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선 구축을 위한 전제 ‘행동대 행동’ 포괄적인 평화협정을
<시민사회신문> 3, 4호 연재 기획 ‘전 세계 군사기지 현황과 미군기지 재편’에 글을 쓴 평화운동가 김승국씨가 이번엔 ‘동아시아 군사주의 확산과 반전평화운동’이란 주제로 새 글을 보내왔다. <시민사회신문>은 동아시아에서 군사주의가 확산되는 요인을 밝혀내고, 군사주의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반전평화 운동의 길을 탐색하는 김승국씨의 글을 3회 연재한다. /편집자 |
동아시아에서 군사주의가 확산되는 요인을 제거함으로써 평화선(平和線)을 강력하게 구축하는 것이 반전평화 운동의 요체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동아시아 평화선은 아래와 같다.
비핵지대화 3단계 평화선
제1단계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한 평화선 그리기다. 유감스럽게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남북한의 신뢰구축, 국제적인 보장장치 없이 합의된 문서이며 선언문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한의 신뢰구축이 중요하다.
군사적인 신뢰구축 못지않게 정치적인 신뢰구축이 중요하다. 이미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실행하기 위한 신뢰구축 체제(남북한 기본 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를 갖추고 있으며 비핵화 선언을 실행하기 위한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 남북 기본합의서를 실행하기 위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두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와 남북 군사공동 위원회를 가동하면 되는데, 이를 위한 남북한의 정치적 신뢰가 선행되어야한다. 물론 정치적 신뢰가 이루어져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 그 중에서도 검증수단의 확보가 관건이다.
검증방법의 일환인 핵사찰을 위해 핵물질 보유 여부를 직접 육안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의 남북한과 같은 대립상태에서 합의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경우 검증장치의 유무가 비핵지대화 실현의 시험대이다.
두 가지 검증장치를 생각할 수 있다. 즉 국제원자력 기구(IAEA)의 사찰과 남북한 상호사찰이다. 전자는 북한 핵문제가 풀려야 하며 후자는 남북한 간의 정치·군사적 신뢰관계 없이 불가능하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위반했지만 미국의 태도 변화(북한 공략-붕괴 전략의 포기)에 따라 핵무기를 폐기하고 비핵화 선언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북한 공략-붕괴 전략의 포기가 선결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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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
오키나와 가네다 공군기지를 출격하는 F-15 전투기의 모습. |
그러므로 북한의 핵폐기·미국의 북한공략 전략의 포기를 동시에 진행하기 위해 북미간의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포괄적인 이행이 담긴 평화협정이 반드시 체결되어야한다. 한반도 비핵지대화 또 해양세력인 미·일동맹과 대륙세력인 중국·러시아의 세력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한반도가 비핵의 호수로 되어야한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으로 이 비핵의 호수에 격랑이 일고 있다. 여기에서 격랑을 잠재우고 비핵의 호수에 평화의 숨결을 넣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 방편중의 하나가 한반도 비핵지대화이다.
우선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추진하면서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로 나아가는 전략이 좋을 듯하다. 제2단계의 한반도 비핵지대화 전략과 제1단계의 한반도 비핵화 전략의 차이점은, 미국의 핵우산 등을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없는 ‘미국의 핵우산, 핵무기 탑재 미군 함정·잠수함의 한반도 영해 진입, 핵무기 탑재 미군 공군기의 남한 영공·주한 미공군 기지 진입의 금지’를 실행조건으로 한다.
핵 선제 불사용부터
위의 실행조건은 모두 미군주둔·미군철수와 연관된 사항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주한미군의 점진적인 철수를 전제조건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다만 주한미군이 철수한 다음에도 미국이 무해(無害) 통행권을 주장하거나, 현재의 필리핀에서처럼 VOA(방문국 지위 협정)을 통해 미군의 일시적인 주둔을 강행하면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형해화되기 쉽다.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동아시아 비핵지대화가 필수적이다. 한편 북한은 1976년 8월의 제5차 비동맹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제기한 이래 1991년까지 주기적으로 이를 주장하였다.
