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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풀뿌리

“얼라 놓으라고 짝지워 줬는디...”

[국도를 따라1]- 울진 문골마을 할미들의 세상 걱정

 

"요즘 사람들 왜 얼라 안놓는지 몰래"
“시집와서 자식 칠남매 낳았으면 살림 많이 늘렸제”


【울진】저출산 문제가 한국 미래를 가늠하는 핵심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언론들은 한국사회의 미래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없이는 불투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언론은 외신보도를 인용, 수 년 뒤면 한국이 세계에서 최고령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정부도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위해 대통령 직속기구를 설치하고 국가적 차원의 방안을 쏟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결혼 적령기 계층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지자체, 특히 농어촌 지자체는 지자체 경쟁력 강화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지역인구 감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아비 지원은 물론 학자금 지원 등 갖은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성과는 그다지 뚜렷하지 못하다.

초복인 15일, 울진군 온정면 선구2리 ‘물골’마을. 일본열도를 강타한 태풍 마니의 영향으로 영남일원은 초복 전날까지 강풍이 불고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태풍에 이어 잦은 장마전선의 북상으로 맑은 햇살 한번 제대로 볼 날 없는 우기인지라 마을의 할미와 아낙들은 구름 새로 햇살이 조금만 비쳐도 부산하게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나선다.  

‘물이 좋아’서 ‘물골’로 부르는 선구리 마을 복판에 자리잡은 마을회관에 팔순을 바라보는 안노인 대여섯 분이 빙 둘러앉아 ‘10원 내기 민화투’를 즐기고 있다. 오락가락하던 비가 잠시 그치자 부리나케 콩밭을 매고 이내 동무들을 찾아 마을회관으로 들어와 앉은 참이다.

마을회관 앞 늙은 감나무 그늘에 할미 둘이 손녀 재롱에 박장대소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남효선 기자


“이제는 나이가 많애서 지 차례도 잘 몰래. 태풍 때문에 어제부터 바람 불고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점심 먹고 햇살이 비쳐 콩밭매고 들어와 다 늙은 할망이들끼리 화투치고 놀아”

남효선 기자


그러고 보니 할머니들 앞섶에는 10원짜리 동전이 그득하다.

“내사 풍시마(풍약의 울진지방 방언) 했네. 그래도 20원 잃었뿌랬네” 그 중 나이가 더 지긋해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젊은이 우예 왔니껴”하며 화투가 깔린 모포를 둘둘 말며 자리를 내주신다.

“다 늙은 할마이들 살아온 애기 모할라꼬 들을라 그래. 우리가 우에 살아왔는지 얘기하면 젊은이들이 알아들을란가. 말도마래. 눈만뜨면 서숙(수수)밭 매야지, 그 많던 시집식구 건사해야지, 발간 홍시 한 다라이(함지박의 일본어)씩 이고, 오고가고 팔십리 산중 길 헤매며 영양 수비장 보러 댕겨야지. 이 얘기 다 할래면 책이 열권이래. 동삼(겨울)에 ‘소까지불(소나무 옹이 불)’켜놓고 삼 삼아야제. 먹을 게나 있는가. 동삼에 삼삼을 적에 얼라(아기)로 이래 옆구리에 끼고 한 쪽 젖먹여 가매 삼삼고”


올해로 일흔아홉이라는 분옥이 할매가 손사래를 치며 단숨에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남효선 기자

“근데 요즘 사람들 왜 얼라 안 놓을라하는지 몰래. 그 먹고살게 없던 시절에 낮에는 진종일 서숙 밭 매느라 밭에서 헤매고, 밤에는 길쌈 놓느라 새벽 첫 닭이 울 때까지 삼 양푼이 끼고 살아도 얼라 맹글로는 꼭 사랑방에 들어가네. 평소에는 내외 하느라꼬 같이 장보러가는것도 남새시러웠지만. 짝을 모하러 맹글어 주는고, 얼라 맹글라고 짝지주지”

오남매를 키우며 일곱 해 전에 막내딸을 출가시켰다는 분옥할매는 “요즘 젊은 사람들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며 “시집장가 보내준 게 자식 쑥쑥 낳아 집안 늘리고, 나라 늘리라고 보내준 거지 모하러 보내줘”하며 눈을 홀긴다.


분옥할매가 한마디 더 던진다.

