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人/오피니언

제3의 길은 지속하는가?

[기고] '토니 블레어의 10년' 영국. 그리고 세계

 

토니 블레어가 6월 27일 영국총리직에서 물러나고 토니 블레어 내각에서 재무장관직을 맡아왔던 고든 브라운이 7월 1일 영국의 새로운 총리로 등장한다. 토니 블레어는 1953년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노동전문 변호사를 거처 1983년 노동당 후보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 본격적인 정치가의 길을 걸어왔다. 1997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총리에 취임한 이후 10년 만에 자연인 토니 블레어로. 평범한 노동당 당원으로 돌아간다.

1979년 보수당의 승리로 총리직에 오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그 유명한 대처리즘(Thatcherism)으로 보수당 18년 장기집권시대를 열었다. 대처총리는 집권과 함께 선거공약이기도 한 영국 병 치유에 나선다.

주요 내용을 보면 세금인하, 사회복지예산 삭감, 국영기업 민영화, 노동조합 활동규제, 적절한 통화정책을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 기업.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 보장, 인위적 외환시장개입 중단으로 금융시장 활성화, 작은 정부 실현, 유럽통합 반대, 산학협동 중심의 교육정책확대 등이다.

영국은 1976년 9월 외한보유고 급감과 파운드화 가치폭락으로 IMF경제신탁통치를 받아들여야 했다. 노동당의 국가경영실패 대가로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고 총리직에 오른 만큼 대처는 철저하게 노동당의 정책과 다른 방향으로 영국을 이끌어갔다.

1980년 들어 본격적인 체제개혁에 나선 대처는 공공부문 개혁, 공기업 민영화, 노사관계개혁이라는 3개 부문 혁신에 주력했다.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부문이 세계수준의 경쟁력유지를 위한 생산성을 확보하고 부문별로 규제와 유인을 위한 제도를 만들고 개혁. 개방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대처 형 세계화. 신자유주의가 시작한 것이다.

보수당은 대처리즘의 강력한 뒷받침으로 이제까지의 “영국병”을 치유하고 경제를 활성화해 총선거 때마다 승리하여 18년 장기집권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영국 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국영기업 민영화, 비정규직 양산, 가정 해체 급증, 등으로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사회 양극화현상이 심화하였다.

1994년 6월. 분명히 15년 전 보수당이 집권할 때보다 나은 상황이었으나 국민은 더 나은 미래를 원하고 있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정치가가 바로 토니 블레어다.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이 사상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던 1983년 총선에서 세지필드 선거구에서 출마, 하원의원에 당선한다. 이후 야당인 노동당의 예비내각에서 내무, 법무, 에너지, 노동 장관을 두루 거치면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이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토니 블레어는 1994년 6월 자신의 지역구인 세지필드 더럼 트림던 노동당 클럽에서 노동당 당수직 도전을 선언한다. 토니블레어는 노동당 내 보수파의 대표인 존 프레스콧 후보와 겨루어 승리. 같은 해 41세의 나이로 영국 노동당 당수직에 오른다. 토니 블레어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영국개혁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간다.

노동당 당수 토니 블레어가 가장 먼저 착수한 개혁대상은 “노동당 자신”이었다. 당수직 도전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신노동당 정책”을 노동당원과 국민에게 설득하고 구체적으로 실현해간다. 토니 블레어는 기존 노동당의 정강정책으로는 영국을 새롭게 변화시키지도 못할 뿐 아니라 집권조차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주장. 먼저 노동당이 변화하고 다음으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 집권에 성공한 다음 영국을 개혁하자는 새로운 노동당 상을 제시. 당원과 국민의 지지를 얻어냈다.

토니블레어는 당수직 취임 이후 3년여 만에 노동당 정강정책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주요산업과 기업 국유화”강령을 폐기하는 등 보수당의 정강정책과 다름없을 만큼 노동당을 변화시켰다. 새로운 노동당. 새로운 국가비전.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해 1997년 5월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은 2001년. 2005년 총선에서도 승리를 거두어 3기 연속 영국총리직을 수행해왔다.

젊은 토니 블레어를 노동당 당수. 총리직에까지 오르게 하고 10년 장기집권으로 영국을 새롭게 변화하게 한 힘은 “제3의 길”이라는 이념이었다. 제3의길 이념은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이며.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의 이론으로 토니블레어가 자신 주요정책전개의 출발점으로 삼아 유명해졌다.

제3의 길 이론은 시장만능주의는 사회복지를 올바로 책임질 수 없고 사회복지와 국가책임 증대만으로는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기존의 좌파나 우파의 이념적 기본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만 국가와 사회의 희망의 미래를 열어갈 수가 있다. 라는 주장이다.

