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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문화

"단체 중책, 쉽지 않더군요"

'이음' 활동가 집담회 [1] _ 조직 중책 맡은 활동가들의 고민

 

단체의 활동가들은 다들 ‘트랜스포머’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어떤 역할로든 변신이 가능하다. 기획, 홍보는 물론 진행과 허드렛일까지 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단체 활동가라면 더욱 자주 트랜스포머가 돼야 한다. 지역 단체들의 사무국 상근자는 대부분 2~5명 안팎이다 보니 한 사람에게 부과되는 책임업무가 많을 수밖에 없어서다. 그렇게 트랜스포머가 돼 지역에서 정신없이 활동하다보면 조직이 큰 단체에 비해 더 빠르게 직책이 높아진다. 더 전문적이고 더 바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트랜스포머가 돼 버리는 것이다.

"트랜스포머가 돼야 한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이들을 주목했다.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새로운 트랜스포머가 돼야 했던 지역 활동가들의 고민을 듣는 자리가 지난 1일 마련됐다. ‘새로 조직의 중책을 맡은 활동가들의 고민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진행된 이날 집담회에는 김승호 서울 광진주민연대 사무처장, 오승현 서울 동북여성민우회 사무국장, 장혜진 천안시장애인보호작업장 원장, 김경민 안산경실련 사무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집담회를 기획한 김현 이음 연구원은 “작은 규모의 지역 단체들이다 보니 직책이 높아지면서 하게 된 고민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들의 얘기가 현재 지역단체들이 갖고 있는 이 시대의 고민일 수 있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형식을 취하되 술자리에서 음성적으로가 아닌 공론장을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김상택 기자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지난 1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새로 조직의 중책을 맡은 활동가들의 고민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활동가 집담회를 열었다.


제일 먼저 공유된 고민은 역시 ‘소통의 문제’였다. 장혜진 원장은 “원장이 되면서 얻게 되는 정보는 많아지는데 그것을 잘 소화해 전달하는 게 너무 어렵다.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을 안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다보니 소통의 문제가 자꾸 제기된다”고 말했다.

김승호 사무처장도 말을 거든다. “중간에서 몇 개의 부설기관에 서로의 얘기를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나중에 다 같이 모이면 서로 전혀 다른 얘기를 할 때가 있다. 내 잘못인 것 같아 힘들고 괴로워하다가 구성원들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랬더니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시면서 도와주셨다. 내가 못하는 역할은 잘 하는 사람에게 업무를 넘기면서 사무처장의 역할을 수정해갔다.”

고민은 이어졌다. “우리 단체는 위원회가 굉장히 많아 회의도 많고 논의되는 내용도 많다. 다들 사무국장이 정리해서 조율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계획했던 사무국장의 모습은 그런 게 아니었다. 원래 본부에서 일하다가 지역운동이 하고 싶어서 갔는데 연차가 있어서 바로 사무국장이 됐다. 하지만 사무국장도 간사랑 똑같이 일해야 한다. 중간리더 역할에 대해 고민했는데 사실 중간리더가 뭔지 모르겠다. 리더십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오승현 사무국장이 털어놨다.

자신의 어려움 솔직히 토로를

안산경실련의 경우엔 다른 단체와 약간 다른 성격의 고민이 있었다. “안산경실련은 네트워크가 없는 게 고민이다. 사무국에서 하는 활동이 안산경실련의 전부다. 다른 단체들의 경우 다자간 소통이 어렵다고 말하는데 우린 다자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라는 게 고민이다”라고 김경민 사무국장은 말했다.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고민도 역시 빠지지 않았다. 특히 사무국장의 경우 재정을 책임지는 상황이라 활동가들의 임금은 물론 자신의 임금까지 스스로 단체 살림에 맞게 조정을 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다.