“요즘 시상 모가 부족해 새끼 안 놓을라하는고. 예전처럼 보리고개가 있나 먹을 게 없나. 내 시집오니 시집식구가 마구 열 하내이래. 오줌똥도 못 가리는 ‘얼라 시아재비’도 하나 있었네. 얼라 셋이 놓을 때까지 남들 다 먹는 미역국도 못 끼래 먹었네. 셋째를 낳고 하루는 첫닭이 울도록 삼을 삼고 있는데 시어마이가 나로 가만이 불러. 정지(부엌)로 가보이 시어마이가 고지바가지에 하얀 이밥과 미역국을 그득 담아서 먹으라고 그래. 눈이 확 뜨이더구만. ‘고지바가지에 담아준거 섭섭해 하지 마래. 놋그릇에 담가주면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고 그라면 벌떼 같은 시누들 덤벼들고, 암 소리 말고 혼자 먹거라이’하며 시어마이가 설설 끓는 미역국을 내 앞으로 쑥 내밀고는 방으로 들어가데. 그 때 참 많이 생각했네. ‘이거로 내 혼자 다 먹어야 되나 남게야 되나’하며. 설설 끓는 미역국 먹으면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데”

“공부시키기 어려워 얼라 안 놓을라한다 카더라”

“야야 니 시어마이 대단했대이”하며 순하게 늙으신 춘화할매가 거들고 나선다.

남효선 기자


“우리 때야 배가 고파도 아 하나는 잘 낳았지. 서숙 밭 매다가도 아 놓고, 콩밭 매다가도 아 놓고. 야야 근데 요즘 아들 얼라 안 놓을라카는 게 공부시키기 어려워버 얼라 안 놓는다카더라. 평생 벌어봐야 아 공부시키는데 다 들어간다는데 누가 옛날처럼 얼라 쑥쑥 놓을라 하겠나”

춘화할매가 연신 손을 내 저어며 시집살이 애길 들춰낸다.  

“내사 시집와보이 니 맹크로 오줌똥 못 가리는 얼라 시숙이 하나 있더라. 죽으라고 저게 저 구줄령(구주령, 울진 온정면과 영양 수비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에 가서 산나물 뜯어다가 입쌀(쌀) 조금, 좁쌀 조금 섞어 ‘꾹죽’ 끓여 온 식구 빙 둘러앉아 아침 먹을라치면 네 살 백이 시숙이 똥누러가자고 팔을 잡아 댕기네. 얼라 시숙 데리고 똥 누이고 오면 꾹죽 양푼이는 텅 비고 먹을 게 하나도 없어. 이러고도 칠남매 다 키웠네. 없는 살림에 자식새끼 칠남매 낳았으니 나도 시집와서 살림 많이 늘렸제”

마침 할머니 한 분이 “나락 다 뚜드려 놓고 산에 가서 꿀밤 한자루 주워다가 도토리묵 해놓으면 얼매나 맛이 있었는데” 하며 냉장고 문을 열고 ‘도토리 묵’ 한 사발을 꺼내놓으신다.

지난 가을에 동네 할머니들끼리 마을 앞산에 올라 주워 담은 도토리묵이란다.

처녀 적 길쌈하며 동무들끼리 모여 “총각서리만 빼고 무꾸 서리, 닭서리, 감 서리 안해 본 서리가 없었다”며 돌담 하나 사이에 두고 시집왔다는 ‘감둘 할매’가 묵 사발과 함께 소주잔을 죽 돌린다.

분옥할매가 소주잔을 맛나게 들이키며 “한마을로 시집왔으이 총각서리도 했는감네”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온다.

종일 오락가락하던 빗가락을 해집고 구름 속에 잠시 머물던 햇살이 그림자를 끌며 마을 앞을 버티고 선 서화산을 스믈쩍 넘어가자 할미들은 동전주머니를 짤랑거리며 “오늘 젊은이 덕분에 돈 한푼 안 잃고 많이 벌었네. 가서 영감 저녁 차려줘야지”하며 자리를 털고 하나 둘 일어선다.

할머니들이 골목어귀로 사라지자 그 때까지 미쳐 서화산을 넘지 못해 마을회관 마당에 한 뼘쯤 너울거리던 햇살도 함께 자리를 털고 이내 쨍한 강바람 한줄기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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