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인권 이야기[10]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는 자기를 감시하는 누군가를 향해 이런 말을 날린다. “누구냐, 너!” 이에 이우진(유지태)은 “… 뭐 내가 중요하진 않아요. '왜'가 중요하지. 잘 생각 해봐요”라고 답한다. 이제 우리 모두가 오대수가 될 날이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나의 통화를 엿듣고, 내가 어느 홈페이지를 방문했는지 다 알 수 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가 감청을 당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누구냐, 너!”라고 묻는다면, 상대방은 영화 '올드보이'의 이우진(유지태)처럼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누군지 중요하지 않다. ‘왜’가 중요하다” 우리가 감시&사찰을 받아야 하는 ‘왜’라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온 국민은 언제, 어디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예비적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국가의 눈에서 바라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2일 △전기통신사업자 등의 통신감청 장비 구비 의무와 △인터넷사업자를 비롯한 모든 전기통신사업자 인터넷 로그기록 등 통신사실확인자료 1년 이상 의무 보관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정보수사기관의 범죄수사를 위한 감청대상을 유선전화로만 국한되어 있던 내용을 이동통신 및 인터넷 등 모든 통신수단으로 확대하였고 휴대전화, 이메일 사용기록을 포함해 신용카드와 버스카드 등의 정보도 남겨 사실상 개인의 모든 정보 자료를 국가권력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쉽게 얘기해서 국가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 통화를 하고, 누구와 이메일을 보내고, 어떤 사이트를 방문했는지, 어디서 무얼 샀는지, 어디로 이동하였는지 등 한 개인의 모든 일상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휴대폰 등 ‘통신기기’가 한 개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 개악된 통비법은 한 개인의 일상 중 화장실에서 똥을 누는지 오줌을 싸는 지 빼고는 국가기관이 다 알 수 있게 만들어버렸다. 뭐, 이러다가는 사람이 있는 어느 곳이나 감시카메라가 달릴 것 같기도 하지만.
하여튼 사실 이런 일상화 되어버린 감시는 크게 새로울 것도 없다. 이미 수많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은 통신상의 감시를 숱하게 받아왔으니 말이다. 달라지는 건, 그 범위와 적용될 사람들이 더 넓어진다는 것이다. 개악된 통비법을 통해 국가보안법 등 악법의 확대적용이 판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초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주장하였다. 개헌논의를 유보 시키겠다 했지만 현실에서의 헌법은 이미 바뀌었다. 국가는 이미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짓밟은 지 오래고 사생활의 비밀의 자유, 통신의 비밀, 양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을 더 이상 보장해 주지 않는다. 어이쿠야. 그나저나 이제 마우스 클릭 한 번 하는 것도 심사숙고해서 누르길 바란다. ‘잘못된’ 클릭 한 번으로 인생 한 번에 망칠 수 있을지 모르니.
제10호 11면 2007년 7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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