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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여성

"달빛 아래서 즐겨봄이…"

제4회 밤길되찾기 시위, 언니들 밤길 즐기다

 

4회밤길되찾기시위공동준비위원회

달빛 아래에서 배경음악에 맞춰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며 우아하게 악당을 물리치던 세일러 문은 그저 많은 소녀들의 환상이었을까. 아름다운 달이 떠 있는 밤거리는 왜 여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던 여성들이 달빛 아래 거리로 나왔다.

서울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센터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연세대 총여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제4회밤길되찾기시위공동준비위원회는 지난 6일 서울역 앞에 모여 ‘달빛아래 여성들, 좋지 아니한가’란 주제로 제4회 밤길되찾기시위를 벌였다. 달빛체조와 달빛선언문 낭독 등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전국 119개 단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27개 지역에서 공동으로 치러졌다.

'달빛아래 여성들, 좋지 아니한가'
 
다양한 디자인의 노란색 옷을 입은 여성들은 신림과 동대문, 광화문과 신촌 등 서울의 네 곳에서 출발해 퍼포먼스와 거리 행진을 벌이며 밤길을 걸어 서울역 앞으로 모였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신청을 한 여성들에 한해 배낭을 메고 서울 도심을 밤새 걷는 행사도 진행됐다. 복장 컨셉인 노란색은 시기와 질투, 발랄함을 의미하는데 “여성들의 안전한 밤길을 시기하는 남성들을 희화화하고 편견을 넘어 발랄함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밤길되찾기시위공동준비위원회 측은 밝혔다.  

밤길되찾기시위는 지난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의 보도태도와 네티즌들의 여론몰이에 문제제기를 하며 처음 시작됐다. 당시 언론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는 주장이다. 제1회 밤길되찾기시위는 ‘달빛 아래, 여성들이 밤길을 되찾다’라는 주제로, 제2회 때에는 ‘공포를 벗자, 분노를 터트리자’, 제3회는 ‘달빛 아래 여성들, 몸의 권리와 힘, 기쁨을 되찾다’란 슬로건을 걸고 열린 바 있다.

지난 1973년 독일에서 일어난 연쇄 성폭력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처음 시작된 밤길되찾기시위는 이후 영국·미국·캐나다·대만 등에서도 폭력의 희생자인 여성들을 추모하고 성폭력을 반대하는 의미로 조직화되어 시위와 거리행진 등의 형태로 확산되었다. 오늘날에는 ‘Take back the night', 'Fly by night'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반성폭력 이슈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소통의 공간으로 승화
 
지난 3일 서울 영등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30대 자매가 한 남성에게 흉기에 찔리고 금품을 뺏기는 강도 사건이 있었다. 인근 시장에 갔다 자매가 돌아오던 시간은 10시,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에게 밤은 위험하기만 하다.

밤길에서 일어난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엔 “다 큰 여자가 어디 밤에 쏘다녀?” 혹은 “여자가 밤늦게 다니니 그런 일 당하지”라는 비난이 거세다. 팀 내 어린 농구선수를 성추행 한 혐의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등의 선고를 받은 박명수 전 우리은행 여자프로농구팀 감독 사건 때에도 선수가 먼저 감독을 꼬셨다는 비난 여론에 피해자는 큰 상처를 받고 정신 치료 중이다. 이 뿐만 아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성폭력에 대해서 여성의 복장이나 자세, 상황 등을 범행의 동기로 지적하는 분위기가 아직 한국사회 내에선 지배적이다.

공동준비위원회측은 “12회 여성주간을 기념해서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정책을 세운다거나 치안대책을 세우기는커녕 각자가 조심해야한다는 식으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편견에 문제를 제기”하고 “공포심을 조장해 여성의 몸을 보호받는 몸, 보여지는 몸으로 강권하는 사회통념을 거부하기 위해 밤길되찾기시위를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제4회밤길되찾기시위공동준비위원회

한국에선 지난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이후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싸우기 위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중심으로 관련 여성단체들이 공동준비위원회를 조직해 밤길되찾기시위를 벌여오고 있다.

 

한편 이전의 시위와 다른 점을 묻는 질문에 “1, 2회 때에는 분노와 권리를 주장하는 식으로 시위를 진행했지만 3회부터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행동에 대한 당연한 자유를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여유를 갖고 사회적 편견을 지적하는 즐거운 놀이와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기획팀은 전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움직임이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회문화에 스며들어 한국을 넘어 아시아,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밤길되찾기시위의 최종 목표라고도 밝혔다.

여성들이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밤거리를 당당하고 발랄하게 활보할 수 있을 때까지 정의의 이름으로 악당을 용서할 수 없는 언니들의 달빛아래 밤길되찾기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전상희 기자

 

제11호 13면 2007년 7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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