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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이유경ㅣ특파원리포트

'특종'이 목숨보다 중요?

[분석] 피랍사태 바로보기

 

군사작전 시작?… 무분별 경쟁 탈레반 자극
"무고한 아프간 민간인 희생 왜 침묵" 응수

 

최근까지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지역 등을 취재하고 이란을 거쳐 레바논으로 건너온 전선기자 이유경 <시민사회신문> 특파원이 아프간 사태 관련 긴급 기고를 보내왔다. 이유경 특파원은 본지 아프간 르포 연재를 통해 지난 3월 말부터 탈레반의 저항 전술이 자살테러에서 납치로 전환됐음을 지적한 바 있다. /편집자

8월 1일 오후 10시 40분(한국시각) 현재. 영국 BBC가 아프간 피랍 한국인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군사 작전이 시작되었다는 보도를 날리고 있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던 '군작전 준비' 보도는 로이터의 '시작되었다' 보도이후 순식간에 기정사실처럼 번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내 곧 '통상적인 작전일 뿐 인질 구출 작전은 아니'라는 다른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왜 하필 그 '통상적인' 작전을 이 엄중한 시기에 언론에 흘리면서까지 하는지 아프간 정부의 꿍꿍이속을 알 길이 없다. 그러더니 30분도 지나지 않아 '오보'로 판명되었다.

한두명의 인질이야 군사 작전으로 구출이 가능할지 몰라도 스무명도 넘는 인질이 그룹지어 흩어져 있고 무장군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 작전을 벌인다면 그건 '인질구출'이 아니라 '인질 포기'라는 걸 아무리 군사적 상식이 없는 이라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바다. 자칫 이런 보도가 탈레반을 극단적 행동으로 자극할 수도 있음을 이를 흘리는 아프간 당국이 모를 리 없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 역시 모를 리 없다. 남은 21명의  목숨이라도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길 바라는 이들은 혼란스런 보도에 억장이 무너지고 있을 터다. 그러나 이런 보도를 접한 가족 누군가 심장마비라도 일으킨들 아프간 정부와 언론이 그 비보를 책임질 것 같지도 않다.

한국언론이 더 혼란스럽다

인질사태가 시작된 이후 한국언론은 갈팡질팡 혼돈의 시기를 겪었다. 현지에 믿을만한 취재원 하나 없는 언론이 대부분이었고, 현지 취재를 해본 적이 없거나 별다른 관심도 두지 않았던 게 다수 한국언론의 솔직한 정황이었다. 카리 아흐마드 유수프가 대변인이 맞느냐 안 맞느냐를 두고도 각 언론마다 한 두건씩의 기사는 썼던 것 같다. 언론사 국제부에서 아프간 뉴스를 꾸준히 점검했거나 아프간을 취재한 이라면 유수프가 두서명 대변인중 하나가 맞을 뿐만 아니라 그가 언론과 가장 많은 접촉을 하는 대변인이라는 점을 의심할리는 없었다. 테러와의 전쟁이 6년째 계속되면서 국제뉴스의 주요한 발원국 중 하나인 아프간에 대해 한국언론은 아는 게 너무 없었다.

모르는 처지에 있다보니 쏟아져나오는 추측정보들을 분간해 낼 재간도 없고 그러다보니 언론이 단어 하나하나 받아쓰며 외신을 신줏단지 모시듯 인용하는 습성도 다시 불거졌다. 그러던 한국언론이 언제부턴가 외신을 탓하기 시작했다. "외신보도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이렇게 혼란스런 보도가 협상에서 단연 우위에 점한 탈레반에게 좋은 언론플레이 감이 되고 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대신 '이쪽'에는 더더욱 혼돈만 가중시키고 있다. 단언컨대, 외신보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른 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사실확인이나 취재에 미숙한 기자가 투입된 것도 아닐 터이다. 다만 최대 인질사태인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일부 외신들이 미확인 설들을 쏟아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외신의 인용은 그 과열성을 염두해 둔 신중성에 기반했어야 옳았다.

언론의 절제된 보도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사건 초기부터 꾸준히 지적되었던 바다.

"탈레반이 보도하나하나 다 보고 있다고 봐야 된다." 한국 언론인으로는 드물게 아프간을 90년대 탈레반 시절부터 꾸준히 취재해왔고 최근 칸다하르에서 장시간 취재활동을 벌여 온 언론인 강경란 PD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지적했다. 아프간을 비교적 최근 취재했던 필자 역시 연합뉴스 등의 언론과 인터뷰 할 때 마다 이 점을 잊지 않고 강조, 당부했다. 필자는 '카불-칸다하르' 도로를 이동한 경험도 있고 칸다하르 현지 힐라 병원-납치된 한국인들이 자원활동을 하기로 예정되었던-을 취재한 경험이 있어 '선교'를 자제해도 사실에 위배되지 않으며 조금 더 긍정적인 의제설정이 필요함을 당부했었다. 종교논쟁이 이번 사건의 본질과도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역시 절제보도의 필요성을 강조한 칼럼니스트들의 글을 적절하게 담았더랬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오마이뉴스는 그 어떤 언론보다 덜 자제했던 언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오마이뉴스의 속보와 특종은 돋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특종으로 인질 사태 보도를 잘했노라고 말할 수 없음을 또한 오마이뉴스는 잘 보여주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일부 매체의 ‘선정 보도’

