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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이동희ㅣ철학여행카페

로고스와 판타레이의 도시 에페소스

철학여행까페[2]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지금 그리스는 최악의 산불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미케네, 올림피아, 에피다브로스 등 유적지가 산재해 있는 펠레포네소스 반도의 산불 피해가 극심하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시에 다발적으로 산불이 일어나자 그리스 정부는 이번 산불이 개발 욕심 때문에 일어 난 방화라고 추정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자연과 인류 유산인 그리스의 고대 유적지가 화마의 혀 속으로 사라 질 위험에 처해 있다.

그리스 산불과 아르테미스 신전

이번에 소개하는 에페소스 지역의 아르테미스 신전도 방화 때문에 소실된 적이 있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고도 화려한 건축물이다. 그러나 기원전 356년에 방화로 불타 버리고 말았다. 신전에 불을 지른 자는 헤로스트라트스라는 자였다. 방화범에게 불을 지른 이유를 물었다. 타버린 신전과 함께 악명이나마 이름을 후대에 영원히 남기고 싶어서였다니, 대답이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에페소스 시민들은 이 방화범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이름을 기록에서 모두 지워버리는 한편 입 밖에 내는 것조차 금지했다. 
 

이동희

사도 요한 교회내의 사도 요한 무덤


에페소스 시민들은 다시 성금을 모아 아르테미스 신전을 더 크고 화려하게 복원했다. 그 규모와 화려함에 이곳을 지나던 알렉산더도 놀랄 정도였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이 사원은 수많은 조각가들에 의해 화려하게 치장되어 그 호화로움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원은 기원 후 125년에 고트족의 침입으로 파괴되어 재건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기원후 6세기 로마 황제 유스티아누스에 의해 그나마 남아 있던 사원의 원주는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아기야 소피아 성당의 석재로 사용되어 영영 회복되지 못하였다. 이 신전은 지금은 그야말로 폐허가 된 채 달랑 기둥 하나만 황량하게 남아 있었다.

이동희

첼수스 도서관의 파사데

지금은 황량한 모습이지만 아르테미스 사원이 가장 웅장하고 화려했을 때 이곳에서 활약했던 철학자가 헤라클레이토스다. 그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키는 최고 사제 집안이자 에페소스의 정치지도자였던 블로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가만있으면 저절로 최고 지도자이자 최고 사제직에 오를 수 있는 보장된 신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세속적 명망이나 지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자리를 동생에게 양보해 버리고, 평생을 세속에 초연한 철학자의 모습으로 살았다. 세속에 초연한 철학자로서 그의 모습이 유감없이 나타난 것은 다리우스 대왕이 그를 초청했을 때였다. 다리우스 대왕은 그의 명성을 듣고, 강연을 직접 듣기 원한다는 초대장을 보내왔다.

“그대에게 그리스의 지혜를 듣기 원하오. 자연에 관한 그대의 저작은 세계에 대한 대담한 이론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해하기 참으로 어려운 애매한 구절들이 많으니, 직접 와서 나에게 설명을 해주어 빛을 밝혀 주기 바라오.”

초대에 응하면 엄청난 보화와 안정된 지위가 따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애당초 권력이나 세속에 아무런 욕심이 없었던 헤라클레이토스가 어떤 답신을 보냈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가 보낸 답신은 이렇다.

“인간이라는 덧없는 존재는 진리나 정의와는 거리가 멀게 산다. 인간은 자신의 고질적인 무분별함 때문에 지나치게 허영스러운 생각만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체의 악과 나를 따라다니는 과욕이나 높은 지위에 앉고자 하는 허세도 모두 버렸으니 페르시아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소박한 것에 만족하며 내 뜻대로 살아갈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글은 대중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고 심오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는 스코테이노스, 즉 이해할 수 없는 자란 별명을 얻었다. 소크라테스도 그의 글을 읽고, 이렇게 말을 할 정도였다.

불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그의 글을 읽고) 내가 이해한 부분을 말한다면 대단히 탁월한 것이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말한다면,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델로스의 잠수부와 같은 인내심이 요구된다.”

이동희

아르테미스 신전 터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은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판타레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른다. 그러나 변화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립과 투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 대립과 투쟁을 그는 불로 표상했다. 그래서 그를 불의 철학자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은 모든 것을 재로 만드는 불이 아니라, 모든 것을 변화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자 원동력이다! 그는 모든 사물의 운동과 변화에는 법칙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을 로고스라 이름했다. 그가 만든 이 로고스라는 말은 그가 죽고 나서 600년쯤 지나 에페소스에 살던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의 첫 머리에 인용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

이동희

원래 날씬한 몸매에 수렵의 여신 아르테미스 여신이 지모신 신앙과 결합하여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수많은 가슴을 가진 여신으로 변모된 모습.

고대 도시 에페소스는 밀레토스에서 버스로 넉넉잡아 1시간 정도, 셀축에서는 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에페소스는 며칠 묵어 찬찬히 들러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아르테미스 신전 이외에도 원형극장, 첼수스 도서관, 사도 요한의 묘가 있는 사도 요한 교회, 성모 마리아 유택, 아르테미스 신전과 고대 로마인의 빌라에서 나온 출토물을 전시해 놓은 고고학 박물관 등 볼 거리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낮에 유적지를 돌아다니다 몸이 피곤하면, 저녁 때 하맘(터키식 목욕탕)에 가보기를 권한다. 하맘에 들어가면 가운데 뜨거운 온돌판이 있어 그곳에 누워 피곤한 몸을 풀 수 있다. 그리고 그곳 덩치 큰 때밀이에게 몸을 한번 맡겨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판타레이!'

이 덩치 큰 때밀이는 독실한 이슬람 신도인데, 내가 매년 갈 때 마다 목욕탕 입구에 앉아 코란을 읽고 있었다. 주문을 하면 때를 밀러 온다. 이 따 만한 덩치에다 힘이 장사라, 덩치라면 밀리지 않는 내 몸도 그 앞에서는 왜소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솥뚜껑만한 투박한 손으로 한쪽 몸의 때를 다 밀면, 순식간에 몸을 거꾸로 들어 방향을 바꾸어 놓는데, 전혀 힘든 기색이 없다. 그가 내 몸을 돌릴 때 마다 나는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판타레이!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제18호 16면 2007년 9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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