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향한 그들의 끝없는 욕망
그녀가 또 사고를 쳤다. 4월 초 서울여성영화제에 초대되어 아프간 여성들의 신음을 한국에도 알린 바 있는 영화 속 주인공, 말랄라이 조야. 아프간 의회의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으로 무자헤딘 군벌들을 전범 기록을 거침없이 들춰내 온 조야는 최근 아프간 최대 민간방송국인 톨로(TOLO)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프간 의회는 동물 우리보다 못하다. (동물)우리에는 최소한 당나귀라도 있어 짐도 나르고 소가 있으니 우유라도 얻을 수 있지만….”
이 인터뷰가 나간 며칠 후 5월 21일자로 의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야의 의원직 박탈 안을 통과시켜 그녀를 쫓아냈다. 의회를 모욕했다는 게 퇴출배경이다. 그러나 전 무자헤딘 군벌들이 주도하다시피 해온 의회가 '때'를 기다렸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조야는 이미 수년 째 온갖 살해협박에 시달려 왔고 부르카와 무장 보디가드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퇴출 이후에도 조야는 불의와 군벌들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노라 선포했다.
|
이유경 특파원 |
90년대 초반 내전으로 초토화된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카불 시내 한 '초토화' 구역에서 부르카 여인들이 동냥을 멈추고 잠시 휴식하고 있다. |
말랄라이 조야 쫓겨나다
아프간 사회에서 전 무자헤딘 군벌들을 대놓고 비판하는 이는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하는 편이 솔직한 상황이다. 굳이 꼽자면 조직으로는 아프간 여성혁명위원회(RAWA)가 있고 개인으로는 말랄라이 조야 정도다. 물론 아프간독립인권위원회도 전 무자헤딘 지도부에 대한 비판적 발언에 동참해왔지만 전면적으로 싸우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총대를 멘 이 여성들 뒤에는 공개적 비판에 감히 나서지는 못하는 그러나 군벌들의 전쟁범죄에 이를 가는 셀 수 없는 개인들이 숨죽여 살고 있다.
|
이유경 특파원 |
소련점령에 대한 저항으로 10대를 바쳤던 파트말(37)이 당시 사진을 보며 회상하고 있다. 그는 내전 기간 난민이 되어 파키스탄 한 난민촌에 이십여년째 살고 있다. |
소련 점령 종식 후 92년부터 96년까지 이 군벌들이 벌인 ‘무장권력투쟁’은 공식 통계로만 6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많은 아프간 시민들의 머릿속에 ‘일상적이었다’ 라고 기억되는 민간인 납치와 강간의 통계는 전혀 잡히질 않는다. 수도 카불은 완전 초토화되었다. 카불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파괴의 잔해들은 대부분 이 내전이 남긴 흔적들이다. 아프간을 28년 취재해온 파키스탄 기자 아흐마드 라쉬드는 “내전 기간 취재가 가장 위험했다.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고 내게 말한 바 있다.
아프간 전역과 카불을 나눠 먹기 한 이 정파들이 지역별로 또 인종 별로 일정 정도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시민들(특히 카불시) 다수는 무자헤딘이 만들어놓은 내전의 잿더미에 깔려 숨도 쉬지 못했고 비명도 지르기 전에 목숨을 잃거나 난민이 되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았다. 무자헤딘들이 벌였던 80년대의 대소항쟁을 들먹일 필요도, 대 탈레반 전투를 내세울 근거도 없다. 이 시절은 대소항쟁 기간도 아니었고, 94년 탈레반 운동이 동을 트기 전에 내전은 이미 치열했다. “우리는 대소항쟁의 영웅적 전사”라거나 “우리야 말로 대 탈레반 전사들”이라는 것도 내전을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진짜 무자헤딘들은 소련점령에 죽어라 싸웠고 그들이 철수 한 후 총을 놓았어.” 14살 때부터 소련 점령에 저항해온 파트말(가명)은 내전을 벌였던 무자헤딘 사령관들은 진정한 무자헤딘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했다. “내 10대를 대소항쟁에 바쳤어. 그리고 난 이 땅이 평화적으로 재건되길 바랬거든. 결국 그 정파들이 지들끼리 또 싸우는 바람에 난민이 되었지만.” 파트말은 지금 파키스탄 북부 난민촌에 살고 있다.