이어 1991년 10월 23일 평양에서 열린 제4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의 연형묵 총리는 9개 조항으로 구성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초안)’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그때까지 북한 측이 주장한 비핵화 제의 중 가장 포괄적인 제안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1976년 당시의 초심으로 되돌아가 남한 당국에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제시하고 핵무기를 없애는 등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위한 남북한 공조’로 나아가야한다.
동아시아 비핵지대화 동아시아 비핵지대화의 성패는 미국 등 핵 강대국이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하여 핵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핵 선제 불사용(先制不使用)’의 보장에 있다. 핵무기가 군사적·정치적으로 힘을 갖고 있는 한 비핵지대화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비핵지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핵 보유국이 기득권을 양보하여 핵무기의 위협을 없애야 한다.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를 위하여, 남북한·일본·몽골의 비핵지대화 선언과 더불어 미국·러시아·중국의 핵 선제 불사용 선언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동아시아에 드리워진 미국의 핵 우산, 미국의 대북 핵선제공격 전략을 파기해야한다. 미국이 마지못해 동아시아의 비핵지대화를 인정하지만 핵 우산을 거두어들이지 않을 공산이 크다. 미국의 핵 우산을 인정하는 동아시아 비핵지대화의 한계를 감수하느냐 마느냐가 첫 번째 관건이다.
두 번째 관건은 중국의 핵정책이다. 중국은 이미 핵 선제 불사용 정책(핵을 갖지 않는 나라에는 무조건적으로 핵 공격을 하지 않는다)을 발표했다. 이 정책이 동아시아에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일방적으로 밝힌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이 지켜질지 아닐지를 검증할 길이 없기 때문에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여타 국가들의 희망사항으로 끝날 수도 있다. 세 번째 관건은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따른 핵무장 여부이다. 일본의 비핵 3원칙이 법제화되지 않은 점, 일본이 보유한 막대한 플루토늄이 핵무기 제조로 연결될 수도 있는 점, 일본이 과거 청산을 게을리 하며 군사 대국화로 나아가고 있는 점이 동북아 비핵지대화의 장해 요인으로 대두될 것이다.
네 번째 관건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체제의 해체이다. 체제의 생존을 도모하려는 북한의 ‘핵개발 시소 게임’이 중단되지 않는 한,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섯 번째 관건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핵폐기물의 농축을 금지하는 정도밖에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 북한의 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동북아 비핵지대화의 씨앗을 부풀리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
여섯 번째 관건은 동아시아의 냉전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군사동맹 조약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이다. 한·미 상호방위 조약, 미·일 상호 안보조약, 조(북한)·중(중국)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을 그대로 두고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원만하게 이룰 수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중국·러시아의 전폭적인 협조와 북한의 결단(핵개발 체제의 해체) 없이 한반도·동아시아 비핵지대화는 성사되기 어렵다. 미국 등의 핵 강대국이 동아시아를 겨냥하는 핵무기·핵 전략의 폐기 없이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거론하는 게 무의미하다. 그리고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는 한반도 평화통일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다자간 안전보장 틀
동아시아 비핵지대를 위해 필요한 장치는 다자간 안전보장 틀이다. 이러한 안전보장 틀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후견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는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민족 구성원의 평화로운 생존과 직결된 과제이다. 핵이 없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대외적인 환경 조성의 일환으로, 한반도·동아시아 비핵지대화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원점으로 되돌아가야하며, 한반도 안팎에 핵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평화협정을 내와야 한다.
미국의 방해로 주춤하고 있는 북·일 수교 구상의 배후에 ‘동아시아의 부흥’ 계획,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본-남북한-러시아 중국-시베리아를 잇는 ‘철(鐵)의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프로젝트를 한반도의 평화정착으로 연결시킬 묘안은 없을까? ‘동아시아의 부흥’을 꾀할 ‘철의 실크로드’는 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올 새로운 자원수송로가 되어야 하며 아시아의 자원을 친환경적이며 평화롭게 공동관리할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 이 길을 중심으로 인류의 새로운 평화 공동체가 이룩되어야한다.