오마이뉴스는 7월 31일 카불현지 다우드 칸 기자의 기사를 받아 ‘아프간 군, 인질구출작전 준비 완료’ 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작전준비완료의 출처는 아프간 국방부 자히르 아지미 대변인의 말이다. 그러나 다우드 칸 기자는 나와의 이메일 교신에서 "작전 가능성을 부인한 가즈니 주지사 메라주딘 파탄의 말도 같이 인용해서 원고를 넘겼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즈니 주지사의 말은 다우드의 기사를 번역한 오마이뉴스 한글 기사에 인용되지 않았다. 결국 다우드의 '균형잡힌' 원본기사는 오마이뉴스 편집진에 의해 '작전 완료'로 결론 난 것이다. 마치 긴박한 상황이라도 연출한 듯한 그 드라마틱한 기사는 오마이뉴스가 이번 사태에서 꾸준히 보여온 선정성의 일관된 맥락이었다.

미안하게도 나는 지금 오마이뉴스를 '희생양'으로 삼았지만(선정성이 유독 두드러졌기에), 다른 언론들도 예외 없이 속보와 특종 경쟁을 벌이며 인질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도 있는 내용들을 별로 개의치 않고 쏟아냈다. 결국 한국언론은 아프간 현지 사정에도 어두웠을 뿐만 아니라 인질사태에 대해 무엇을 중심의제로 띄워야 하고 무엇을(알고도) 자제보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 '군사 작전' 보도와 더불어 '몸값 보도'다.

이십여명의 목숨이 생사를 오고가는 극박한 상황에서 목숨 구하기를 최우선 뉴스가치로 두어야 할 인도주의적 저널리즘에 기반하여 볼 때 '몸값'은 용어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인질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돈이 오고 간다는 건 늘 미확인이었지만 공공연한 비밀처럼 간주 되어왔다. 이 공공연한 비밀을 중심의제로 보도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서방의 여러 국가들은 인질 사태를 수차례 경험했지만 '몸값'을 조명한 언론에 대해서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보도를 자제하며 조심스럽게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인질 석방 이후에 여러 가지 배경들을 쏟아내곤 했다. '돈' 얘기도 석방 이후에야 '소문'정도로 다루는 수준이다.

최고 뉴스 가치는 ‘생명’

그러나 한국언론은 '돈'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전부 '몸값'을 주요의제로 띄우며 달아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부정적 여파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탈레반은 몸값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악의적 루머를 흘린 아프간 정부를 거세게 비판했다. 탈레반이 협상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가 탈레반의 방아쇠를 또 한 번 당기게 할 수 있음을 언론은 정녕 몰랐을까. 게다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지금 서로 총구를 겨누는 전쟁 당사자들이다. 한쪽의 발언이 다른 한쪽에 아주 쉽사리 악의적으로 전달될 수 있고, 고의적으로 흘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언론은 두 진영의 그런 적대적 관계를 전혀 염두해두지 않는 듯 하다. 또 아프간 정부의 행정력과 통치력은 대단히 취약하고 부패 정도도 심해 그 무능력과 낮은 신뢰도는 비단 탈레반 뿐만 아니라 아프간 국민들, 국제사회 누구라도 혀를 차는 수준이다. 그 내부의 불협화음 역시 말할 것도 없다.  한쪽이 군사 작전 얘길 하면 다른 한쪽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도 그들 내부의 불협화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아프간 당국의 발언 인용은 이런 맥락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이유경 특파원

혼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한국인 피랍 살해 사건은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군사 작전의 경우 역시 그 가능성을 흘리거나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프간 정부의 무책임한 입장발표에 그 1차적 원인을 둘 수 있겠다. 인질 사태의 최 당사국인 한국정부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가 지속적으로 그런 말들을 흘린 건 다분히 '대 탈레반' 세력으로서의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인질협상에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언론이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기정사실처럼 몰아가면서 다시 한 번 탈레반의 방아쇠를 자극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에서 언론이 가장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뉴스가치는 '인질 목숨 구하기'이지 '특종'과 '속보경쟁'이 아니다. 언론은 인질사태 보도에서 최고의 뉴스가치가 '생명'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본의 아니겠지만' 접어두고 있다.

전쟁실패, 인질협상 과정서 투영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 차분하고 성숙하게 대응 한 건 피랍자 가족들이고, 언론의 허둥지둥 보도를 교묘하게 잘 이용하고 있는 건 바로 탈레반이다. 급기야 8월 1일 피랍자 가족 대표 차성민씨는 "확실한 정보가 아닌 보도는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탈레반. 그들은 할 말이 많았다. 29일 "무고한 인질들을 무사히 석방하라"는 교황의 메시지에 탈레반은 "무고한 아프간 민간인 희생에는 왜 침묵하냐"고 응수했다. 여성인질살해 위협에 대해서도 탈레반은 점령군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여 왔기 때문이라고 맞대응했다. 탈레반의 민간인 납치 전술이야 상식 있는 이라면 누군들 비판하지 않겠는가마는 지난 6년간 미국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이 무슨 짓을 해왔는지가 지금 탈레반의 입으로 아주 적나라하고 호소력있게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레바논=이유경 특파원 penseur21@hotmail.com

 

제14호 4면 2007년 8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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