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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작은 인권이야기

생리,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작은 인권이야기[15]

 

중학교 2학년, 수줍게 용돈을 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처음 생리를 시작해서 조그마한 기저귀 같은 걸 처음 착용하게 된 날, 나는 부끄러워서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아빠에게 “여진이 생리 시작했으니까 축하하는 의미에서 용돈 좀 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그걸 왜 얘기해!” 하며 투덜대니 엄마는 “생리하는 거 부끄러운 거 아니야”라며 나를 타일렀다. 어쨌든 앞으로 약 35년 동안 계속 될 나의 월경인생은 이렇게 아빠가 주신 용돈을 들고 놀러나가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생리. 생리는 더러운 것일까? 생리통 때문에 배가 아프면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아요”라고 둘러대야 하는 것일까? 생리를 ‘마법’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생리대는 꼭 그렇게 비싸야 하는 것일까? 생리대 광고는 꼭 어여쁘고 하얀 피부를 가진 하얀 이미지의 광고여야 할까?

이러한 ‘생리’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통념은 ‘생리’의 빨간 것을 숨기고 하얀 것으로(깨끗한 순백의 이미지로) 드러내라고 주문을 건다. 필자는 월경 인생 약 10년차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이 ‘빨간 것’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월경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서 이것을 ‘더럽다’ 혹은 ‘불결하다’라는 사회적 통념·억압 앞에 당당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일상 속에서 이러한 억압에 ‘저항’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생리통 때문에 배가 아프면 ‘생리통 때문에 배가 아프다’라고 솔직히 말하고, 생리대를 갈기 위해 화장실을 갈 때에도 생리대나 생리대 주머니를 당당히 들고 나간다. 남성들과도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끌어내면서 잘못 알고 있는 점이나 모르는 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생각보다 생리에 대해 잘 모르는 남성들이 꽤 많다!)

또한 터무니없이 비싼 일회용 생리대를 거부하고 면 생리대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일회용 생리대의 경우 비쌀 뿐만 아니라 여성의 몸에도 좋지 않다. 생리대를 하얗게 만들기 위해 형광표백제 등 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여성의 신체 중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부위에 이런 생리대를 1년에 약 1천440시간 정도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실로 경악스럽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일회용 생리대가 만들어지기까지 파괴되는 우림들과 버려진 일회용 생리대를 소각하면서 나오게 되는 유독가스 등 일회용 생리대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까지 생각해본다면 그저 말문이 턱 막혀버린다.

필자는 면 생리대를 사용한지 이제 1년 반 정도가 됐는데 맨 처음 면 생리대를 손빨래 할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처음으로 내 몸에 대한 소중함과 환희를 느꼈다. 공포영화도 보지 못할 정도로 피를 무서워하는 내가 내 몸에서 나온 핏물을 빨고 있으려니 기분이 참 오묘하면서도 환희로웠다.

‘생리’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스스로도 지니고 살았던 나는, 한 여성으로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글이 어쩌다보니 ‘면 생리대 사용 후기’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어쨌든 ‘생리’ 앞에 우리는 좀 더 당당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생리를 하지 않는 남성들 또한 사회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생리에 대한 인식에서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제16호 11면 2007년 8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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