진짜 무자헤딘은 누구?
소련 점령 이후 이어진 내전 기간은 아프간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기간으로 주저 없이 꼽힌다. 이 기간 동안 ‘국제사회’는 아프가니스탄을 거들떠도 보지도 않았다. 비록 파키스탄, 이란, 러시아, 인도, 미국, 터키 등 이웃국가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정파들을 무기와 자금으로 전폭 지지한 탓에 내전이라기 보다는 ‘대리전’에 가깝기도 하지만. 하여 가장 주목 받지 않았고, 가장 기록되지 않았던 아프간의 암흑기이다. 그 암흑기의 주연들은 대 미국의 대 탈레반 전쟁에 협조한 이래 또 다시 권력 구석구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 1월 그들이 장악한 의회가 통과시킨 소위 민족화해 법안은 스스로의 과거범죄에 사면을 내렸다.
“아프간에는 지금 남아공의 용서와 화해과정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그 군벌들을 용서하고 말고는 아프간 시민들이 결정할 몫이다.” 아흐마드 라쉬드는 “시민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상황은 호락호락하질 않다. “남아공의 백인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청문회를 통해 공개사과를 했기 때문에 그런 화해과정이 가능했다. 아프간은 상황이 다르다. 전범자들이 그들의 죄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건 저항이었다고 고집한다.” 아프간 독립 인권위 대변인 나더 나드리의 말이다. “우린 지금 그런 화해법안이 필요하지 않다. 그 사면법은 전범 기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나드리는 사면법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 사면법에 반대 입장을 보여온 아프간 인권위 위원들 일부에게도 살해 협박이 전해졌다.
|
이유경 특파원 |
90년대 초반 내전으로 초토화된 지역은 현재 수많은 넝바주이들의 일터가 됐다. 넝마주이 남자와 한 소년이 일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이렇게 무자헤딘 군벌들은 여전히 휘두를 ‘총’을 충분히 갖고 있다. “전 무자헤딘 지도부가 아프간 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자미아떼 이슬라미(무자헤딘 최대 정파) 정치 지도자 라바니의 말이 암시하듯 그들은 많은 것을 장악하고 있는 현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걸 원하고 있다. 권력을 향한 그들의 욕망은 끝도 없다.
“그들은 스탈린·마오주의로 무장해 있다” 불하누딘 라바니 (67·전 아프간 대통령/민족연합전선 의장)
아프간 의회가 소위 ‘민족화해’ 법안을 통과시킨 후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비판과 우려가 쏟아진 가운데 한때 적이었던 군벌들이 ‘민족연합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뭉쳤다. 소련치하의 장군들은 물론 전 국왕의 손자까지 동참한 채 지난 4월 출범한 연합전선의장 불하누딘 라바니를 인터뷰했다.
|
이유경 특파원 | 리바니는 무자헤딘 최대 정파인 자미아떼 이슬라미의 정치 지도자이고 내전 기간인 92년부터 96년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했다. 2001년 탈레반의 대패 직후 ‘임시 정부’에서 잠시 대통령직에 돌아온 바 있다. 현재 그는 선출된 국회의원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대소저항’과 ‘대 탈레반’ 전투를 강조했지만 소련도, 탈레반도 없던 90년대 초반의 내전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왜 이 시점에서 민족연합전선인가? ▲어떤 나라라도 위기에 직면하면 정치적 연대 전선이 필요하다. 아프간이 지금 그런 상황이다. 평화와 치안을 정착시키고 정치적 해결을 위해서 필요하다.
-그 전에 존재했던 북부동맹과는 아주 다른 건가? ▲큰 차이가 있다. 소련 점령 시절 우리와 싸웠던 이들이(소련 치하 장군들) 이번에는 연합전선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개인인사들도 함께 하고 있다.
