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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문화

'맵씨 한아름' 서울 성곽 재발견

600년 고도 공간 자체가 긍지와 매

 

남산타워, 63빌딩, 한강유람선. 이 3가지는 타지인이 서울을 인식하는 상징이었다. 20세기 산업화 시대에는 그랬다. 오늘날에는 아스팔트에서 복원된 청계천, 권위로부터 개방된 청와대, 전통을 재연하는 궁궐나들이로 선회하였다. 공간 시설물의 기능에서 공간 자체의 매력으로 도시 정체성이 바뀌고 있다. 창의서울과 디자인 서울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

남산타워는 남산의 자연과 역사가 아닌 타워와 연결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높이의 우월성을, 63빌딩은 높이의 우월성에 내재한 영화관, 수족관, 상점 등 현대적 쇼핑몰의 소비성을, 한강유람선은 한강의 풍경이 아닌 도로정체 없이 도심 속을 질주하는 속도성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었다. 이는 경쟁과 경계로 분리되고 우열로 등급이 매겨지는 산업사회의 속성이다.

그런데 산업사회의 한계에 봉착하자 경쟁의 승패 대신 상생을 통한 윈-윈을, 경계의 단절 대신 관계의 소통을 추구하는 지식정보사회가 도래했다. 기밀과 독점보다 스토리텔링에 의한 전달과 공감이 중요해졌다. 지식과 정보가 이야기에 녹아 있지 않으면 한낱 낱말의 조립품에 불과하다.

시민들이 청계천을 걷고, 청와대를 방문하고, 궁궐 앞에서 지인을 기다리는 이유는 공짜관람의 특혜가 아니라 돈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경험·공감·추억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녹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함이다. 이런 이야기는 분리되고 소외된 개인을 도시와 일체감을 맛보는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뉴욕과 런던이 세계적인 도시가 된 것은 금융의 중심보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라는 공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가능했다. 근래의 뮤지컬 붐은 단순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통해서 분리된 관객을 공간 안에서 존재감과 일체감을 맛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극장에서 도시 전체로 확장될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공간은 매력적인 이야기 대신 뉴욕의 마천루를 꿈꾸고 있다.

문화우리

성곽도시였던 서울은 이제 개발에 밀려 그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역사적 이야기를 잃은 도시는 죽은 도시다.


우리가 아는 서울은 정도 600년의 고도(古都) 서울이 아니라 역사를 파묻은 근대 100년의 고도(高都)서울이다. 건물과 도로에 대한 파괴와 건설이 있었을 뿐 도시의 가치와 의미는 생산하지 못했다. 그런데 근대에 대한 반성과 함께 조선총독부(구 국립중앙박물관) 철거에 이어 ‘경복궁 광화문 제 모습 찾기’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전달한다. 건물에 국한된 변화가 아니라 도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서울은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을 갖춘 성곽도시지만 지금은 삼대문(?)과 삼소문(?) 밖에 없으며 울타리 안의 공동체라기보다 익명과 소비의 거대도시(metropolis)로 정체되어 있다. 근대 개발주의가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서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사대문과 사소문은 ‘소통의 고리’가 아닌 파편화된 ‘표석’으로 남아 있다. 도시의 기념비가 아닌 도로의 이정표일 뿐이다. 기능 밖에 없는 국보와 보물은 가격표가 붙을 뿐 도시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담장 없는 문은 묘비에 불과하다.

서울은 내용물을 담는 그릇(성곽도시)에서 송곳과 같은 빌딩숲이 되었다. 서울의 사대문과 사소문을 잇는 성곽을 잊는 것은 서울의 이야기를 잃는 것이다. 이야기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다.

천년고도를 위하여

이제는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고민 대신 어떻게 비울 것인가 하는 것이 도시 정체성을 결정짓는다. 조선총독부 철거, 청계천 복원,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이런 변화는 효율과 기능이라는 산업사회의 갑옷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서울성곽이라는 역사적 틀을 통하여 바라볼 때 그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드러난다. 회고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조감도까지 제시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도 600년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천년고도 서울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과업은 서울성곽이라는 틀 속에서 고도(古都) 서울과 고도(高都) 서울의 공존과 미래를 모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타 도시와의 비교우위가 아닌 서울이라는 공간 자체의 긍지와 매력이 관건이다.

서울성곽은 성을 둘러싼 연못(垓子)처럼 분리와 경계를 뜻하지 않았다. 서울은 성 안에 갇힌 완고한 정체성이 아닌 사대문과 사소문을 잇는 사통팔달의 열린 공간이었으며, 사람들에게 벽이 아닌 일체감과 안정감을 주는 도시의 끈으로 맵시를 낸 공간이었다. 우리는 서울성곽의 새로운 발견과 해석을 통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공간을 찾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창조할 공간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장한섬 문화우리 활동가

 

제22호 17면 2007년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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