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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문화

쉿! 들리세요? 작은 울림이…

여성인권·환경·인권영화제 개막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남정순 씨는 고된 일과 살림을 하며 딸들에겐 엄마로, 남편에겐 마누라로, 사회에선 아줌마로 살기를 강요받는다. ‘엄마누라줌마’인 남정순 씨는 딸들에게 말한다.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영국에 사는 초등학생 미첼은 고민이 많다. 점점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환경 챔피언이라 불리는 미첼은 부모님, 친구뿐 아니라 친구의 부모님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지구온난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중국여성 에이 퀸은 홀로 어린 아들과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영국행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성매매 제안과 높은 숙박비, 이유도 모르고 쌓여가는 빚, 영국 어부들의 린치다. 한 푼이 아쉬운 그는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밀물이 들어오는 저녁 무렵 목숨을 걸고 해변에서 몰래 조개잡이를 한다.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4년 실제사건 때 살아남은 에이 퀸이 직접 말을 걸어온다.

이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들린다, 아니 들을 수 있다. 각각 여성인권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인권영화제에서다.

북극곰과 사람을 살리는 목소리
제4회 서울환경영화제

 

ⓒ 그린페스티벌

환경재단이 ‘생생한 지구를 위한 영화 선언’이란 구호를 내걸고 2004년부터 진행해온 서울환경영화제가 1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일주일간 개최된다. 개막작은 지구온난화 문제의 위험성을 알리고 해결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SOS(Save Our Selves)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된 단편영화 60편 중 6~7편을 선정한 'SOS-우리를 구하는 단편영화‘다. 지난해까지 정동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했지만 이번엔 상암CGV로 장소를 옮겼다. 대중들이 환경문제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55개국 545편의 출품작 중 19편을 선정하는 경쟁부문인 ‘국제환경영화경선’과 비경쟁부문인 ‘널리 보는 세상’, ‘지구의 아이들’ 등의 상설전이 마련된다. 해외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한 국내 환경영화 제작을 격려하고 알리기 위해 이번 영화제부터 ‘한국 환경영화의 흐름’이 준비된다.

해마다 주요 환경이슈를 정해 그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해온 테마전은 ‘지구전’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구온난화와 기후이변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배우 키아누 리브스와 가수 앨라니스 모리셋이 내레이션을 맡은 ‘온난화의 대재앙’이 지구전에서 소개되는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 이변과 그로 인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4개 대륙, 8개 나라에서 촬영했다.              

앨 고어 미 전 부통령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불편한 진실’은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와 환경문제와의 밀접한 관계를 돌아보고자 ‘대선전: 에코 폴리티카’란 특별전에서 상영된다. 그밖에 대표적인 환경운동 단체인 그린피스의 활동을 담은 영상들이 ‘그린피스: 무지개의 전사들’이란 특별전으로 국내에서 처음 소개될 예정이다.

ⓒ 그린페스티벌

불편한 진실


이해광 사무국장은 “1회 500석에 1일 5회 공연으로 일주일간 총 1만5천석이 준비되는데 관객들로 꽉 채우겠다는 욕심보단 누구나 올 수 있는 1만5천석을 만들고자 한다”며 “관객들이 환경문제가 남의 얘기,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까운 일이라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친밀해 치명적인 상처의 목소리
제2회 여성인권영화제


ⓒ 서울여성의전화

서울여성의전화가 ‘친밀한, 그러나 치명적인’이란 주제로 오는 16일부터 19일까지 여성인권영화제를 개최한다. 지난 1997년 가정폭력 방지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서울여성의전화를 찾아와 가정폭력의 상처를 호소한다. 사회적으로 가정폭력문제를 알리고 예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다가 지난해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란 주제로 여성인권영화제를 시작했다. 올해엔 가정폭력에만 집중됐던 시각을 넓혀 일상 속에 은폐된,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여성폭력의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목적이다.

개막작은 ‘가정폭력에 대해서 말하십시오. 당신은 이미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란 슬로건 아래 10명의 프랑스 감독들이 제작한 단편작 모음 ‘가정폭력을 말하라: Dix films pour en parler’이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7개국 33편의 작품들은 △나, 마주하다 △그래도, 살고있다 △오늘, 피어나다 등의 세 가지 소주제로 나뉜다.

‘나, 마주하다’에서는 폭력이 아니라고 얘기되지만 분명 폭력적인 불쾌한 경험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에 집중했다. 데이트 강간과 아내 강간 문제를 다룬 ‘친밀한 강간: Acquaintance Rape’, 일반 가정에서 벌어지는 가사노동 분담과 아내의 재취업 논쟁을 들여다본 ‘당신과 나 사이’ 등 10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래도, 살고있다’ 주제의 영화들은 주로 폭력 관계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을 다룬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명예살인의 심각성을 실화를 바탕으로 지적한 ‘아침에: In The Morning’와 ‘남정순, 엄마누라줌마’를 비롯해 11편의 영화가 준비돼 있다.

