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2003년 이후 30대 기업집단 분석
미국, EU 등에선 기업의 담합을 중대한 범죄로 보고 제재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국내 대기업집단들은 담합의 범위를 소비재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당국의 규제와 처벌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경실련은 2003년 이후 30대 기업집단이 연루된 담합 사건을 분석한 결과를 지난 3일 발표했다. 분석결과 30대 기업집단 내에 14개 기업집단이 1번 이상 담합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과 최근 민영화된 8개업체를 제외하면 63.6%의 대기업 집단이 담합을 한 셈이다. 반면 담합을 하지않은 기업집단은 한진·하이닉스반도체·동부·현대·신세계·지엠대우·하이트맥주·대우건설 등이었다.
SK 과징금 436억으로 최대
경실련에 따르면, 30대 기업집단의 담합은 총 35건이었으며 SK, LG텔레콤, GS칼텍스, CJ는 한번 이상 담합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복된 경우를 제외하고 담합에 참여한 계열사 수는 27개였다. 담합판정 계열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집단은 LG화학·LG텔레콤·데이콤 등 7개 계열사가 과징금을 부담한 LG였다.
과징금 총액이 가장 많은 기업집단은 지난해 SK텔레콤의 음성통화 무제한 담합과 올해 SK(주)의 휘발류 판매가격 공동인상이 적발된 SK로 436억6천만원을 물었다. 두산이 405억 천8백만원, LG가 384억 7천76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담합 판정을 받은 계열사 27개의 분담금 평균은 76억원이었다.
담합의 소비자피해액을 관련매출액 15%로 잡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경실련이 추산한 2003년 이후 대기업집단 담합의 소비자피해액은 4조7천47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단합사건의 과징금 총액은 소피자피해액의 약 9%인 4천279원에 불과해 과징금의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담합 이후 공정위가 해당사건을 적발하여 제재가 진행되기까지는 평균 55.6개월이 소요됐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3월 경실련이 발표한 2005년 이후 과징금 10억 이상 담합사건 조사에서 적발소요시간 49.4개월보다 대기업 집단의 담합을 적발하는 데 6.3개월이 더 소요됐다는 결과다. 이정주 경실련 간사는 “표본집단이 다르긴 하지만 지난번 분석에서 다른 기업들이 포함됐던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집단의 담합이 중소기업의 담합보다 더 정교하고 은밀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고발 15건 모두 약식기소 그쳐
과징금 부과를 뿐 아니라 검찰 고발 등 형사도 수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고발은 총 15건이었지만,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6건은 고발이 면제됐다. 또 검찰고발 15건 모두 약식기소처분에 그쳐 수사당국의 담합근절 의지가 미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위 5대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형사처벌을 분석한 결과, 삼성은 검찰고발 1건 면제 · 2건, SK는 고발 2건, LG는 고발 3건·면제 1건으로 나타났다. 반면 3위 현대자동차는 담합에 연루된 적이 없었다. 이정주 경실련 간사는 “자동차의 경우 시장 자체가 독과점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단합의 조건이 형성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독과점 성격이 약한 분야에서는 담합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속고발권 폐지·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현재 세계 각국은 담합에 대한 규제강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담합을 중대한 범죄로 보고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단속을 한다. 담합에 대한 규제강화는 자국기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타국기업에도 적용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국의 규제당국으로부터 집중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이닉스반도체와 삼성전자 임직원이 담합 혐의로 미 정부에 막대한 과징금을 내고 실형까지 선고받았다.
하지만 규제당국의 담합에 대한 제재 수준은 불공경경쟁의 소비자 피해를 철저히 막는 세계적 흐름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 EU 등 에서는 적발된 담합행위에 대해 고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제도적 제재기반이 정비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1974년 100만달러였던 담합 벌금액이 지난 2004년에는 1억 달러까지 인상됐다. 반면 우리의 경우 대기업집단이 연루된 35건의 담합사건 과징금이 2천671억원에 불과했다.
현행법에 기업의 3년간 총매출액 평균의 10%를 넘지 못하도록 상한선이 설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담합 상품 매출액의 10%를 넘지 못하도록 재규정하고 있어 과징금제도가 기업의 담합규제가 느슨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담합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규제장치 강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박완기 경실련 정책실장은 “담합을 하더라도 기업들이 가징금을 10%만 내면 되기 때문에 담합을 막을 경제적 유인이 존재하는 않는 셈이다”며 “과징금 상한선이 폐지되거나 담합적발 기업은 일정기간 정부조달 사업에 참여 자격을 제한하는 등 실질적인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징금 현실화와 함께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하고 있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규제당국과 사법당국이 담합의 적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의영 경제정의연구소장(군산대 교수)은 “국내에선 전속고발권으로 인해 민간이 담합에 대해 소송할 수 없다”며 “피해당사자가 고발을 할 수 있어야 시장감시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OECD, 한국 형사처벌 강화해야
OECD는 지난 3월 경성카르텔(독점력의 형성·강화·행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담합행위)은 개인의 책임을 강력히 묻기 위해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강제조사권을 도입할 것을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권고한 바 있다.
담합을 막기 위해선 기존 제도를 보완하는 작업과 함께 다른 국가에서 이미 시행 중인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담합행위에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민간에서 담합에 따른 손해액의 3배까지 민사 소송을 통해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화된 상태다.
이의영 소장은 “담합 등 대부분 불공정 행위의 피해자가 중소기업인데도 매출의 80%를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민사소송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대기업의 배상규모가 막대해지기 때문에 불공정 행위의 예방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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