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이목을 이끈 프랑스 대선이 지난 6일 끝났다. 우파인 사르코지가 근소한 차로 앞선데 대해 학자들은 저마다 평론을 달 것이고, 시민사회는 반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프랑스 대선 이후 한-EU FTA 전망과 한국대선에서 미칠 영향을 얘기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민단체, 시민사회와 연관된 학자들은 이처럼 외국 선거가 갖는 의미를 한국사회에 적용하기 위해 많은 정력을 쏟고 있다. 비단 이번 프랑스 선거뿐만이 아니다. 근자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의 과정을 얘기하면서 한국사회와 비교하기도 하였고, 그 전에는 브라질 PT당의 룰라가 당선되자 마치 우리나라에서 진보적인 인사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기뻐하였습니다.
그것뿐인가. 90년대 중반 이후 서구의 좌파정권 수립과 ‘제3의 길’이란 책의 번역 이후에는 한국 시민사회가 거의 동화되어 갔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신기하리만큼 대한민국의 시민운동은 정치와 거리를 둘 뿐만 아니라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순결을 잃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시각이 매우 팽배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이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00년 총선 이후 시민사회는 ‘총선연대’라는 틀을 만들고 네거티브 운동을 통해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모두 시민운동 틀 안에서만 있을 뿐 적극적인 후보 지지나 정당지지운동 혹은 정당참여는 거의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전혀 없던 것도 아니다. 2004년 총선에서 일부가 ‘물갈이 운동’이라는 틀 속에서 적극적 후보 지지를 했지만 대부분의 시민사회에서 이러한 운동을 애써 외면했고 심지어 순결성을 잃은 행위로 매도했다.
이런 포지티브 운동을 벗어나기 위해 시민운동은 2006년 지자체 선거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이라는 정책선거 운동을 실시했다. 하지만 실제 이 운동은 언론에서 호응한 것과는 반대로 후보를 검증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도 제시되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왜 시민운동은 외국 정치에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한국 정치에는 외면하나. 과연 한국사회 정치상황이 외국에 비해 그렇게 나쁜 건가, 아니면 한국사회에는 시민사회가 함께 할만한 정치세력이 없어서인가.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솔직히 고백하면 정치와 거리를 두고 그들과 일정정도 동등한 입장에 서면서 자기 기득권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 시민사회는 정치에 거리를 두고 비판하고 작은 정책문제에 골몰하지만 정작 사회적 이슈나 거대담론 형성에는 먼저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비판하는 사람은 대부분 정치인이나 행정 관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그들이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도 이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정책이나 이슈를 제기할 때 역시 정치권과 일정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시민사회 행사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도 역시 정치인들이다.
정치와 정치인들과의 일정한 긴장관계는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관계도 어느 정도 시민사회의 합의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정치세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정치에 대한 참여를 터부시하기 보다는 일정한 긴장관계 속에서 일정 부분의 정치 참여를 통해 정치와 시민사회의 긴장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거대 담론 형성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여기는 이래서 안되고, 저기는 저래서 안되고, 나만 홀로 깨끗해야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시민사회를 엘리트주의화시켜 자신을 고립시킬 염려가 있다. 모든 운동의 고민이 사회 변화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것의 완결점은 정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애매한 정치적 중립을 통한 사회변화이기보다는 당파성에 입각한 사회변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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