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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작은 인권이야기

'불량부모'와 정부 역할

작은 인권 이야기 [9]

요즘 사회적 범법자에 대한 실명공개가 전세계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동성폭행범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고, 최근 콜롬비아에서는 성폭행 가해자의 사진과 이름을 텔레비전에 광고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이중처벌이라거나 피의자나 그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 또는 범죄예방 효과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고 이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영국에서는 일명 ‘불량부모’의 명단을 웹사이트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불량부모’란 이혼 후 자녀의 양육비를 주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영국의 노동연금부는 이러한 ‘불량부모’의 경우 신용불량자로 분류해서 은행 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도 금지시키고, 신용카드 발급도 못하게 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불량부모’의 여권을 압수하고 일정한 시간의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채무불이행자라는 전자꼬리표를 붙이고, 심지어 웹사이트에 이름을 공개해서 망신을 준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 감옥살이를 제외하고 행정상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듯 보인다.  

영국정부가 이렇게 강경한 제재를 도입하게 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영국은 자녀양육비를 국가가 우선 지급하고 후에 해당 부모에게 청구하는 일명 ‘자녀양육비 국가선납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불량 부모들이 지불하지 않은 양육비 채무가 35억파운드 우리 돈으로 5조가 넘는 거액이고 이것이 고스란히 국가예산으로 충당되고 있어 그동안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즉 불량부모가 있기는 영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소한 영국에서는 불량부모가 방기하는 아동양육의 의무를 국가가 채워주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OECD 대부분 국가들이 이미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부모들에 대해 다양한 강제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국가가 먼저 채워놓고 그 다음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이다.

이것은 항상 책임소재를 먼저 따지는 한국정부와는 매우 다른 태도이다. 아이들이 지금 당장 방기되고 있더라도 부모가 살아 있으니까 아니면 독거노인이 생존에 허덕이고 있더라도 서류상 자식이 있으니까 등의 이유로 최소한의 기본권 박탈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리고는 불량부모나 불효자식을 욕하는 식이다.

물론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개인에 대해 그 책임을 추궁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인권의 보호 특히 의식주와 교육, 의료는 이 사회에서 가장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이것은 부모로서 혹은 자식으로서 개인만 가지는 책임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도 행정인력의 부족이나 예산의 부족을 얘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편제하고 배분할 것이냐가 문제이다.



이주영 한국인권행동 상임활동가

 

제9호 13면 2007년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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