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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시민경제

이건희 회장 천상의 존재?

삼성 회장의 특명과 ‘국민검사’

에버랜드 사건 발생 10년, 이 회장 고발 무려 7년
‘국민의 검찰’이 아닌 ‘삼성 회장 변호사’ 되려는가
재벌총수 사회적 특수계급으로 인정하는 주장 불과
검사들의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정의’는 어디
어떤 압력도 뚫을 소신 있는 검사는 한국에 없을까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다는 ‘삼성공화국’의 이건희 회장도 한 때 검찰에 불려가고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된 적이 있다. 바로 지난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서 뇌물제공자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 후 이건희 회장은 앞으로 자신이 검찰청에 나가는 일만은 절대 없도록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실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회장은 정말 어떤 사건으로도 검찰청에 간 일이 없다. 아니 검찰이 이 회장을 부르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 때에도 검찰은 이건희 회장을 안 불렀다. 그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이학수 부회장까지는 불렀지만 이 회장은 부르지 않았다. 2005년의 안기부 X파일 사건 때도 검찰은 그를 불러 조사하지 않았다. 아니 서면조사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이 회장 소환 불가?

그러나 지난달 30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발행 사건으로 기소된 에버랜드의 전·현직 사장 두 사람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1심 재판처럼 유죄가 선고됨에 따라 12년을 채워가는 ‘검찰청에 가지 않기’ 기록이 곧 깨질 것으로 내다보였다. 에버랜드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 회장을 빼고 깃털에나 다름없는 임원 두 사람만을 기소했을 때부터, 그리고 1심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된 다음에도, 검찰은 1심이나 항소심 재판 결과가 유죄로 나오면 이 회장 기소를 결정하겠다고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은 이 회장의 기록을 깨뜨리지 않으려 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에버랜드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과 기소여부를 허태학, 박노빈 두 사람의 대법원 판결 뒤에 결정할 것이라 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 그가 법정에 세워지는 날이 또 다시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이 내린 ‘특명’은 삼성그룹 임직원에게 내린 것인데, 검찰이 그 특명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에버랜드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고, 이 회장이 핵심 인물로 고발된 지도 무려 7년이 지났다. 에버랜드 사건의 하수인에 불과한 허태학, 박노빈 두 사람이 법정에 세워진지도 벌써 3년 6개월이 지났고 1심 재판에 이어 2심 재판에서도 유죄가 선고되었다. 그 시간들도 모자라 시간이 더 필요하다니….

항소심 끝난 지금도 기소 안하는 검찰

검찰은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 씨와 박노빈 씨, 그러니까 계열사 임원 두 사람을 법정에 세웠다.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 격인 이학수 부회장도 불러 조사했고, 알려진 바로는 이 회장의 아들이자 에버랜드 사건의 수혜자인 이재용 상무도 서면조사했다. 그러나 유독 이건희 회장만은 검찰청에 출두하라고 하기는커녕 서면조사도 한 적 없다. 검찰에게 이건희 회장은 ‘천상의 존재’인가 보다.

김상택 기자

참여연대는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의 이건희 회장 수사 및 기소 유보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이 이 회장을 항소심이 끝난 지금 기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말은 정말 검사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인가 싶다. 그는 이 회장을 지금 법정에 세우나 허태학, 박노빈 씨의 대법원 판결 후에 세우나 똑같다고 말했다. 이게 범죄자를 기소하여 하루라도 빨리 사법정의를 세워야할 검사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안 지검장의 말은 살인자의 살인행위를 확인했지만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있으니, 자유롭게 놓아두다 공소시효 직전에 수사해서 기소해도 문제없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게 검사들이 배운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정의’인가?

이건희 회장 법정에 세울 ‘국민검사’를 찾자

이건희 회장이 에버랜드 사건의 핵심이라는 점은 검찰도 이미 인정해왔다. ‘주인이 바뀌는 일인데 머슴이나 마름이 주인의 말없이 할 수 있느냐’라고 말한 적도 있고, ‘이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기소할 수 있을 정도로 수사가 돼 있어 부르기만 하면 된다’고도 말한 게 검찰이다.

