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왕따를 비롯한 학교폭력의 수위와 심각성에 대한 보도와 걱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왕따’라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대화에서 농담으로 오르내릴 만큼 익숙한 단어가 되어 버렸고, 학내 폭력도 단순한 구타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 일상화되어 있다.
매번 이런 일이 알려질때마다 사회는 한국교육의 현실을 성토하고, 알게 모르게 그 책임을 입시교육으로 전가시킨다. 그리고 이 입시교육은 너무나 중층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은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집단적 좌절감을 가진다.
지금 한국교육이 미취학 아동때부터 시작해서 거의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대학입시 준비기간으로 전락시키고 있고, 이러한 현실이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기에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처럼 기형적인 입시교육이 아닌 나라들에서도 왕따는 발생한다. 최근 호주에서도 ‘왕따’와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대부분의 학교폭력은 일단 은폐되고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는데, 최근 일부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집단 괴롭힘 행위가 사회에 알려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호주 대법원에서 ‘왕따’ 피해학생에 대해 학교측이 100만 호주달러(약 7억6천만원)라는 거액의 피해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 대법원은 학교측이 학생 보호의 의무를 저버렸다며, 피해 학생에게 당장의 피해보상금 21만3천 호주달러에 더하여 일생 동안 벌어들일 소득에 해당하는 금액까지를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사실 단위 사건에 대해 7억원이 넘는 거액의 피해보상금 지급 판결은 무척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데, ‘왕따’에 대한 학교의 책임과 더불어 일생동안 따라다닐 ‘왕따’ 피해의 심각성을 십분 고려한 것이다.
법원에서 이러한 판결이 내려지고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되자 호주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교내 폭력과 집단 괴롭힘을 막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호주정부가 채택한 것은 ‘학교폭력 실태 홍보’이다. 즉, 모든 학교에 대해 학교 폭력의 구체적인 내용을 학부모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상세하게 알리도록 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예산지원을 중단하는 등 강제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즉, 호주정부는 학교폭력 근절의 출발점으로 폭력의 실상을 알리는 것을 잡은 것이다. 이것은 각 학교평가의 기준에 학생의 안전문제를 포함시킨다는 의미도 있으며, 또한 인권침해의 해결원칙에도 정확히 부합한다.
일단 인권침해가 발생하면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 이라는 3단계를 밟게 된다. 이것은 해당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지만, 더불어 인권침해의 관행, 인권침해의 악순환을 종식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다.
호주정부가 채택한 것은 바로 인권침해 해결의 첫 단계 진실규명에서부터 학교폭력의 문제를 풀려는 것이고, 이에 반하여 한국사회에서 폭력사실은 쉬쉬하고 대신 학교폭력은 나쁜 것이니 하지 말자는 식의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첫 단계를 생략한 태도라 할 수 있다.
‘왕따’와 학교폭력은 명백한 인권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인권’이란 가치를 소중히 지키고 있고 반대로 인권침해에 대해 얼마나 단호한 태도를 가지는가가 사회전체에 천명되어야 하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와 태도가 교육 전체에 일관되게 관통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교육이 교육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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