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인생이라고 하더니만, 그 말이 맞다. 누군들 자신이 팔뚝질하며 일하던 곳에서 드러누워 버릴 줄 알았겠으며, 누군들 자신이 봉사활동을 가서 납치가 될 줄 알았겠으며, 누군들 산을 오르다가 벼락을 맞을 줄 알았겠는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활동을 간 사람들 23명이 피랍되었다. 이미 2명이 살해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살해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이번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무분별한 선교활동을 하는 개신교 신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근본적인 원인은 평화를 위협하는 그것, 바로 ‘전쟁’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쟁, 그것은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땅 뿐만 아니라 이 세계 어느 곳이든 여러 가지 형태로 평화를 위협하는 것임을 이번 피랍사건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비록 지금 당장 한국에 폭탄이 떨어지지 않고 있더라도 이 땅이 지금 ‘평화롭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이번에 피랍된 한국인 23명에게는 전 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되어있다. 그래서 필자는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려 평화보다는 두려움이 익숙해져버렸을 그곳, 물을 기르고 밥을 먹는 모습보다 붕대를 감고 슬픈 눈망울로 서있는 그 모습이 더 익숙해져버린 그곳, ‘아프간’ 하면 총을 들고 있는 ‘탈레반’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곳, 바로 아프가니스탄. 그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책 ‘가자에 띄운 편지’에서는 “텔레비전만 켜면 보이니까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시선을 꼬집는다. 아침에 출근하러 나간 사람들이 죽음의 입장권을 사들고 오후에 묻히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그 가족들이 입장료를 환불받을 수 없는 이 현실을 꼬집는다. 이는 팔레스타인이건 아프가니스탄이건 이라크건 하루하루를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폭탄의 냄새를 맡게 해주지도, 폭발이 일어나는 그 찰나의 침묵을 들려주지도, 모두가 벌벌 기며 아연질색 하는 그 순간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니 보여줄 수 없는 텔레비전이라는 물체 앞에서 우리는 감히 그들의 고통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무리 흐느끼고 촛불을 들어도 피랍되어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심정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버스 교통카드에 잔액이 없나 하는 걱정을 하며 버스를 타는 우리들은 살아서 이 버스에서 내릴 수 있을지 걱정하는 저들의 삶과 그 고통을 감히 알 수 없는 것이다. 23명 한국인 피랍인들의 목숨만큼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숨 또한 소중한 것이다. 언제 죽게 될 지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랍된 한국인들과 더불어 이번 피랍사건이 또 다른 전쟁으로 확산되어 또다시 총알과 폭탄 속에서 죽음의 입장권을 받아들여야 할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이 있음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앞서가신 고 김선일씨와 고 배형규 목사, 고 심성민씨, 그리고 ‘죽음’이라는 이름밖에 남지 않은 아프간과 전쟁 속에 있는 수많은 민중들의 명복을 빌며, 총알과 폭탄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다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제14호 13면 2007년 8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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