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사회복지사업’이란 그저 착한사람들이 하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차에 친할머니께서 평생 동안 일구셨던 여성복지시설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었던, 사회의 관심 밖에 있는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이면들을 보고, 느끼고, 공감하게 되면서 비로소 여성의 삶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가업으로 물려받은 사회복지사업의 수혜자이면서도 때로는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강한 거부감마저 있었다. 그것은 변화가 쉽지 않은 경직되고 정체된 분위기 속에서 나도 그렇게 ‘선한 일’을 한다고 자만하며, 닮아 갈까봐 하는 노파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늘 만나는 성매매 여성들을 ‘치료와 보호의 대상자’라는 하나의 안경으로만 해석하려는 그 단순함과 어리석음이 싫어서였다.
인간관계 프로그램, 분노조절 프로그램, 인성변화 프로그램, 약물예방 프로그램, 성교육, 자아존중감 회복 프로그램, 미술치료 프로그램 등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마다않고 무엇이든지 했다. 자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백화점식 프로그램, 프로그램을 위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프로그램을 하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여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들은 인생의 가벼운 바람에도 넘어지기 일쑤였다.
수평적 관계 경험
그럴 즈음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이어야 하나'에 대한 물음을 갖고 시도했던 것이 바로 ‘글쓰기 워크숍’이었다. 방송인이면서 작가, 줌마네 대표이며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숙경 선생님과 함께 했던 글쓰기 워크숍은 기존 ‘치료적 접근’의 프로그램에 식상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우선 강사와 참여자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아픔과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는 거라며,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스스럼없이 우리들 앞에 풀어 놓았던 그 용기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동안 ‘치료적 접근’의 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났던 강사와는 매우 다른 모습에서 ‘수평적 관계’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모두들 글을 잘 못 쓴다며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글로 표현한 세부묘사와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제인 에어 다시쓰기, 릴레이 소설 쓰기 등등을 거치며 알게 된 것은 바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 사용의 유무가 아닌 얼마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성찰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3개월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글을 통해 나를 보고, 타인을 이해하며 세상과 소통하던 우리들은 어느 새 훌쩍 커버렸다.
내면의 힘을 키워라
워크숍 마지막 시간에 이숙경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손가락에 낀 반지는 누구나 훔쳐갈 수 있지만 내면의 힘은 절대 아무도 훔쳐가지 못해. 그러니 너희들도 내면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길 바래.”
내 인생의 첫 수업은 바로 글쓰기 워크숍이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파도 앞에 굴하지 않는 내면의 힘을 일깨워주었으며 더 나아가 W-ing의 철학을 이루고 있는 정신적 삶, 즉 인문학의 단초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순간의 생계를 위한 빵이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장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제13호 7면 2007년 7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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