 기존의 운동주기가 만료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새로운 운동주기가 도래했다는 것은 기존의 운동방식이 이제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는 새로 시작하는 운동의 주기를 ‘사회개혁운동의 주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민운동만을 본다면 시민사회는 늘 개혁적이라는 인상을 갖습니다. 그렇지만 시민사회를 넓게 보면 언론과 학교, 종교, 법조, 의료 등 ‘사회권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들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회권력이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권위주의 시대의 폐쇄성과 부조리를 여전히 끌어안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 결과 사회권력의 대부분은 산업화시대의 근대성의 정치를 넘어서지 못하는 정치세력과 함께 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개혁운동은 무엇보다도 사회권력의 개방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시민운동부문의 자기혁신도 포함되어야겠지요.

사회개혁운동은 그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정치·경제개혁운동의 주기는 민주화운동의 연속선에서 일종의 저항의 전략이 지속된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항의 전략은 대립과 균열을 낳기 마련입니다. 사회개혁의 운동주기를 이러한 전략으로 이어간다면 사회균열은 더욱 심해지고 개혁은 그만큼 멀어지게 되겠지요.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보다 사회 권력의 이탈이 심각했습니다. 국가의 중대한 사안이 시민사회의 공론과 의회정치로 합의해내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얼핏 보아 법치주의가 구현된 듯 보이지요. 하지만 이런 사회는 대화와 합의의 정치과정이 소멸된 ‘균열사회’요 법의 강제에 의해 형식으로 통합된 ‘외피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우리의 자화상은 어쩌면 사회발전을 옭아매는 극단적 ‘주관주의의 덫’에 걸린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새로운 주기를 맞은 시민운동은 균열과 대립을 넘어서는 데 지혜와 힘이 모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제 시민운동이 합의와 소통의 정치를 펼치는데 온 힘을 쏟았으면 합니다. 정치와 시장의 민주화에 몰입하는 동안 시민운동단체들은 정치영역과 경제영역에는 전문가가 된 듯합니다. 그러나 이제 사회개혁운동의 주기를 맞아 정작 시민사회영역에 대해서는 얼마나 전문적인가를 자문하는 것도 필요할 듯합니다.

시민운동 프로페셔널리즘을 일깨우길

올해는 6월 항쟁이 2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시민운동이 새로운 운동주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좋은 때입니다. <시민사회신문>의 새 출발이 우리 시민운동에 새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사회에 닫혀 있는 곳곳의 문을 열어젖히고 시민운동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일깨우는데 앞장섰으면 합니다. 오늘은 특히 <시민사회신문>의 창간에 앞장선 기자들께 큰 격려를 보냅니다. 얼어붙은 대지를 뚫는 들풀의 생명력으로 소통하기 바랍니다.



 

조대엽(고려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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