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 서울대가 이르면 2009학년도 입시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전형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후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입학제도 개혁과 관련하여 매우 의미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서울대의 이런 구상이 구상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화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서울대뿐 아니라 모든 대학들이 입학전형 과정에서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과 교육적으로 소외 된 농산어촌의 아이들을 위하여 입학정원의 일부를 할당하는 지역 및 계층할당제가 법제화 되어 교육이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대학입학 제도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무엇으로 우수한 학생을 판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초중등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우수학생 판별과 관련해서 대학 측은 수능과 본고사 성적을 중심으로 대학이 자체적으로 이를 판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대학들과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은 학생이 드러내는 수능성적과 본고사 성격의 논술고사 성적은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계층과 도시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것으로 우수한 학생을 판별할 경우 교육받을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학생들은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 대학들은 고등학교 교육의 수준이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고등학교에서 얻은 성적은 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며 고등학교에서의 성적조작, 성적 올려주기 등으로 인하여 고등학교 내신성적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어떤 나라에서도 지역간 학교간의 성적 격차는 존재하며 그럼에도 외국의 대학들은 고등학교에서 얻은 평가를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고등학교의 성적 평가를 상대평가로 전환한 만큼 고등학교의 평가에 대한 신뢰를 문제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픈 대학들의 욕망을 무조건 비판할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욕구로 인해 고등학교 교육이 큰 어려움을 겪거나 학부모와 학생의 부담이 가중될 경우에도 이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느냐 것이다. 또 과연 대학들이 우수학생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는 수능성적이나 본사고사에 준하는 논술 성적이 진정 학생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교육전문가들 사이에서 학생의 성적은 학생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즉 그들이 살고있는 지역, 부모의 경제력, 사교육기관, 학교교육 환경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이의가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아무리 우수한 학생도 집안이 가난하여 열악한 학교교육 외에 다른 교육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한 농산어촌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이 수능성적이나 본고사 형의 논술을 중심으로 우수학생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삼는다면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나 농산어촌의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좋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고 이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우리 헌법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과 농산어촌의 학생들은 별도의 전형과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지역 및 계층할당제를 도입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전형방법은 이미 선진국의 유력한 대학들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각 주립대학은 해마다 신입생의 인종 및 계층 분포를 공개하고 있고 미국 하버드대의 경우는 올해부터 신입생의 20~30%를 소외계층에 할당하는 등 소수인종이나 빈곤층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학들 사이에서는 학생이 처한 사회적 환경이나 가정환경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고 SAT 등에서 비슷한 점수를 받은 학생이 있을 경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을 더 우수하게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영국은 대학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연계하여 신입생 중 사회적 약자의 수가 정부의 목표에 미달하면 재정 지원을 줄이고, 이를 초과하면 늘리는 방법으로 약자 우대 정책을 강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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