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달여 동안 여성과 이방인이라는 악조건, 특히 횡횡하는 납치위협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의 현지 소식을 전해온 이유경 특파원이 이번엔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이란으로 떠났습니다. <시민사회신문> 반미 이슬람국가로만 접했던 이란 사회를 생생하게 파헤칠 이유경 특파원의 기사를 계속 연재합니다. /편집자 |
거리에서부터 젊어지는 ‘이슬람 공화국’ 종교적 관습에 짓밟힌 여성 목소리 분출 이란 여성에 대한 인상은 처음부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담배 냄새 풀풀 풍기며 말괄량이 조카와 함께 시끌벅적하게 문을 연 그녀(20대)는 활기가 넘쳤다. 자기 짐에 이어 20kg은 족히 넘는 내 배낭을 ‘가뿐이’ 들어올리더니만 침대 위 짐칸에 또 ‘가뿐이’ 얹어놓았다. 그녀는 힘도 셌다. 아프간에서 이란으로 기나긴 국경 넘기 끝에 닿은 이란 북부 도시 마사드에서 나는 테헤란으로 향하는 기차에 바로 올랐고 그 긴 하루에 몸은 거의 나자빠진 상태였다. ‘배낭을 올려놓아야 하는데…’ 머리는 주문을 외는데 몸은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던 찰나, 같은 칸에 오른 그녀가 나타나 짐 정리를 깔끔하게 해 준 것이다. 시시각각 머리에 두른 히잡이 벗겨질라 조심하는 모습이 왠지 어색해 보였다. 고개를 15도쯤 내린 엄숙하고 종교적인 무뚝뚝한 모습의 히잡 여인들? ‘그런 쪽’으로 이란 여성을 상상한 건 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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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이란의 거리에서 데이트 젊은이들은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아직 '이란의 현상'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거리가 젊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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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테헤란 중심가 구 미 대사관에는 사진 속 '악마의 여신상'처럼 반미 그림과 구호들이 가득하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이란의 최대 앙숙이다. 50년대 민주적 정권을 친미 쿠테타로 무너뜨린 이래 친미 왕조를 지지해온 미국은 이란의 민주주의가 후퇴한 근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테헤란 거리는 발 빠르게 걷는 젊은 여성들의 씩씩한 걸음으로 가득 차 있다. 통상 여성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인근 무슬림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성들이 거리에 바글바글 댄다. 얼굴과 두 손 외에는 전부 가려야 하는 여성 히잡(복장 규정)은 묘하게 지켜지면서 또 묘하게 비껴가고 있다. 히잡을 두르고도 머리카락을 최대한 드러낸 그 놀라운 기술! 그렇게 드러난 앞머리는 염색도 하고 산만큼 세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드러나도 되는 얼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짙은 화장으로 꾸며져 있다.
나는 그게 ‘몸의 상업화’가 아니라 종교 근본주의의 제약 속에 갇힌 여성들이 자기표현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향해 ‘발악’하는 거라 봤다. 그건 이란사회의 맥락에서 보면 반체제적인 도전이다. 엉덩이 선을 가려야 하는 규율은 또 허리 잘록한 날렵한 반코트 차림의 유행을 가져왔다. 이 반코트는 차도르에 맞먹는 ‘여성국민복’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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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테헤란 시내 한 회사에서 근무 중인 이란 여성. 이란 여성들은 인근 국가들과 달리 고등교육열과 사회활동이 대단히 활발하다. |
물론 히잡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남성들의 패션감각도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꽉 달라붙는 바지와 셔츠는 기본이고 매끈하게 젤을 발라 쓸어 넘기거나 삐죽삐죽 세운 머리들, 유행임을 암시하는 ‘일자’ 턱수염까지. 남성들 역시 ‘짧은 바지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히잡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 또 여성들에 비해 엄청난 자유도 누려가며 갈 데까지 가고 있는 중이다.