유럽의 경우 공동 안보 틀(헬싱키 체제, CSCE 체제)은 자원의 공동관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앙숙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통한 유럽 통합의 길을 튼 것은 1952년에 출범한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ECSC)이다.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른 프랑스와 독일이 중심이 된 6개국 유럽 경제부흥의 생명선인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관리하자는 발상에 따라 ECSC가 출범했다. 이러한 발상은 오늘날 유럽공동체(유럽 평화공동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현재 유럽은 자원·경제 공동체를 대변하는 유로 달러를 강화하는 가운데, 공동안보를 책임질 유럽 공동군 창설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제통합과 협력안보의 총화를 통한 유럽 평화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대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아시아 주둔 미군 10만 명 체제이다. 즉 ‘미군 없는 아시아’를 만들지 않고서는 동아시아인의 평화를 위한 공동 안전보장 틀, 동아시아의 비핵지대화 등을 안전하게 만들어낼 수 없다. 이 것이 유럽의 안전보장 틀(CSCE)과 다른 점이다.
자원공동체와 평화공동체 함수관계 유럽의 성공 참조 사례
자원 공동체가 평화 공동체의 하부구조가 된 유럽의 성공사례를 아시아에 적용하기 위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아시아의 전쟁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를 평화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로 전환시켜야 한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자원 수송로는 원유 수송로(중동→아라비아 해→인도양→말라카 해협→남중국해(South China Sea)→동중국해(East China Sea)→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해상 교통로)이다. 그런데 이 해상 교통로가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는 게 문제이다. 최근 일본도 유사법제 등을 통해 이 해상 교통로를 독자적으로 지킬 뜻을 비치고 있어서 우려를 더한다. 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 10만 명의 제1의 임무가, 이 해상 교통로를 중국 등으로부터 지키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해상교통로 검토
또 하나의 문제는 중국이 미·일의 해상 교통로 강화 움직임에 맞서는 해양 전략을 가다듬고 있는데 있다. 중국은 2001년 1월 신 해양전략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방어선을 G라인에서 B라인(Blue Line: 쿠릴 열도-마리아나 군도-파푸아 뉴기니)으로 확장한다는 내용이다. 랜드 연구소의 보고서 등 미국의 새 안보전략 관련 문서들은, 중국의 이러한 해상 교통로 확장에 대한 대응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B라인은 미·일 군사동맹의 해상 교통로와 중첩되므로 첨예한 갈등을 예고한다. B라인 등 동아시아의 해상 교통로를 차지하기 위한 ‘미·일 동맹-중국 사이의 예고된 갈등’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미-일 동맹군의 중국·북한 포위망을 거두어 내고, 그 대안으로 동아시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하나의 동아리로 엮는 ‘평화 지향적인 새로운 자원 수송로’를 만들지 않으면 한반도의 통일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가 요원하다. 한반도의 통일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해양 세력(미국·일본)과 대륙 세력(중국·러시아)을 잇는 ‘평화의 실크로드’를 통한 평화정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해양국가 영국과 유럽대륙의 2대 강국인 프랑스 ? 독일 사이에 끼어 고전하던 베네룩스 3국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아우르며 유럽의 평화에 기여한 점을 모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대륙세력 평화 분위기를
둘째, 동아시아의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다툼을 화해시킬 공동 안전보장 틀이 긴요하다. 이 틀은 ‘동아시아 경제권’을 ‘평화의 힘’으로 엄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세력내의 안보 관계를 평화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선 해양세력의 군사동맹(한-미-일 군사공동체)을 평화동맹으로 대체하고 대륙 세력의 군사적 관계(북-러 우호관계, 북-중 우호관계)를 평화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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