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역 2주 동안 민간인 피해 100여명 미군 ‘침묵하거나, 혹은 부인하거나’ 비명횡사 속출해도 책임은 묻지 못해 지난 9일 오전 또 하나의 비보가 날라 들었다.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 지방의 상귄 지구에서 전 날 ‘동맹군’의 군 작전으로 21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이라크를 누르고 톱으로 보도된 드문 경우였다.
한국 자이툰 부대가 주둔중인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서 12명의 목숨의 앗아간 자살 공격보다 피해수치도 컸다. 심지어 탈레반은 50명의 민간인이 죽었다고 주장했고 현지 주민들은 40명이라 했다. 혼선은 수치뿐만이 아니라 ‘누가 죽였느냐’는 물음에서 극명하게 빚어졌다. 주요 외신이 표현한 ‘동맹군’ 혹은 ‘외국군’이 ‘미 동맹군’인지 아니면 ‘나토동맹군’인지가 문제였다. 미 동맹군과 나토주도의 국제치안보조군(ISAF), 이 두 동맹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로 다른 지휘체계 하에서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 전쟁, 대상은?
전자는 유엔의 위임을 받은 동맹군이고, 미 동맹군은 2001년 전쟁 이래 알카에다 추적 등을 주요업무로 하여 작전 중이다. 종종 ‘미 특전사’(The US special forces)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두 동맹군은 이따금 불협화음을 감추지 못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토 사령관들이 이따금 공석에서나 혹은 사석에서 미군의 ‘부주의’한 작전을 비판해왔다. “미 동맹군 때문에 국제치안보조군의 이미지가 상할까 염려된다”는 식이다.
이렇게 누구의 공습이었는지가 불분명했던 로이터의 기사를 받아 보도한 CNN은 “나토 동맹군 폭격 21명 민간인 사망”으로 ‘대담하게’ 제목을 달았다, 반면 BBC는 “공습으로 아프간 민간인 사망”이라는 제목을 달아 보다 신중을 기했다. 알자지라 역시 BBC와 같은 제목으로 “어느 동맹군인지 확실치 않다”고 기사에 언급, 보다 정확성을 기했다. 이날 오후 늦게 BBC와 알자지라는 “미 동맹군의 공습”으로 업데이트 보도했다. CNN은 보도간판을 내렸다.(미국의 대표 TV채널이라 할만한 CNN은 카불에 상주 특파원을 두고 있지 않다.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관심도가 떨어졌음을 반영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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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그날 밤 미군은 누구와 교전을 벌였던 걸까. 미군의 교전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민간인들이다. 전쟁고아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
숨 가쁜 오후를 열자마자 나토군 주도의 국제치안보조군(ISAF)의 보도자료가 발표되었다. “우리는 지난 24시간 동안 나토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에 대해 인식하는 바가 전혀 없다.” 반면 미군 측은 상귄 지역에서 작전 중이었다는 사실과 “미군 한 명이 상귄지역에서 교전 중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미군은 민간인 피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군 보도자료에는 민간인 피해가 이렇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아프간 민간인에 대한 부상은 알려진 바 없다.” ‘민간인 사망’이라는 말은 일단 언급도 하지 않았으니 “우린 안 죽였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이건 일종의 전형적인 미군식 대응 방식이었다. 침묵하거나 애 둘러 말하거나 혹은 부인하거나. 그나마도 업데이트 된 보도자료에는 이 문구도 사라지고 없었다.
지난달 27일에서 3일간 서부 헤랏 지방 신단지구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최소 51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을 때도 미군은 이렇게 썼다.
“민간인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사전 대책을 다 강구했다. 그리고 어떠한 민간인 부상도 보도된 바 없다” 미군은 ‘부상’에만 신경 쓰고 ‘사망자’에게는 신경을 꺼버린 모양새다. 부상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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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누구와 교전을 벌였는지가 의문이지만 교전의 흔적은 크다. |
이 사건은 최근 이어진 굵직굵직한 민간인 사망수치로 치명적인 두 주를 보낸 아프간 사회에 화염이 되고 있다. 헬만드 상귄 피해를 포함하여 아프간 전역에서는 최소 90여명의 민간인이 군 작전과 관련하여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고 실제 피해수치는 100명을 쉽게 웃돌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예를 들면 최소 51명의 사망한 헤랏 지방의 경우 시체 발굴 작업이 진행되면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 전망이다. 최단 기간 최대 민간인 피해사례로 기록할 만하다. ‘우연히도’ 그 작전 모두가 미 동맹군에 의한 것이었다.