세 번째 주제인 ‘오늘, 피어나다’에서는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유쾌한 이야기를 다룬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 The Grace Lee Project’와 여성폭력 피해자들의 몸에 남은 상흔을 쫓은 ‘더 워시: 클리닝스토리-The Wash: A Cleaning Story’ 등 폭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여성들의 당당한 모습을 담은 영화 12편이 상영된다.

유리화영 사무국장은 “여성폭력을 다룬 영화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라며 “이번 영화제를 다녀간 사람들에게 친밀한 관계에서 주는 폭력이 여성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가 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서울여성의전화

가정폭력을 말하라


또한 영화제 사전행사로 지난 12일엔 ‘성북구 평화마을축제’가 열렸다. 영화제의 주제가 보다 밀접하게 삶에서 구체화되도록 특색있고 재미난 방법으로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마련된 시간이었다.

인권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
제11회 인권영화제

 

ⓒ 인권운동사랑방

표현의 자유 쟁취와 영상을 통한 인권의식 및 인권교육의 확산을 위해 인권운동사랑방이  1996년부터 개최해온 인권영화제가 올해로 11회를 맞는다. 18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는 국내외 총 26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개막작은 2004년 영국 어부들의 눈을 피해 저녁 밀물 때 조개잡이를 하던 이주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고스트’다. ‘고스트’와 한국영화 ‘우리학교’에는 장애인관람권을 위해 더빙과 화면해설이 들어간다.

영화제 셋째 날인 20일은 ‘소수자의 날’로 정해 이주노동자와 한센인, 재일조선인, 성전환자, 동성애자를 다룬 작품을 상영한다. 2004년 캐나다 퀘벡주에서 동성애 부부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민결합권이 통과되고 양육권을 보장받기까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사람들의 투쟁 과정을 그린 ‘사랑의 정치’와 성전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진지하게 바라본 ‘레오N이라는 사람’, 한센인이라는 낙인 때문에 힘들게 살아온 한 할머니의 인생사를 다룬 ‘동백아가씨’ 등이 준비돼 있다. 관객이 영화감독과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는 시간도 마련된다.

영화제의 마지막 날인 24일엔 ‘반전평화의 날’이다.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혹한 상황을 보여주고 다시 한 번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화들이 상영된다. ‘조각난 이라크’는 전쟁 후 이라크의 모습을 아버지를 잃은 11살의 소년가장, 중산층 대학생 등을 통해 전쟁이 남긴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땅 블레인에 이스라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설치된 분리장벽을 둘러싼 투쟁의 모습을 담은 ‘내 사랑 블레인’과 일본 오키나와 지역주민들이 미군기지 주둔에 반대하며 펼치는 다양한 반기지 운동을 다룬 ‘전쟁기지 필요 없다’ 등도 준비돼 있다. 이날 역시 이라크 반전운동가, 팔레스타인 평화운동가 등 현장 활동가들과 관객들이 직접 대화할 수 있다,

ⓒ 인권운동사랑방

조각난 이라크


1997년부터 인권영화제를 담당해온 김정아 활동가는 “영화를 보는 소극적인 행위로나마 인권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나중엔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활동까지 펼치는 모습들을 매년 봐왔다”며 “영화제를 통해 어렵지 않게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밝혔다.

강추합니다

◇유리화영 서울여성의전화 사무국장=“개막작인 ‘가정폭력을 말하라’와 폐막작 ‘인생, 당신도 알겠지만’은 관객분들이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도 추천합니다. 1966년에 제작된 영화지만 여성폭력에 관련된 복합적인 문제점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모성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논란이 될 수 있지만 고민할 여지를 준다고 할까요.”

◇이해광 그린페스티벌 사무국장="심각한 문제들을 재기발랄하게 풀어가는 프리레인지스튜디오의 작품들을 보며 활동가들이 지향하는 대중과의 소통에 대해 색다른 접근법을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합니다. 또 시민단체들이 미디어를 잘 활용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린피스 특별전 작품들도 보셨으면 해요. 개인적으론 ‘미안하다 부실하다’란 1분짜리 영상이 아주 재밌었어요. 환경호르몬과 정자의 관계를 생각도 안 해본 방법으로 짧고 효과적으로 알려주던데요.”

◇김정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고스트’가 제일 맘에 들었기 때문에 를 개막작으로 골랐어요. 꼭 보셨으면 해요.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 분쟁사를 다룬 ‘내 사랑 블레인’을 보면 비폭력직접행동을 고민하는 국내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할매꽃’도 재밌어요. 좌우로 갈린 한 동네를 보여주면서 한국의 레드컴플렉스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수 있을 거에요.”

 

전상희 기자

 

제3호 14면 2007년 5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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