-연합전선이 ‘민족화해’를 내걸고 활동할거라 본다. 그러나 그 ‘민족화해’ 라는 이름의 법안 (1월 아프간 의회가 통과시킨)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전 무자헤딘 사령관들의 처벌을 주장하며 그들에게 사면을 부여한 그 법안을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연합전선 목적은 화합과 치안”
▲연합전선의 주요 목적은 각기 다른 인종간의 화합과 치안확보다. 우리는 장기적 생명력을 지닌 연합전선을 만들고 국가적 전략을 창안하고 싶다. 민족화해라는 게 그 국가적 전략이 되어야 한다. 지하드(성전) 초기 시절 참여했던 모든 이들이 함께 하고 각 인종의 대표들이 동참하고 이런 참여를 통해 민족화해를 달성해야 한다.
인권단체의 비판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우리야 말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인권을 옹호하고 인격과 기본권을 옹호한다. 인권을 옹호하는 건 이슬람의 가르침이고 우리의 믿음이다. (아프간 독립) 인권위의 보고서를 보면 어떠한 논리적 가치도, 헌법적 기반도 없다. 그 보고서는 정치적으로 음흉한 그룹에 의해 작성된 보고서다. 아프간에서 일하는 음흉한 그룹이 외국 엔지오등의 도움을 입어 그 적을 해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적이 바로 점령에 맞서 아프간의 존엄을 위해 싸웠던 무자헤딘 전사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산주의, 맑시즘, 특히 스탈린이즘과 마오이즘으로 무장해있다. 그들은 독립적인 정치 캠페인을 벌이는 게 아니라 공격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달성하고 활동하고 있다. 아프간이 외세에 점령당했을 때 그들은 (저항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 기간 그들은 서방으로 떠났고 그 지역 정보기관에 협조하느라 바빴다. 이제 그들이 아프간에 와서 어떤 기회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 엔지오나 외국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무자히딘에 반대하는 그런 보고서나 만들고…. 시마 사마르(아프간 독립인권위원회 위원장이자 여성운동가)도 그 중 한 명 이다.
-지금 어느 조직을 말하는 건가? 내가 언급한 건 뉴욕에 베이스를 둔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다. 휴먼라이츠 워치는 어떤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조직이다. ▲휴먼라이츠 워치가 바로 아프간 인권위의 보고서를 이용해서 그들의 보고서를 다시 작성한 것이다. 출처가 다 거기서 거기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발로 얻은 정보를 봐도 아프간 일반 시민들이 그 보고서의 비판에 동의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아마 거리에서 좀 찾을 수 있을 거다. 그 인권단체들은 심지어 (전쟁) 장애자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 장애자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이용한다. ‘무자헤딘 지도부를 찾아가서 고의적으로 문제를 일으켜라’ 라고.
-소련점령에 싸웠던 아프간 무자헤딘의 대소 항쟁은 별 이견 없이 인정받는 저항이었다. 그러나 소련군이 철수한 후에 벌인 내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왜 전쟁을 벌였나? ▲그 전쟁 역시 저항이었다. 당시 외세가 개입하고 있었다. 일부 외세가 탈레반을 지원했다. 2001년 9·11이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그 외세는 이제 테러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9·11 이전에는 바로 우리가 탈레반과 싸웠다.
탈레반과 정치적 대화할 것
-90년대 초반은 어떤가. 그때는 탈레반 운동이 동도 트기 전인데. 그것도 외세에 대한 저항이었나? ▲그 때에도 외세가 개입하고 있었다.
-당신이 정치 지도자로 있는 자미아떼 이슬라미의 최고 사령관 마수드(2001년 암살)가 이끄는 부대도 외세의 지원을 받지 않았나. 부인하나?
▲우리는 유엔이 인정했던 세력이었다. 맞다. 우린 정치적 지원을 받았다. 탈레반의 영향력 확장을 우려하던 일부 국가가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 탈레반 때문이다.
-아프간 현 정부와 시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부패와 미숙한 국정 운영 등 문제가 많다. 카르자이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군대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치안과 아울러 그런 문제들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도 민족연합전선에 참여할 수 있나? ▲아프간 의회는 또 다른 안을 갖고 있는데, 그 법안에 따르면 탈레반도 민족화해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대화와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
-연합전선이 탈레반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