오승현 사무국장은 “회비중심의 재정운영이 해답이지만 쉽지 않다. 회원확대를 위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고 단체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텐데 일상에 쫓겨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 재정형편을 알고 있는데다가 임금을 올려달라는 말은 자신의 월급을 올려달라는 말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운영위 회의 때 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오승현 사무국장은 스스로 연차를 깎기도 했다. 운영위원들이 선례가 되면 후임에게 영향을 줘 좋지 않다고 말렸지만 마이너스 되는 살림을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오승현 사무국장의 말이다.

여러 학교나 단체에서 진행하는 리더십 교육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오승현 사무국장은 “여성리더십 교육을 들었는데 배우고 돌아와서 우리 단체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단체 활동가들이 같이 교육을 받고 자기 단체에 맞게 조정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민 사무국장은 개인적으로 두 번의 중견활동가 리더십 교육을 받았지만 함께 가는 소통과 연대로서의 리더십 보다는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식의 리더십 교육에 거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내부적인 소통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는 장혜진 원장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했다. “작업장 선생님들과 일대일로 만나 대화를 했다.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꺼내 놓다보면 우리 업무에 대해서도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사적으로 친해지면서 사무실 분위기가 많이 편해졌다.”

그러자 김승호 사무처장의 고백이 이어졌다. “아직도 카리스마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개인적인 만남을 시도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전체 구성원들이 자주 모여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소통을 지향한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자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도와줘 어려움을 많이 넘었다.” 두 사람의 발언은 다른 유형의 리더십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참가자들이 입을 모았다.

김상택 기자

지난 1일 열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활동가 집담회에서 김승호 광진주민연대 사무처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소통 확대를 위한 상상력

김경민 사무국장이 안산경실련의 흥미로운 사례를 전했다. “운영위원들 및 몇몇 회원들과 안산경실련을 후원하는 계모임을 조직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는데 월례회의보다 더 잘 된다. 업무 얘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는 얘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목돈도 마련하고 친목도 다지고 신뢰도도 높여서 좋은 것 같다.” 계모임 운영에 대한 자세한 질문이 뒤이었고 참가자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급박한 재정적인 문제와 친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음에서 준비하고 있는 다음 번 집담회의 주제와도 비슷한 질문이 이어졌다. 현재 사무국장, 사무처장의 자리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이냐고 이호 소장이 묻자 의외의 대답들이 나왔다.

김승호 사무처장은 “사무처장을 할 사람이 생기면 자신은 그냥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싶다”며 “굳이 다른 곳으로 떠나기 보다는 내가 있는 지역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경민 사무국장도 “사회단체가 원래 기존 회사와 다르니까 순환 구조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김승호 사무처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오승현 사무국장 역시 전문적인 분야로 파고들 수 있다면 간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아무래도 회원들이 기혼여성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비혼이다 보니까 소통의 벽이 생기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일반 간사라면 몰라도 계속 비혼인 채로 사무국장을 하게 되면 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이호 소장은 아직은 한국의 조직문화상 사무국장이 다시 간사로 돌아가는 부분에 대해선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며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혜진 원장은 “밤샘 회의를 할 때는 내가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될 때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며 “또 장애아를 둔 부모와 얘기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소통의 벽을 느낄 때가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재생산 고민 만만치 않다

여전히 중요한 숙제로 남은 부분은 활동가 재생산과 관련해서였다. 광진주민연대의 경우 근처에 있는 대학의 동아리들을 섭외해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자연스레 학생들이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식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고 김승호 사무처장은 말했다.

김경민 사무국장은 “학교에 직접 단체의 이름으로 들어가 시민사회를 알리고 NGO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상황이 쉽지만은 않다”며 “지금 활동가들은 재생산에 대해 고민할 여력이 없으니 우선은 지역사회 인재 발굴을 위해 재단이나 큰 단체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2시간 반 동안 뜨겁게 진행된 이번 집담회에 대한 감상을 밝혔다. 고민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얻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생긴 것 같다며 이런 성격의 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세분화된 주제의 집담회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제안도 있었다.

다음 집담회는 ‘조직의 중책을 두루 거친 중견 활동가들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란 주제로 8일 열린다.

 

전상희 기자

 

제22호 10면 2007년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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