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극장마다 공포영화가 많이 개봉한다. 무서운 장면을 보면 긴장하게 돼서 몸에 식은땀이 생기고 그 땀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 시원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란다.
우리 주변에는 삶 자체가 두려움인 사람들이 많다. 편안히 쉴 곳이 없어서, 또는 아픈 몸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다. 국민기초생활법에 의해 최소한의 생존만을 보장받고 있는 사람들은 ‘가진 자들의 천국’인 이 사회가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한 달에 많아야 37만원(평균 32만원)의 기초수급만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인 수급권자들(이하 수급권자)은 사실 생활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삶이 고달픈 수급권자에게 의료급여제도 개악은 공포 그 자체이다. 수급권자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지병인 만성질환으로 인해 노동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병원에 많이 간다. 한 달에 6000원이라는 건강생활유지비가 나온다고 하지만 병원에 갈 때마다 약값을 포함해 1500원에서 2500원을 내야 하는 현실에서 병원으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은 뻔하지 않은가.
권리 주장하지 않은 ‘해이’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5월말부터 동자동 쪽방주민들의 건강권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주민 심층면접도 하고 건강권배움터도 하였다. 이때 만난 주민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해이’(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이 언급했던 ‘해이’)란 어렸을 때부터 가난과 주변의 멸시를 받은 탓에 ‘무엇이 자신의 권리’인지 모르는 것, 이른바 ’권리의식 해이‘밖에 없었다.
인터뷰한 수급권자 중 한 분은 당뇨이지만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병원에서 수급권자를 향한 차별과 무성의한 진료 때문에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무료진료소를 간다고 한다. 물론 수급권자는 무료진료소를 갈수 없기에 수급권자임을 속여서. 미안하지만 말이다. 종교단체는 당뇨에 대해 성의껏 친절하게 진료할 뿐만 아니라 지병이 아닌 질환에 대해서도 검진받고 치료받을 수 있어 그렇게 한다고 했다.
이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건강관리책이었다. 사실 이전의 제도에서도 비급여 진료항목이 많아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분은 수급자가 된 1년간 행정상의 실수로 24만원만 받아 생활했으나 항의하면 그마저도 못 받을까 최근까지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 했다. 남는 9만원에서 돈을 빼 추가 진찰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권력의 마력, 사실 왜곡
5,6월에 만난 주민 중에 이번 의료급여제도가 왜 바뀌는지 아시는 분이 많았다. 뉴스에서 아프지도 않은 사람이 병원에 자꾸 가고 병원에서 약 받아다 팔기 때문이라고 하나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본다며 한탄하신다. 그래서 필자가 “아주머니(아저씨)도 아프지 않은데 병원에 가셨어요?”하니까 자신은 아니란다. “차비 들고 병원에서 눈치 보이는데 아프지 않은 데 가겠어요” 라고 한다.
32만원으로 생활하기도 힘든데 차비 들여가면서 의료쇼핑을 하겠는가. 수급권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는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수급당사자들은 동사무소에서, 병원에서, 언론에서 “이렇게 바뀐 건 너희들 책임이야”라고 수없이 되뇌이니까 그런 줄 안다. 마치 볼록렌즈가 사물을 왜곡시켜 착시현상을 일으키듯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할 국가에서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권을 뒤로 돌리는 행위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원한 여름이 되려면
진정 수급권자들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먼저 정부는 법 개악을 시정해야 한다. 오히려 그동안 수급권자들도 돈을 내고 치료받을 수밖에 없던 비급여항목을 없애고 수급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없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건강보험가입자와 의료급여수급권자를 분리시켜 마치 수급권자에 대한 건강권 침해를 정당화하려는 언론 홍보에 시민들은 휘둘려서는 안 된다. 전시와 같은 불가피한 상황도 아닌데 수급권자들의 인권이 후퇴되고 있는 현실을, 이 사회를 살고 있는 모두가 부끄러워하고 분노할 일이다.
제11호 19면 2007년 7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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