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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소수의 전유물 아닌 일상 언어로

[시민운동2.0]

 

평화활동가로 평화운동에 발 딛은 지 연수로는 3년차, 개월 수로는 벌써 20개월이 다 되어간다. 늘 신입활동가인 것만 같고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인데 어느덧 신입이란 명패를 땔 때가, 아니 진작 땔 준비를 했어야 되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긴장이 된다. 일들이 터질 때마다 노심초사, 좌충우돌하는 나에게 신입활동가라는 명패는 모든 실수가 용서가 되는 참으로 좋은 그늘막이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지난 3년 동안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것 같다. 국제정치 수업시간과 언론을 통해서나마 보던 6자회담, 북핵 문제, 한반도평화체제, 동북아국제정치 등을 바로 나의 일로 고민하고 이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혜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일. 평화운동 선배, 동기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반도를 넘어선 동북아, 나아가 세계 차원에서의 평화문제란 어떤 것인가를 배워가던 일. 정말 얼마 안 되는 활동비를 받으면서도 평화운동을 경험하고 배운다는 자체에 감격하며 기꺼이 평화네트워크 인턴에 지원하던 친구들을 만난 일. 평화운동가이지만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한없이 무기력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 그 자체가 너무도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이유 없이 아무런 대가없이 묵묵히 평화를 위한 걸음을 놓치지 않던 평화운동가들을 만나며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 일 등.

정말 돌아보면 이 일을 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 기적이 된 것만 같다. 물론 이 고백이 바로 내일도 가능하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분명 그럴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이렇듯 좌충우돌, 우당탕 평화운동을 한 지 20개월이 다 되어 가면서 새롭게 시작하게 된 고민이 있다. 바로 평화운동 안에서의 ‘희노애락’, 이 가운데 오는 기쁨과 보람, 다만 이것이 나만의 만족으로 끝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다.

‘동북아군비축소, 한반도군비축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동북아비핵지대, 한반도비핵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한반도통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하며 좋을까?', '동북아평화공동체, 한반도평화공동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나나 우리 평화진영에 논의되고 있는 이런 고민들이 과연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과도 잘 교감되고 있을까. 혹시 이런 고민들이 자신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로 느껴지진 않을까하는 고민 말이다. 사실상 우리네 삶과 직결된, 우리네 삶의 기본틀을 제공해 줄 중요한 삶의 토대가 될 이런 질문들이 언뜻 보기에도 너무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솔직히 고백컨대 내가 만약 평화운동에 몸담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위의 고민들을 그냥 정부나 일부 정치 엘리트들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만 느낄 것 같다.

‘그렇다면 평화운동의 고민이 다만 평화활동가인 나의 지적 호기심 충족과 자기만족적 운동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일반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대안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러면서 어쩌면 그 첫 걸음은 평화에 대한 여러 담론들을 일상의 언어로, 삶의 치열함이 묻어나는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 아닐까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위에서 했던 여러 가지 질문들을 다음과 같이 해본다면 어떨까.

“한반도평화체제가 달동네 쪽방에 사시는 할아버지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한반도비핵화가 이 쪽방에 사시는 할아버지와 북한 어린이의 하루 한 끼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한반도평화체제가, 한반도통일이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다국적 가정 아이들의 삶에도 평화과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동북아평화공동체가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 지역 사람들, 서로의 집을 맘 편히 오고갈 수 있게 해주지 못한다면, 한반도평화체제와 한반도통일은 과연 우리에게 희망일까.”

조금은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그래서 조금은 더 쉽게 답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렇기에 조금은 더 쉽게 한반도평화체제와, 한반도통일, 동북아평화공동체가 바로 우리네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고,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씩 조금씩 내지 않을까. 그리고 그 목소리들이 모여 한반도평화와 동북아평화를 위한 함성으로 모아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이 희망들을 시민들의 언어로 한번 풀어보자. 그래서 평화운동가, 나만, 그리고 소수만이 꾸는 꿈이 아닌 시민들이 함께 꾸는 꿈으로 만들어 가보자. 그것을 어떻게 할지는? 미완으로 남겨두자. 같이 만들어가는 거니까.


 

김경미 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

 

제10호 15면 2007년 7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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