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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이유경ㅣ특파원리포트

한번 난민은 영원한 난민

특파원리포트-아프간을 가다[4]

돌아온 귀향민 다시 난민촌 악순환
학교대신 가족 생계 책임지는 아이들


“돌아오라 모국으로! 라디오 방송을 타고 카르자이(대통령)가 그랬어. 이제 전쟁은 끝났고 안전하게 살 공간도 마련해주겠노라고. 근데 막상 와보니 살 곳이 있어야지.”

카불 북서부 먼지가 풀풀 날리는 카이르카나 지역에 늘어선 천막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누가 보아도 영락없이 난민캠프 꼴을 하고 있는 이 기다란 텐트행렬은 그렇게 돌아온 귀향 난민들이 갈 곳 없어 만든 소위 ‘귀향 난민촌’이다.

이유경 특파원

카불 시 발라 와제르 지역에 전 군 건물 안팎에도 귀향 난민들이 살고 있다. 전기가 24시간 전혀 들어오지 않는 건물 안은 대 낮에는 암흑 천지다. 창문이 없는 탓에 겨울에는 천막촌이 더 낫다고 말하는 주민들은 말한다. 화장실의 부재는 특히 여성들에게 큰 곤혹이다.


귀향 난민촌의 아이들

이 귀향 난민촌에 사는 소녀 사미라(11)는 하루 30분에서 1시간가량 공사판에서 빗자루 질을 하고 주당 10 아프가니(약 200원)원을 번다. 그녀의 아버지 무하마드 알람(50)은 96년 탈레반 초기 시절 총을 맞고 다리를 잃었다. 그저 여기저기 목발 짚고 떠도는 게 그가 하는 전부다.

이유경 특파원

약 6년 전 파키스탄에서 돌아온 난민 소녀 사미라는 하루 30분에서 한 시간 가량 공사판 빗자루 질을 하고 주급 10아프가니(약 200원)을 받는다. 탈레반의 총격으로 다리를 잃은 사미라의 아버지 알람은 다른 많은 가정의 아버지들처럼 전혀 일을 하지 못한다.

“우리 남편? 정신이 좀 나가서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녀. 내가 남의 집 빨래를 해서 먹고 살지.” 꼬질꼬질한 텐트 안으로 나를 초대한 또 다른 난민 여인 로야(27)는 예상대로 손을 내밀었다. “우리 좀 도와주면 고맙겠어.”

전후 물밀듯이 돌아온 이 귀향 난민들은 크게 세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 돈이 제법 있어 돈 들고 전쟁을 피해 나갔다 돌아온 이들. 이들 일부는 외국 군대와, 국제 NGO와 기자들이 득실대는 전쟁 특수를 타고 괜찮은 벌이를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들은 난민이라는 일상적 이미지와 상당히 거리가 있다.


두 번째 그룹은 그럭저럭 살 공간 정도는 마련해서 살고 있지만 수입원이 거의 없는 빈곤층이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약을 받는 아프간에서 밥벌이 몫은 아들들에게로 고스란히 넘어가는데 실업난이 극심한 터에 절대 다수가 빈둥거리고 있다. 거의 예외 없이 통역 일자리를 물어왔던 오다가다 만난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오랜 난민 생활 끝에 전후 귀향하여 할 일이 없는 가장들이었다.

2년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해 결국 페샤와르 난민촌으로 돌아가는 가정도 있다. 이 빈곤층에서 영어를 잘하는 '용'이 나오기도 쉽지 않은지라 그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세 번째 그룹은 절대 극빈층으로 살집도 일자리도 아무것도 없어 도심 속에 텐트촌을 형성하거나 구멍이 사방으로 뚫린 구 군사 시설물 같은 곳에서 집단 체류하고 있는 경우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룹을 뜯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통상 밥벌이 가장 노릇을 하는 아버지가 다리 하나를 잃은 전쟁 부상자이거나 전쟁 과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대 식구라는 점이다.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예닐곱 살짜리 아이들의 아버지는 많은 경우 불구였고, 역으로 집 안팎을 떠도는 불구 아버지 가정을 들여다보면 그 집 소년들은 대부분 '일터'로 나가고 없었다.

"10살짜리 아들과 7살짜리 아들이 거리에서 일을 해서 먹고 살아. 다른 방법이 없어."

카불 칼라와제르(Qala Wazer) 지역의 한 어두컴컴한 건물 안 한 방에 들어앉은 하비불라 (Habibullah, 40)는 말했다. 그 역시 90년대 초 내전 기간 집안으로 날라든 로켓포로 다리를 잃었다. 누가 쏜 것에 맞았는지는 당연히 알 길이 없다.

