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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내 인생의 첫수업

후회없는 최고의 선택

내 인생의 첫 수업 [14]

 

내 인생의 첫 수업은 명사의 강연, 훌륭한 저자의 책보다 짧은 내 인생의 다양한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애정이다. 아무래도 다양한 인생경험은 반복될 것이고, 계속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새로움과 나에게 부족한 무엇을 계속 배우게 될테니 아무래도 내 인생의 첫 수업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보다 계속된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가끔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서 “나 여성운동 해. 서울여성의전화에서 일 해”라고 말하면, “역시 너랑 어울린다. 그럴 줄 알았어”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학교 다닐 때 그다지 모범생도, 뭔가 튀는 아이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를 여성운동으로 이끌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내가 여성운동을 하는 이유

어릴적 내가 기억하는 가족의 모습은 폭력, 외도, 경제적인 문제, 혈연으로 인한 갈등 등 한국사회에서 얘기하는 가족문제의 총 집합체였다. 어린나이에 이런 가족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크면서 부터는 그렇기 때문에 열린,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3~4살 때 친척오빠에게 당한 성폭력, 9살 때 야산으로 끌려가 오빠친구로 부터 성폭행 당할 뻔한 기억, 학교에서 수도 없이 본 성도착증 환자, 수십 번도 넘게 당한 성추행, 22살 밤중에 강간의 위협과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 나오기 까지 그저 평범한 아이었고, 생각 만 해도 끔찍한 이 기억들을 곱씹고 말하면서 내 스스로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했고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첫 직장, 시민단체라고 얘기하는 이 곳에서 마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구분되어있고, 사회에 갓 들어온 신입생은 커피심부름과 카피하는 남성의 보조자에 지나지 않았다.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 받고, 속상했던 걸 보면 여성의전화로 오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 A+ 주고싶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까지 삶에서 가장 최고의 선택을 말하라면 명쾌하게 서울여성의전화를 만나게 된 것을 1번으로 꼽는다. 그 외에도 집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도 있지만. 스스로 점수를 주자면 내 인생은 A+로 점수를 주고 싶다.

서울여성의전화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무엇을 해야 하는 분위기로 인해 생소함도 있었지만 그 느낌은 딱 며칠짜리 였을뿐 여기가 진정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느낌과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여성의전화와 함께 하는 가운데 8년째 치유를 통해 나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몇년전 30년만에 갑작스럽게 언니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모든 가족들이 충격에 고민하고 있었지만 나에겐 전 남편의 폭력과 도박으로부터 살기 위해 딸을 버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30여년간 그 짐을 짊어지고 살아왔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25살 이후로 새로 시작된 인생은 대학시절 남자 선후배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내 모습을 기억하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따뜻한 상대로 인식 되게 했다.

여성으로 사는 자신감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차별을 받는 사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가 진정으로 나를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며, 힘을 갖게 하여 차별과 억압에 다시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주는 곳. 이것이 여성의전화의 힘이자, 내가 여성의전화를 통해 배우고, 얻은 것이다.

짧은 글에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일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 지면을 통해 다 담아낼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극복과정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으로 생존할 수 있었고  또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용기를 갖고,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유리화영 서울여성의전화 사무국장

 

제17호 16면 2007년 8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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