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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내 인생의 첫수업

농촌학교 지키기의 추억

내 인생의 첫 수업[12]

 

1999년 가을이었던가보다. 전국의 농어촌지역에 있는 학생수 100명이하 소규모학교 2천개를 분교 내지 폐교화하겠다는 교육부 안이 발표되었다. 그 당시 정부는 IMF 경제위기 이후 교원정년단축을 시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60세이상 교사 1만명 이상이 강제 퇴직 당했다. 도시학교에서 교원 수가 부족하게 된 상황에서 ‘전국 교육청관리과장회의’에서 농촌학교 통폐합을 하면 농촌교사를 도시로 돌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전격적으로 대규모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난 도농복합지역인 아산에서 YMCA 실무책임자로 일하고 있으면서 농촌지역공동체에 학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고, 이웃 중에 두밀리 폐교반대운동을 이끌었던 장호순 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가 살고 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교육부 안을 철회하기 위해 의기투합하였다.

서울의 참교육학부모회 회의실에서 첫 모임을 가질 때 전국에서 8명 정도의 학부모대표가 모였던 것 같다. 그중에는 나와 장호순 교수, 학부모대표들, 박인옥 전 참교육학부모회사무처장 등이 참여하였고 학부모 대표중에는 이철우 전 국회의원(당시 포천 중리초 학부모운영위원장)도 있었다.

우리는 ‘작은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전국의 통폐합대상학교들을 방문하여 설명회를 하거나 토론회, 교육부 항의집회, 기자회견, 시사다큐방송, 전국적 수업거부운동 등을 벌여 당시 여론을 매우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약 1년에 걸친 반대운동의 결과로 교육부는 학부모 동의 없는 통폐합은 하지 않는다는 공문을 시&도 교육청에 내려 보냈고, 이 공문과 지역별 운동의 활성화로 전국적으로 500여개 이상의 학교 통폐합 위기를 막아내었다.

농촌학교 통폐합 결정은 지역 시&도의회에서 결정하는데 도의회가 열리는 날 학부모 중 누구라도 참석한 학교명단을 써내거나 그 학교출신 대학생 한명이라도 참석한 학교는 통폐합명단에서 제외시키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마치 쉰들러리스트의 한 장면처럼 ‘작은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에 단 한사람의 반대의견이 들어와도 그 학교를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었다.

시민운동에 투신한지 수십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뛰어 다니면서 민초들을 두루 만날 기회를 가졌지만 내 인생에서 또다시 이런 기회는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학교, 한 학교를 갈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마을노인들이 “이 학교 만들 때 내가 벽돌지고 얼마나 고생하면서 만든건데···”, “학교 만든다고 주민들이 자기 땅 기증해서 학교에 갖다 바쳤는디···” 하면서 교육부를 성토했다. 또 학교가 만들어진 내력, 그 학교출신인 유명인사들(?), 선생님들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들으면서 무지랭이 농촌사람들이라고 깔보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분들의 피와 땀이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도시를 키워내 왔음을 알게 되었다.

7년여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당시 함께 운동을 이끌었던 학부모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올해 초 교육부는 또다시 농어촌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미FTA 반대도 버겁고, 한해 농사일 제대로 하기도 버거운데 또다시 농촌주민들에게 교육분야에서의 경제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정부가 돈 없을 때 농촌주민들은 스스로 땅을 내서 정부에 바쳤고, 수업도 제대로 못하면서 책보에 시멘트와 블록을 지고 학교를 만들었는데···. 많은게 변했지만 어제의 교육부는 오늘도 그대로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전성환 한국YMCA전국연맹 기획실장

 

제14호 16면 2007년 8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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