거리 곳곳에는 손잡고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다. 물론 야즈드 같은 보수적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게 이란의 현상이라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종교적 규율에 신물이 나면서 근대화의 흐름을 빨리 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테헤란 거리에서조차 데이트 커플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여성학자 아프산네 타바솔리(38)의 지적이다. “그게 말이야, 그 커플들이 아직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몰래 데이트를 하는 거거든. 점점 더 많은 이란의 젊은이들이 엄격한 규율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한때 ‘반 이슬람’ 죄로 사형선고 직전까지 갔던 여류감독 타흐미네 밀라니(47)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잘라 말했다.
‘이슬람 공화국’ 이란의 거리는 이렇게 젊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단연 여성들이다. 그녀들의 꿈틀거림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대학에 여학생 넘쳐나는 이유
이란은 통상 여성교육에 보수적인 인근 지역에서 여성 교육률(열)과 사회진출도가 가장 높은 국가다. 2005년 이미 여대생이 전체 대학생의 65%를 넘어섰고, 최고 전문직으로 통하는 의사의 3분의 1이 여성이다. 그리고 공무원의 60%, 교사 80%가 또한 여성이다. 기자협회 사무총장도 여성이고, 까페에서 새파랗게 젊은 여성이 중년 남성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빌릴 수 있는 것도 테헤란의 한 풍경이다. 대도시가 ‘여성 판’인 것도 바로 여성의 고등교육과 사회진출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교육받아야 한다는 게 이슬람의 가르침이다. 진정한 이슬람은 또한 누가 누구의 우위에 있거나 열등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보수적 일간지 케이한 인터내셔널 편집장 하미드 나자피(72)는 종교적 가르침을 들어 여성 고등교육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수니파에 견주어 시아 이슬람이 보다 현실적인 해석을 달고 있기에 더 (남녀)평등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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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시아 주류의 신정일치 이슬람 공화국 이란. 이란에서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예배의식에 참여하고 기도를 드린다. 단, '남녀 부동석'의 원칙은 엄격하다. |
그의 말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인 듯 보였다. 일례로 이란에서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기도의식에 동참할 수 있다. 물론 남녀부동석의 원칙은 철저히 적용된다. 수니 국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여성들의 기도장면을 나는 이란에서 ‘충분히’ 보고 찍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 진출한 여성비율이 9%에 그치고 있는 점은 또한 신정일치국가 이란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종교가 여성의 동등함을 보장했다는 식의 논리가 별로 설득력이 없음은 종교근본주의가 지배하는 정치권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란 여성들의 높은 교육열의 진짜 배경은 다른 데 있었다.
“여성들이 기를 쓰고 대학에 가는 건 학구열 때문이 아니야. 보수적인 가족 틀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대학진학이거든.” ‘베두네 마르즈’(‘국경 없는’ 이라는 뜻) 소속 사회 운동가 알리 레자(43)가 설명한 이 ‘가출론’ 은 언론인, 사회학자, 영화감독, 사진가, 사회 운동가 그리고 여대생 자신들까지 예외 하나 없이 내뱉는 말이다. 교육에 관한 한 여성들에게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는 환경을 이용하여 여성들은 ‘독립’을 꿈꾸고 또 실현하고 있었다. 나즐리(가명)도 그런 경우 중 하나다.
나즐리는 테헤란 대학에서 여성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30대 중반 미혼 여성이다. 무역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고 있는 그녀는 가족을 안보고 산다. 남부 쉬라즈 지방 출신인 그녀는 “집을 나오기 위해 이란을 떠났고-그녀는 아프간 깡촌에서 3년간 엔지오 활동을 한 바 있다-또 집을 계속 나오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대학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쉬라즈 지방에 대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계집애가 고향을 떠나면서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다”는 고집불통의 보수적인 아버지를 대학생활 동안 견뎌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아버지와 오빠의 폭력도 견뎌내야 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 사람들이 쉬쉬해서 그렇지 이란의 가정폭력(통상 남성가족이 여성가족을 향해 가하는)은 아주 일상적이야” 대화가 깊어질수록 점점 흥분하는 그녀는 가정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가족이 보고 싶을텐데….” 고향을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이따금 들지 않냐는 나의 조심스런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쐐기를 박았다. “내 남은 인생에 가족을 볼 생각이 전혀 없어. 언니하고만 연락을 가끔 주고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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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히잡(복장규정)을 거의 적용 받지 않는 이란 남성들은 패션감각은 남다르다. |
2002년 사회학자 아부둘라 박사의 리서치에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을 겨냥한 이란의 가정 폭력은 70~80%에 이른다. 여성운동가 닐룰파 인산(24) 역시 가정 폭력이 일종의 ‘문화’ 마냥 일상적이라고 지적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자존심 때문에 좀처럼 입 밖으로 내지 않는데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며 고결한 무슬림 국가의 이미지로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고결한 여성은 해지기 전에 집안에 들어앉아야 하고, 여성은 뛰어서도 안되고, 소리를 질러서도 안 된다’는데… 이게 이게 말이 돼?” 대학생 나심 사라반디(21)도 여성차별적 의식과 관습이 여전히 광범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법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1천4백 년 전에나 통용되었던 샤리아 율법을 적용하는 게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 ‘법’의 이름으로 차별적 관습에 직간접적 보호막을 씌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속한 여성문화센터는 지금 여성차별적인 법 조항들을 폐지하기 위해 1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남편이 두 명 이상의 아내를 합법적으로 둘 수 있다는 조항도 그 중 하나다.
