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 “넌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저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거예요”라고 답했던 시절이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누군가 또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 교사가 될래요, 의사가 될래요, 여자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등등 들어본 직종은 다 내 꿈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누구도 나에게 “넌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지도 모른단다, 얘야~”라고 이야기 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와 키가 비슷해지는 때까지도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일단 꿈은 크고 봐야한다고, 조그마한 문방구를 열고 싶다는 내 동생의 꿈은 어른들의 욕심에 의해 무시당했다.
며칠 전 킴스클럽 강남점으로 경찰침탈에 대비한 교육을 하러 갔었다.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한 소비자와 마찰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명언’ 한 마디를 남겼다. “너희들이 그러니까 잘린 거야”라는. 숱한 집회에서 별 소리를 다 들어봤지만 바로 앞에 ‘잘린’ 당사자들을 두고 그런 소리를 하는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자신이 안고 있던 아이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았을까. 나도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당신 자식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혹은 자기의 자녀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안’되리라 생각한다. 열심히 영어공부만 하면, 중국어 공부하면 큰 회사의 CEO가 되리라! 하지만 우리는 ‘썩소’를 맘껏 날려주고 싶은 저런 맹신이 허황된 물거품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나 양복 곱게 차려입으신 CEO가 되는 사람보다 생전 데모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자신의 일터에서 농성을 하게 되는(될 지도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주위를 조금만 둘러본다면 아주 금방 알 수 있다. 설령 정규직 노동자라고 해도, 자신이 언제 어떤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서 바닥에 앉아버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한 장의 신문지 위에 발을 딛고 서야 할 사람들이 10명이 되고, 20명이 되고, 100명이 된다면 신문지 위에 발을 대고 있는 사람보다 떨어져 나가게 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을 밀쳐내고 끝까지 신문지 위에 남는 것보다 한 장의 신문지를 두 장의 신문지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세장, 네 장이 되게 만드는 편이 더 좋지 아니한가.
하지만 아이를 안고 우리에게 명언을 날리던 한 사람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학교나 집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을 때(혹은 되지 않더라도) 노동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창피한 것처럼 가르치고 세뇌시킨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는 자기 자신들의 삶과 동떨어진, 너무나 다른 세계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 이 현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언제까지 남의 일일까. 아… 갑자기 홈에버 상암점에 경찰침탈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딸깍 거리는 내 모습이 너무나 밉다.
제12호 11면 2007년 7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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