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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문화

사슴의 눈으로 늑대를 바라보다

 

환경사진전 '…움직이다' 지상 전시
ⓒ 김기찬

1979 수색 서울

그 시절엔 누나가 있었다. 양 옆엔 동생들을 거느리고 손엔 개밥을 들고 동네 강아지들의 우러름을 받던 누나가 말이다. 누나는 강아지들과 눈을 맞추고 강아지들은 누나 손에 있는 일용할 양식에 눈을 맞춘다. 밥그릇이 땅에 놓여지기 전 평화로움과 긴장감의 미묘한 공존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30년 동안 서울의 크고 작은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찍은 작품들을 담은 사진집 ‘골목 안 풍경’으로 유명한 김기찬 작가가 ‘1979 수색 서울’이란 작품으로 시민들에게 그 미소를 선물한다. 김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정감 가는 사진들 중 사람과 가장 친근한 동물인 개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거리로 나왔다. 지난 3일부터 코엑스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환경재단 주최 그린페스티벌의 환경사진전, ‘그린아트페스티벌’을 통해서다.

김 씨를 비롯한 국내외 유명 작가 16명이 참가한 이번 전시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야외사진전이다. 전시회는 5월 한달간 코엑스 앞 광장에서 시민들과 만난 후 6월에는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이동한다.

주제는 ‘…움직이다’, 주인공은 ‘동물’이다. 2005년 ‘나무, 그 품에 안기다’와 2006년 ‘물 오르다’라는 정적인 주제의 사진전을 열었던 그린페스티벌 측은 이번엔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삶과 그에 못지않은 속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자연환경을 아우르는 동적인 주제를 선정했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져 살 곳을 잃은 동물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개발을 멈추지 않고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인간들 때문이다.

이해광 그린페스티벌 사무국장은 “동물만큼 사람과 가장 가까우면서 핍박당하는 존재가 없다”며 “인간들이 저지른 잘못으로 죄도 없이 큰 피해를 당해야 하는 동물들을 통해 환경문제를 다뤄보고자 했다”고 전시회 주인공으로 ‘동물’을 결정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했다.

작품들은 △동물기념사진 △우리 밖 ‘우리’ △침묵의 봄 △사슴의 눈으로 늑대를 바라보다 등 네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되고 있다.

동물기념사진 섹션에서는 여성용 깃털 목도리를 두르고 누드 핑크 립글로스를 바른 수컷 침팬지를 사랑스럽게 담은 독일의 부부 생태사진가 하이디와 한스의 작품 ‘침팬지’를 포함해 18점이 선보였다.

ⓒ Heidi&Hans-Juergen Koch

이 정도는 되어야지


우리 밖 ‘우리’ 섹션엔 동물과 인간이 다툼 없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풍경이 담긴 작품들 26점이 전시됐다. 현재 주목받은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손승현 씨의 작품 ‘그린 그라스를 출발한 기수대열’도 볼 수 있다. ‘미래를 향한 말타기’라고 불리는 미국 원주민들의 연례행사를 담은 작품이다.

ⓒ 손승현

그린 그라스를 출발한 기수대열


침묵의 봄 섹션에서는 지구 온난화와 생태위기로 살아갈 땅을 잃어가는 동물들의 슬픈 이야기에 집중했다. 지난 4일에는 이 섹션에 도도새 프로젝트 작품으로 참여해 처음 내한한 초청작가 해리 칼리오 씨와 시민들이 만나 직접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 Harri Kallio

뒤늦은 희망


해리 칼리오 씨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한 도도새가 실제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멸종되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모리셔스 섬 곳곳에 도도새 모형을 만들어 즉흥적으로 떠오른 상상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실제론 없지만 원래 있어야 하는 동물들의 존재가치를 시민들이 직접 보고 느끼며 자연스레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이 사무국장은 해리 칼리오 씨를 초청하게 된 배경을 말했다.

ⓒ 최경애

Untitled, 2002, 서울

달려야 하지만 달릴 수 없고, 달릴 수 없지만 달리고 싶은 동물원 속 치타의 뒷모습을 처연하게 담은 최경애 씨의 ‘untitled, 2002, 서울’은 ‘사슴의 눈으로 늑대를 바라보다’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최 씨의 작품 외에도 북극곰과 동물원의 동물들, 포획된 고래와 사슴들의 모습을 담은 18점의 작품들이 전시돼 사람에게 쫓기는 동물들의 외롭고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사무국장은 “너무 심각한 환경문제 사진들을 보여줘서 시민들의 눈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거나 교육 차원이 아닌 친근한 주제들을 가지고 환경문제를 알리고 싶었다”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동물만큼 좋은 주제가 없다”고 말했다.

빠르게 앞으로만 움직이는 발걸음을 잠시 늦추고 사진 속 동물들과 눈을 마주쳐 보자. 다시 지구는 움직인다.

전상희 기자

 

제2호 8면 2007년 5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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