사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에 이미 근대화를 경험한 나라다. 이란이 여성 교육에 관한 한 진보적 전통을 갖고 있는 것도 실은 시아 종파의 논리보다는 이런 역사에 기인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또 다른 이슬람 공화국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일부 부족사회에서 여성교육을 사실상 금지하고 부르카를 뒤집어 씌워 집안에 가두거나(주로 탈레반 소속 파슈툰 족의 관습이다) 가족의 명예라는 이름으로 친족 여성을 ‘기꺼이’ 살해하는 악습을 이슬람과 전통의 이름으로 정당화해 온 것과 달리 종파는 다르지만 또 다른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이란에서는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것도 그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국제사회로부터 제제와 고립을 당해 온 이란이지만 영화만큼은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것도 이런 수천 년 예술의 전통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 다른 이슬람 근본주의의 영향력이 강한 파키스탄 북부 도시 폐샤와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영화와 음악 CD들이 불타는 시위가 벌어지는 것과도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 바로 이 예술분야다. 또 다른 이슬람 '왕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 기본권을 위해 싸워온 전통이 거의 없다면 50년대 이미 여성 투표권을 보장했던 나라가 또한 이란이다. 시아근본주의가 지배하는 이란은 그러나 이렇게 다른 전통과 문화 그리고 과거의 근대화 경험에 기반하여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다른 국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사우디와 다르다"
"친미 팔레비 왕조가 서구식 근대화를 강요하며 히잡을 금지한 건 이란의 문화적 종교적 관습에 대한 모욕이자 억압이었다. 그게 결국 이슬람 혁명을 낳았고 이제는 정반대로 히잡 착용이 법이 되지 않았나." 밀라니 감독은 친미 정권이 강요한 서구식 근대화도, 그 '근대화'가 낳은 이슬람 혁명이 가져온 또 다른 차원의 강제조치들도 모두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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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민감한 사회문제를 다뤄온 이란의 여류감독 바니 에떼마드가 여성들과 함께 마약관련 최근 영화를 소재로 대화하고 있는 장면. 수 천년 페르시안 문학과 예술의 전통을 이어온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래 표현의 자유가 제한 받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 당해왔지만 그 예술의 전통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란의 영화가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런 오랜 전통에 기인한다. |
민주적 기반을 갖고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던 무하마드 모사덱 정권을 무너뜨린 1953년 친미 쿠테타. 강요된 서구화와 부패한 친미 왕조가 낳은 이슬람 혁명. 상반된 이 두 정권은 그러나 이란 여성들이 일찌감치 지녔던 그 고결한 권리들을 앗아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공원에 앉아 자근자근 소리내어 시를 읽는 여성들, 영화감독의 강연회에서 열심히 노트하고 있는 그 똘망똘망한 눈빛들. 그들은 지금 '그 옛날' '그 누구보다도' 일찌감치 누렸었던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수십 년 보수적, 종교적 관습에 짓눌려왔던 이 '가출' 여성들의 높은 콧대가 다시 제 모양을 찾을 날은 올 것인가. 이란은 지금 여성 가출이라는 또 하나의 혁명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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