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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새로운 청산 대상

[시민광장]
 

어떤 특정 물건에 가짜와 진짜가 섞여 있을 때, 그래서 사람들이 가짜를 그 물건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가짜와 진짜를 명확하게 구별해서 가짜는 정리해야 진짜가 제대로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면, 진짜까지 덤 태기를 쓰고는 망해버릴 수 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해 한동안 사람들은 혹 마음에 들지 않는 바가 있다 해도 노무현 정권의 성공이 곧 민주화 운동 세력의 역사적 승리로 귀결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고, 곳곳에서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러한 정치적 현실이 민주&진보 진영의 과오처럼 인식된다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은 그 앞길이 가로막히고 만다. 노무현 정권은 이제 청산대상이지, 계승의 정당성을 갖는 권력이 아니다.  

대중들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동력을 뿜어내기 위해서 매우 중대한 작업이다. 이 과정은 치열한 정치적 전투가 요구되는 일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미 한나라당과 대연정 제안을 내놓는 과정에서 정책적 차별성이 없다면서, 자신과 한나라당이 정치적 혈연관계가 있다는 식의 호적 등본을 떼서 보여준 바 있다.  난데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더욱 가혹한 세월을 가져올 것이 분명한 신자유주의 체제 구현의 강력한 수단인 한미FTA를 반민주적 방식으로 밀어붙임으로써, 한나라당의 정치경제적 기반과 다르지 않은 노무현 정권의 본질을 확인시켜주었다.

우리가 노무현 정권의 출범에 대해 기뻐했던 이유는 체제 변혁적 개혁성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노무현 정권은 그 자신이 체제 기득권 그 자체가 되었고, 시민사회 운동의 정당한 문제제기와 요구를 짓밟고 오만한 훈계와 독선적인 호령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한때 여당이었던 열린 우리당은 이미 권력에 의해 길들여져 버려 무능력해졌고, 주변의 눈치 보기에 바쁜 애매한 기회주의적 존재가 되었다. 열린 우리당의 정치적 몰락은 몸이 크다고 정치적 생존이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입증해준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삶을 깊이 껴안고 이를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정치의 품격과 내용, 그리고 역사의 진로 그 모두에 걸쳐 노무현 정권은 파괴적 유산을 만들어냈다. 토론하자고 해놓고 뭔가 수틀리다 싶으니까 상대에게 “이거 막가자는 거냐”면서 위협적으로 대응한 출범 초 대통령 노무현의 자세에서 이미 오늘의 독선과 오만은 예견되었던 것이다. 민주&진보 진영의 지지로 대통령이 되 그는 이제 민주&진보진영의 수치와 장애물로 변했고, 징계대상이 되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한미FTA를 둘러싼 갈등의 와중에서 노무현 정권이 보인 자세는 과거 독재정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입을 봉쇄하며 손과 발을 묶어놓고는 자기의 정당성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일에만 열중한 것은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존중하겠다던 애초의 자세와는 완전히 다른 배신이었다.  

민주&진보 진영의 시민사회운동은 노무현 정권 청산과 이후 대통령 노무현과 그 휘하세력을 청문회에 올려놓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정도가 무엇인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확실히 해놓아야 한다. 한나라당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노무현 정치의 청산을 통해서 대선정국의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대중들에게 무엇이 진짜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번 대선에서 시민사회 운동 진영은 강력한 정치적 동력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생각해볼수록 의미가 있다. 이리저리 산전수전을 다 겪은 대하가 흐르고 흘러 거대한 바다가 될 수 있다면,  때로 불어 닥치는 비바람이 그 무슨 걸림이 되겠는가.  

현실에서는 각기 엇갈린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겠지만, 시민사회 운동 진영이 바다가 되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현장이 되어준다면 한국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기득권의 늪에 빠져 개혁성을 상실해버린 권력을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세워나가기 위해 시민사회 운동 진영이 결연한 투지와 각오를 갖는 일이 무엇보다 중차대해지는 시국이다.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제3호 19면 2007년 5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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