상이군인과 과부들의 삶

약 1백 명 정도 거주하는 이 건물에는 창문도 화장실도 없다. 이곳 주민들이 건물생활보다 텐트생활이 차라리 낫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들은 남들이 보지 않는 밤에만 들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 뿐이라 여간 곤혹을 치르는 게 아니었다.

이유경 특파원

진보적 여성단체 아프간여성 혁명위원회가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 덕에 진보적 영향력을 많이 받고 있는 케와 캠프에서는 여학생 대 남학생의 축구 시합이 자주 벌어진다. 사진은 여학생들이 전반전을 마치고 작전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이처럼 귀향한 난민들도 생활이 난민수준이기는 별 다를 바 없다. 아프간 외무부 장관이 이란 측에 난민 송환을 연기 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이미 귀향 난민들로 차고 넘쳐 수용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인데, 실은 능력만 없는 게 아니라 의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

절대 다수 극빈층을 형성하는 귀향 난민들을 뒤로한 채 나날이 심각해지는 아프간 관료들의 부패양상은 일상이자 아프간 미래에 최대 걸림돌-탈레반 보다 더- 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 가운데 수십만 귀향 난민을 위한 안이 제대로 나올 턱이 없다.

일례로 카불 중심가 쉐르푸르라는 지역을 보자. 이 지역은 3년 전 빈곤층의 주택 마련을 위한다며 정부 개발 프로젝트가 발표된 곳이다. 그런 지역이 지금은 화려한 대 저택으로 가득 차 있고 여전히 저택 짓기 공사로 여기저기서 뚝딱거리고 있다. 곳곳에는 ‘하우스 렌트’ 안내가 붙어 있는 이 고급 저택들은 돈 많은 외국 NGO와 저택을 살만한 극소수 부유층을 위한 장사 속으로 변질 되었다.

악명 높은 군벌 도스텀 장군의 집도 이곳에 두 채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천 개도 넘는 NGO가 활동하고 대사관이 몰려 있는 옆 구역 샤하레 나우로 이어지는 이들 전 구역은 전후 재건 실패의 그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수도 카불이지만 이 구역에서만큼은 그 비싼 발전기가 사방에서 작동한다. 이 얼마나 낭비이고 모순이며 실패의 그림인가!

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자들과 NGO 직원들이 최소한의 치안이 담보된 이 '외국인 특수 구역'으로 몰려 그 비싼 호텔에 묵어야 하는 것도, 그 여파로 부의 증가가 집중되고 아프간 물가가 뉴욕물가에 버금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모두 재건 실패와 부패가 빚어낸 빈부격차의 결과물이다.

이유경 특파원

진보적 여성단체 아프간 여성 혁명 위원회가 운영하는 케와 캠프의 학교 남학생 기숙사. 라와 창시자(87년 암살당함)인 미나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탈레반 병사 모집센터로 전락한 수많은 난민캠프와 달리 케와 캠프는 진보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보기 드문 난민촌이다.


두 달 반 동안 내가 만난 그 수많은 난민들과 시민들 누구도 천 개도 넘는 국제 엔지오들의 구호에 영향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저 난민촌의 텐트에 박힌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 마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외국인 특수 거리 곳곳에서는 오늘도 최소한의 자존심이나마 지켜줄 부르카를 두룬 과부들이 여기저기서 동냥 중이다.

또 다리 잃은 아버지 대신 돈벌이에 나선 소년들이 껌을 팔고 잡지를 팔고 구두를 닦고 있다. 유엔은 아프간 난민들의 고향복귀를 분쟁 종료 후 자발적인 난민 귀향의 성공적 사례로 거론하곤 했지만 현실은 난민들의 지리적 위치만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그저 귀향했다고 '성공'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현존하는 음지의 그늘은 너무 짙었다.

외국인 특수구역 가로지르는 난민들

아프간 난민들의 국경 방황은 계속되고 있다. 치안이 악화되는 아프간을 다시 떠나 폐사와르 난민촌으로 돌아와서 일당 100 파키스탄 루피(약 1천600원)에 동굴 같은 방을 렌트해 살고 있는 바르잔(18)처럼, 새벽 2시부터 저녁 6시까지 벽돌을 열심히 깨고 만들어 주급 5천루피 (약 8만원)를 받아 대가족을 먹여 살리는 젊은이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 중노동 일거리가 항상 있는 것도 아니다.

파키스탄-아프간-이란 이 세 나라를 배회하고 또 배회하는 이들. 세계 최대의 난민 배출국 중 하나인 아프간의 수백만 난민들. 그들은 어디에 살건 그때나 지금이나 ‘난민’ 수준을 벗지 못하고 있다. 고향 떠난 이들도, 귀향 난민도, 그리고 다시 난민촌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모두 난민이다. 한번 난민은 영원한 난민이다.  

아프간=이유경 특파원 penseur21@hotmail.com

 

제6호 10면 2007년 6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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