그러던 검찰이 ‘머슴과 마름’에 불과했던 임원들의 항소심 재판이 1심 재판처럼 유죄가 인정된 마당에 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나.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나 다름없다는 이건희 회장과 직접 대면할 상황이 눈앞에 닥치자 두려워진 것인가?

검찰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법과 원칙을 두려워하지 않고, 재벌기업 총수를 두려워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검찰은 ‘국민의 검찰’이 아니라 삼성의 변호사, 아니 삼성그룹 회장의 변호사가 되려고 한다. 정말 통탄하고도 통탄할 일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삼성왕국’의 이건희 회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국민의 입장에서, 오직 법과 정의의 원칙만을 앞세우는 ‘국민검사’를 찾아야 할 판이다.

‘삼성이 가지는 무게, 이건희 회장이 가지는 무게가 일반사건과는 좀 다르다’는 안영욱 서울중앙지검
장의 발언은 법 앞에 평등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질 수 있으며 재벌총수라는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해 줘야한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강정구 교수를 구속하려는 검찰에 대해 법무부장관이 지휘권을 행사했을 때, 반기를 들고 법무부장관을 비판하던 검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안영욱 지검장의 발언을 접하며 용기있게 ‘그건 아니다’라고 나서는 검사가 한 명도 없다니 슬퍼할 일이다.

지난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 국민으로부터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팬클럽이 만들어졌던 검사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의 면전에서 대통령이 연루된 과거 사건을 거론하며 따지던 검사들,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들을 구속하여 단죄했던 그 검사들을 시민들은 ‘국민검사’라고 칭송하고 박수를 보냈다.

에버랜드 사건에서도 비록 임원급에서 그쳤지만, 그 임원 두 사람을 기소하기 위해 상부의 은근한 압력을 뚫고 나간 용기 있는 검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지금 검찰의 한계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외압은 이겨냈지만, 재벌권력에게는 점점 더 붙잡혀 가고 있다. 재벌그룹에서 일하는 임원까지는 호통 칠 수 있지만 재벌총수, 그것도 현대자동차그룹이나 SK그룹 등 2~3위 그룹과는 현격한 격차를 벌인 삼성그룹의 총수 앞에서는 완전히 주눅 들어 있는 게 검찰의 한계다.

안되면 시민사회가 만들어야 한다

재벌총수, 정확히는 삼성그룹 총수 이건희 회장을 검사실에 불러놓고도 주눅 들지 않는 배짱을 가진 검사가 필요하다. 지금에라도 없다면 우리는 그런 검사를 길러야 하고, 그런 사람을 검사로 뽑아야 한다. 깃털에 불과한 임원 몇 명 수사하고 사법처리 한 것만으로는 사법정의를 세웠다고 만족하지 못하는 검사가 필요하다. 종범은 봐주더라도 주범만은 반드시 잡겠다는 검사가 필요하다. 이미 재벌의 영향력에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휘둘리고 있는 상관들이 쏟아 붓는 다양한 형태의 압력도 뚫어나갈 소신 있는 검사가 필요하다. 이들이 ‘국민검사’이다.

우리가 찾는 ‘국민검사’는 사건이 발생한지 10년, 검찰에 고발장이 접수된 지 7년이 지난 삼성에버랜드 사건의 핵심 인물, 바로 이건희 회장을 여태껏 직접 조사한 번 한 적 없는 검찰의 모습을 진정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검사요, 죄지은 자라면 그 누구라도 엄정히 조사하여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용기를 갖은 검사이기도 하다.

오직 법과 정의만을 생각하고 국민만을 믿고 이건희 회장, 아니 그 누구라도 법의 심판대에 올릴 ‘국민검사’를 찾자. 재벌의 변호사가 되기를 자처하는 검사를 내쫒고 ‘국민검사’를 찾아야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그런 ‘국민검사’는 정말 없단 말인가.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제9호 6면 2007년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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