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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골목서점의 몰락

풀뿌리 칼럼[3]

 

얼마 전 대구시내 중심가에 있던 모 서점이 문을 닫았다. 대구 사람이 주인인, 다시 말해 대구자본에 의해 경영되던 서점으로는 규모로 보아 대구에서 1, 2위를 다투던 대형 서점이었다. 이 서점이 문 닫기 얼마 전부터 대구의 토착자본에 의해 경영되던 H서점, C서점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이 서점들은 서울의 대형서점이 대구에 지점을 내자마자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바처럼 서점은 지역민들에게 문화 살롱이자 만남의 장이다. 이곳에서 교양을 쌓고,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그리고 젊은 청년이나 학생들은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갈 지식을 쌓고 자신의 세계관을 확립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토착서점이나 골목서점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지역민들에게는 안타가운 일이다.

이런 현상은 서울이 비대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빚어지는 지역 황폐화의 일반적 현상이다. 이런 현실이 비단 대구에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지역은 빈사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국정의 중요 지표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근래 언론에 공표된 몇몇 지표를 보면 참여정부 들어 되레 중앙과 지역간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 황폐화의 양태가 여러 방식으로 드러나는 가운데 지역토착 서점의 몰락은 가장 피부로 와 닿는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에 나는 어떤 곳에서 문학 특강을 요청받았다. 문학강연은 시를 쓰고 문학을 가르치면 밥벌이하는 나에게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이번 초청은 특별히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를 초청한 곳은 다름 아니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경북 의성군 단촌면사무소였다.

면사무소에 운영하는 ‘노인대학’ 후반기 개강식에 이 고장 출신인 나를 초청한 것이다. 그곳에는 아직 여든이 넘는 연로한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다.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향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마음이 마냥 설레 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내가 태어나 탯줄을 끊고 첫울음을 울 때 그 모습을 지켜본 이웃어른들과 부모님 친구 분들이 여지껏 살아계시고 이분들의 연세로 보아 노인대학에 참석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어르신들 앞에서 세치 혀를 놀린다는 것은 사실 내 마음을 답답하고 무겁게 만들었다. 내가 의사나 변호사 혹은 금융재테크전문가라면 전공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하면 쉽겠지만 평생 농사만 지으면서 가난하게 일생을 살아오신 분들께 문학이야기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내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황당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 진 것. 나름대로 고향 어르신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짜내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오늘날 세태는 자식들이 서로 어른을 모시지 않으려고 하고 노인복지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과도기 상황에서 노인들이 많이 위축된 게 사실이다. 그래서 평생자식들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분들에게 위로를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위로의 내용이 내 강연의 요지이기도 했다.

나는 마을에 계시는 노인 한 분이 도서관 한 개와 같은 기능을 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어르신들이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이나 지식은 도서관 한 개 안에 비치된 수천 권, 수만 권의 책들과 견줘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제 70, 80대 연배의 노인들이 겪어왔을 우리 근현대사의 지난했던 과정을 생각해보면 고난의 세월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르신들은 바로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니까, 마치 동네 어귀의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그늘을 만들어주고 쉼터를 제공해주고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를 몸소 보여주면서 세상의 철리를 가르치는 느티나무와 같은 존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당신들께서도 자식들과 후손들을 위해 많은 말씀을 남기고 이들이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어르신들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박수로 그 날의 강사인, 친구 아들이자 고향 후배인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내 주장이 어떻든 혹은 어르신들이 자신들의 삶과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노인들의 위상은 점차 초라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도서관보다 더 큰 지혜가 든 어르신들이 잊혀지기 일쑤이다.

지방도시에서 골목서점과 토착서점들이 점차 사라지는 이 현실은 마치 노인들의 지혜를 우리가 그냥 사장시키는 것처럼 비경제적인지도 모른다. 대형서점, 대형자본의 위세 앞에서 한없이 쪼그라드는 지방서점의 모습, 그것이 바로 오늘날 지방의 자화상이다.


김용락 시인. 경북외대 교수

 

제19호 18면 2007년 9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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