지난 1일 남부 칸다하르 지방 마루프 지구에서는 최소 13명의 민간인이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을 두고 해당 지역 부족위원회는 강하게 항의했지만 미군은 공습자체를 부인했다.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공습한 적 없다.” 그리고 5월 8일, 헬만드 상귄 지구에서 21명의 미군 공습 피해자가 또 발생한 것이다.
“두 어 시간 교전 중 가옥에 틀어 앉아 싸우다가 가버렸다.” 칸다하르 시에서 만난 피난민 파트말(가명)의 말이다. 탈레반의 교전 방식이 민간 가옥을 방패삼는 전술을 구사한다는 건 정부관계자도, 그리고 두 동맹군도 아주 잘 알고 있는 바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 잡겠다고 퍼붓는 공습은 민간인 피해를 피할 수 없는 치명적 방식이다. 국제인권단체 등이 공습을 비판해온 이유다. 지난 두 주간 피해도 대부분 이 공습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부지방에서 발생한 ‘가짜 교전’도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부모 잃은 아이의 침묵
“반군 같은 건 없었다니까. 그 네 명은 카피사에서 이주해온 이주노동 가족들이고, 나머지 두 명도 우리 동네 사람들이야.”
아프간 동부 닝가르하르 지방 카니켈 지구 한 마을 나무 그늘에 둘러앉은 동네 남정네들은 입을 모았다. 어른들 틈새에서 연신 울음을 그치지 않는 한 살 반 아미르 샤는 그날 부모와 누이를 잃었고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 아크바르 샤(30)는 교전이 끝나자마자 미군에 의해 ‘테러리스트’ 혐의로 잡혀갔다. 아미르는 3살짜리 누이 세마수메르샤와 지내고 있었다. 세마 수메르는 그날 입은 부상으로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바그람 미 공군기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온 소녀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높은 담으로 둘러 쌓인 데다 큰 양철 대문이 놓여 있는 이 작은 마을은 가옥 같은 마을이었다. 그 대문 안 한 구석에서 갑자기 칭얼칭얼 울어대기 시작하는 아지즈 굴(8)도 그 날 밤이 갑자기 떠오른 모양이었다. 아지즈의 아버지 자나따 굴(50)은 그날 밤 첫 희생자다. 4월 29일 새벽 2시 대문 앞 폭발을 시작으로 고요하던 마을을 순식간에 교전 장으로 둔갑했다. 순식간에 전쟁고아 네 명이 늘어났고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깊이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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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지난 3일, 나는 이 마을을 찾았다. 동부 중심도시 잘랄라바드에서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지대인 토르캄으로 연결된 고속도로를 타고 약 1시간을 달리다 보면 닿는 바띠콧-카니켈 지역이다.
자살 공격도 잦고 미군의 급습도 빈번한 요주의 지역 안에 마을은 있다. 4일전의 아수라장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나무그늘 아래 주민들의 얼굴은 눈매도, 웃음도 선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새벽 2시 미군은 이 마을을 급습했다. 대문 앞 폭탄에 이어 높은 담장을 사닥다리 타고 넘어간 순간부터 총격이 시작되었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그러나 누구와 교전을 벌였는지가 의문이다. 그 ‘교전’으로 죽은 자나따 굴, 그의 친인척인 바까랏 샤(45)과 아내 굴 비가메(40) 그리고 딸 까마리 샤(16) 등 이주 농민으로서 2년째 이 마을에 살았던 이들과 마을 주민들은 사이도 좋았다. 이 한 가족 떼죽음이 앞서 언급한 어린 남매를 고아로 남겨 놓았다. 이날 교전으로 모두 6명이 사망했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날 미군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4명의 반군(주로 탈레반 혹은 알카에다)이 죽었고 반군과 동맹군의 교전 틈새에서 2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민간인의 희생에 우린 매우 슬프다.”
누구와 교전을 벌인걸까
미군의 주장대로라면 두 모녀를 제외한 남편과 친인척이 반군이어야 하지만 마을주민들은 극구 부인했다. 나머지 두 명의 희생자 이브라힘(35)과 아부둘 나지르(30)도 그냥 농사짓는 마을 주민일 뿐이라고 했다.