앤서니 기든스는 1994년 발표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라는 논문을 바탕으로 1998년 “제3의 길 (The Third Way; The Renewal of Social Democracy) ”이라는 새로운 사회과학 이론서를 출간한다. 이 책의 부제는“사회민주주의의 부활” 이다. 앤서니 기든스는 이 책에서 좌우합작이나 통합을 말하지 않는다. 기존 사회주의 이념의 교조적 경직성. 자본주의의 불평등 확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모델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앤서니 기든스는 노동당 식 사회주의추구나 보수당 식 자본주의추구만으로는 새로운 시대변화를 수용할 수 없고 노쇠 해 가는 영국을 젊고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나라로 바꾸어낼 수 없다고 보았다. 사회주의에서 인권, 평등을 따오고 자본주의에서 자유, 경쟁을 빌려 새로운 영국식 사회민주주의 부활을 강조한 내용이 제3의 길 인 것이다.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에서 주장한 그대로 복지예산 축소, 법인세, 소득세감면, 민영화 확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등을 채택 시행했다. 이러한 큰 줄거리만으로 본다면 보수당정권의 정책공약과 별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세부사항으로 들어가면 앞서 보수당정권의 정책과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보수당은 자본가와 노동자. 빈자의 정치적 의견수렴과 합의에 의한 국정운영이 아니었다.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권은 이해당사자의 합의에 바탕 한 국정운영을 시도했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 즉 “국가와 시민의 계약”에 따라 정책을 시행해 성공했다는 점이 다르다.

사회복지부문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직장을.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최저이상의 생계를 보장”하고 실업자는 재교육. 평생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쉽게 했으며. 기업은 필요에 따라 쉽게 노동자를 구해 쓸 수 있게 했다.

토니 블레어가 이끌어온 노동당은 이미 사회주의에 바탕한 계급정당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과 같은 대중정당, 국민정당으로 거듭나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정부정책을 국민에게 설득. 동의를 얻어내는데 제소임을 다해내었다.

토니 블레어의 정치이념을 확인할 수 있는 어록을 보면. “유럽 제3의길. 새로운 중도”라는 선언문에서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적 정의뿐만 아니라 경제적 역동성과 창조성, 혁신의 발현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주장해 정부개입을 최소화한 개방적 자유 시장 경제체제를 옹호하고 새로운 시대 유럽 좌파의 이념적 원칙으로 제시하였다.

1995년 10월 3일 브라이턴 지역 노동당회의 연설 일부분을 보면 “분명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소중한 사람도, 덜 소중한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내 형제의 파수꾼이다. 나는 반대편에서 걸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히 마주 볼 뿐인 고립된 관계들이 아니라 한 가족의 일원이며.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고 같은 인류의 일원이다. 이것이 나의 사회주의다.”

“나는 노동당이 이런 가치를 표방하기에 노동당에 가입했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을 느낀다. 노동당의 가치의 위대함과 영원함에도 우리당의 정치, 우리당의 구조와 이념은 이런 가치들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실제적 방식에서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가 대표한다고 여겨온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망각한 채 그저 우리 사람들 이라고 말해왔다.”

“나는 노동당을 변화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이 나라를 변화하기 위하여 정계에 들어왔다. 우리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낡은 이념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우리당을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로 복귀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나라를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는 그 상태로는 승리할 수 없다. 설령 우리가 선거에서 승리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영국이 필요한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더는 저임금과 노동자착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하여 경쟁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재산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국민이다. 우리 국민의 지능. 우리 국민의 잠재력이다. 이것을 개발한다면 우리는 성공할 것이고 이것을 무시한다면 실패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로 성공했고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 참전으로 실패했다. 노쇠한 영국을 일으켜 세운 젊은 사자가 “부시의 푸들”로 전락해 영국국민과 세계에 실망을 안겨준 것이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는 가도 “제3의 길”은 남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에 효율성을 더하고 신자유주의에 “인간의 가치”를 더한 제3의 길이 추구하는 이념적 가치는 오래도록 지구촌 사회의 기본적 정치이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용현 참여자치완도시민연대 공동대표 wdst5507@paran.com

 

 

사업자 정보 표시
시민사회신문 | 설동본 | (121-865) 서울 마포구 연남동 240-6 504호 | 사업자 등록번호 : 105-20-38740 | TEL : 02-3143-4161 | Mail : ingopress@ingopress.com | 통신판매신고번호 : 서울아02638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