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이란 무엇일까.
한반도의 기운이 시작되는 목포라는 공간을 떠나 인간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물질에 포위되어 재화를 구축하기위해 날마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서울에 와 있다.
서울이란 회색 공간에 살고 있는 민초들은 생존을 위해 날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콘크리트 건물에 마치 새장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런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 과연 행복할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행복하십니까?
인간은 무릇 태초에 바다에서 먹거리를 구하고 푸른 초원에서 꿈을 꾸며 뭇 생명들과 함께 우주의 원리를 알고 살아있는 것들과 공생의 공간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어느새 물질이 스며들어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분파를 조성하고 대의를 잊고 살아가는 재화의 재물이 되고 말았다. 고귀한 생명들을 파괴하고 공생하던 형제들을 착취하며 정당한 삶의 의미를 잊고 살게 되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이같은 현실이 악몽처럼 퍼져 있다. 어느새 국토는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파헤쳐지고 공생해야할 생명을 짓밟는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성장이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정상에서 이탈하고 있다. 이웃의 아픔을 진정 나의 아픔으로 알고 사는 공동체의 정신은 사라져가고 있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빼앗긴 자들은 길거리를 배회하고 이제는 희망이라는 단어마저 잊고 산다. 삶에 지친 이들이 태양을 벗 삼아 앵벌이한 몇 푼의 재물로 거리에서, 지하도에서 밤이슬을 안주삼아 한잔 술에 시름을 달래고 있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예부터 가난은 군주도 어찌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착취한 자들을 배가 터지고 착취당한 자들은 허기를 이기기 위해 뿌연 하늘, 매연으로 가득찬 거리에서 이슬과 버린 음식물의 악취를 향수를 뿌리듯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희망을 잃어버린 세상
날이 갈수록 더 큰 형상으로 다가오는 빈곤의 아픔을 보아야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파출부의 자식과 청소부의 아이들은 부모의 무능함으로 대를 이어 같은 형상만을 생각해야하는 세상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보와 개혁은 어떤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천지가 개벽하기를 바라기에는 인간의 나약함이 크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리고 우리는 변화를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언어는 이미 수없이 사용했다. 이제는 어떤 달콤한 사탕발림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이 같은 현실을 타개 할 수 있는 지혜는 없을까? 고뇌를 거듭해도 분열로 망했던 과거의 아픔들만 생각난다.
분열을 넘어 변화의 모색을
이제 담론으로 논쟁하는 논리보다는 생존을 위한 지혜, 생존을 위한 고뇌가 필요하다. 보다 실용적인, 구체적인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분열은 죽음의 그림자를 부른다. 이제 삶의 다양성과 사고의 차이를 인정하자.
한반도의 민초들이 이제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스스로 거름이 되고자 한다면 우주의 기운은 공기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민중들은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다.
민초들의 세상을 위해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모두 함께 지혜를 모을 때다. 그 기운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스스로 느끼는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늦출 수 없는 시기가 눈앞에 도래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아직 할 일이 많다. 6·10항쟁을 통해 시민의 힘을 모아 민주화를 진전시킨 역동성을 오늘에 되찾아 다시 실질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의 길에 나서야 한다. 대선을 앞둔 시민사회의 최근 논의와 움직임은 바로 이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참여와연대로 사람이 소중한 세상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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