그날 밤 미군은 누구와 교전을 벌였던 걸까. 이들 말고 죽었다는 4명의 반군은 따로 있는가. 퍼즐이 맞춰지지 않는 이 교전은 진짜일 가능성이 거의 제로였다. 취재과정에서 난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계자로부터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주어서 급습했다가 민간인이 애꿎게 사망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100% 확인이 어려운 ‘설’ 같은 건데, 그러나 이 ‘오보 설’은 계속되어 온 미군의 잡아떼기와 거짓증언 등의 이력을 볼 때 그럴듯한 정황을 주었다. 이 오보설은 51명의 목숨을 앗아간 헤랏 공습 건에서도 조심스럽게 나오는 대목이기도 했다.
실제로 정부와 ‘동맹군’들이 마을에 정보원들을 심심찮게 심어놓고 정보를 입수하고 있는 건 상식처럼 알려진 사실이다. “마을 원로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때로는 주민들이 우리에게 (탈레반이 있다며) 군 작전을 요청한다.” 일전에 칸다하르 주지사 아사뚤라 칼리드는 인터뷰에서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이따금 탈레반이 ‘미군 스파이’를 참수시켰다는 보도 역시 이런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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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 |
잘못된 정보에 의한 출동이었다고 한 들, 대응해주는 상대도 없는데 질러댄 총질은 씻지못할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
아프간 전쟁은 이렇듯 마을 주민들을 가운데 두고 탈레반과 그 ‘적 들’ 간의 정보전도 한 몫하고 있다. 아무튼 그것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출동이었다고 한 들, 대응해주는 상대도 없는데 질러댄 총질이 6명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2시간 반 동안 계속된 것도, 그리고 4명의 반군을 죽였다는 미군의 발표를 인정할 증거도 근거도 없었다. 이구동성으로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 보다 신빙성을 갖는 이유다.
“우리 동맹군은 담 넘어 마을로 들어가려던 무장세력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대응사격을 벌였고 네 명의 무장세력을 사살했다.”
이런 식의 성명은 불과 두 달 전에도 나타난 바 있다. 지난 3월 4일 이 가짜 교전이 발생한 같은 지역에서 자살공격으로 기겁한 미 해군부대가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로 총기를 난사했던 사건이었다. 그 총기 난사로 최소 19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을 (모두 ‘공식’ 통계다) 입었다. 공습이 아닌 경우치고는 대단히 큰 민간인 피해였다. 그때도 미군은 “(자살 공격 외에도) 총격을 받아 대응사격을 가했다”고 고집했다. 심지어 미군은 AP 현지 기자 등 현장을 취재하던 언론의 사진과 필름을 압수해 증거 인멸을 시도하기도 했다. 아프간독립인권위원회 등 독립적 조사결과는 먼저 총격 받은 어떠한 정황도 증거도 없다고 결론을 내 놓았다.
결국 당시 총기 난사에 연루된 해군부대는 몽땅 “이 땅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아 미국으로 갔고 언론은 이례적인 조치라며 떠들었다. 그러나 ‘경험 많은’ 내 눈에 그건 미군이 범죄를 저지르고 고국으로 그냥 간 것이었다.
미국에서 재판을 받는 중이고 하는데…. “외국군대는 이 땅에서 처벌되지 않고 처벌할 법도 없다”는 게 한국과 유사한 이곳의 실정이었다.
모순투성이 아프간 ‘해방’ 전쟁
그로부터 두 달 후, 그 파장 컸던 사건을 두고 두 달이나 지난 5월 8일 존 니콜슨 미 대령은 “대단히 부끄럽다”는 제법 수위 높은 사과를 뱉었다. 나토와 달리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 미군으로서는 이례적인 것이었고(사과와 다짐을 반복한 들 나토 역시 공습으로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았다) 희생자 유가족들을 불려 들여 벌인 사과행사에서 한 목숨당 2천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 사과행사는 8일 밤 TV뉴스 톱을 달고 아프간 전역에 전파를 탔다. 헬만드 상귄지역에서 미군이 공습을 때려 21명의 민간인이 비명 횡사하던 바로 그 밤이었다. 죽이고 잡아떼고, 죽이고 사과하고…. 아이러니와 모순투성이인 아프간 ‘해방’ 전쟁 속에 민간인들만 죽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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