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20주년 여성연합, 성평등사회 진전 성과
‘창조적 상상력 자극’ 여성활동가대회 성공적 개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88년), 영유아보육법 제정(90년), 성폭력특별법 제정(93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87년), 모성보호관련법 개정(01년), 성매매방지법 제정(04년), 호주제 폐지(05년)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많은 법들이 지난 20년간 제개정됐다.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여성과 관련있는 법임을 알 수 있다.
87년 이후 한국사회는 민주화를 이룬 듯 하지만 특히 여성의 인권과 정치·경제적 권리는 여전히 무관심했다. 여성들 스스로가 일어나 싸웠고 법을 만들어냈다. 그 자리에는 늘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있었다. 앞에서 때론 뒤에서 여성들과 함께 연대하며 자기들의 자리를 지킨 여성연합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오는 30일 후원의 밤 행사가 열리고 지난 17일부터 3일간 전국여성활동가대회도 개최했다.
김금옥 여성연합 사무처장을 만나 활동가대회 이야기와 여성연합의 20년의 의미 등에 대해 물었다.
김상택 기자 |
-전국여성활동가대회는 어땠는지.
▲400여명의 전·현직 여성연합 회원단체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모였다. 모두 함께 어우러져 3일간의 일정 동안 다들 행복하고 즐거워했다. 여성들이 행복한 것이 세상의 대안이고 여성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선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여성활동가들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마련한 자리였다.
13개 세션으로 구성된 대안포럼에서 여성들의 상상력을, 회원들의 능력과 정보를 공유하는 체험마당에선 창조력을 자극했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UCC 상영회와 퀴즈대회까지 참가자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더욱 의미있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여성운동의 선·후배가 한 자리에 모인다는 기획으로 여성연합의 전 대표였던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과 한명숙, 이미경 의원 등도 함께 했다.
20년 동안 이뤄낸 여성연합의 수많은 성과들과 향후 비전을 공유하고 새로운 사회이슈들에 대한 대안적 소통과 가치실현 등을 이룰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하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 |
여성연합 주최로 지난 17일부터 3일간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전국여성활동가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명랑운동회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활동가가 먼저 행복을
-20주년 맞이한 소감은.
▲여성연합이 굉장히 큰 조직이고 권력화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여성연합의 저력은 사무처에 있는 10명 미만의 상근자가 아니라 전국의 풀뿌리 회원단체 활동가들 1000여명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누구나 존중받는 세상을 목표로 수많은 여성활동가들이 땀을 흘렸고 이런 노력을 지지해준 후원자들과 신뢰를 보내준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20년 동안 한국사회의 민주적 진전에 여성연합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나와 같은 꿈과 신념과 믿음을 가진 내 옆의 활동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여성활동가대회 때 함께 고생해왔고 또 앞으로 고생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무척 감동스러웠다.
-그 동안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새로운 의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여성운동 내에서도 세대간, 지역간 차이 등으로 굉장히 다양한 요구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시민들의 교육수준도 높아져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도 높다. 국제결혼과 이주노동자 등의 증가로 한국도 다문화 사회가 돼가고 있다.
여성연합이 이에 맞는 사회개혁운동을 해야 하는데 세상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제대로 수렴해내지 못했다는 내부반성이 있었다. 또 여성운동의 원동력이 되는 풀뿌리 여성들과 소통하면서 운동을 삶의 자세로, 의식의 변화로 이끌어내는 근본적인 운동을 만들지 못했다는 반성도 있다.
-한국사회 내 여성운동의 향상을 위한 여성연합의 향후 활동계획은.
▲앞서 언급한 내부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여성연합에서는 향후 비전논의를 계속 하고 있다. 매년 총회를 통해 새로운 방향과 비전을 선포해왔지만 20주년을 맞아서 대대적으로 정관의 목적과 세부사항들을 고치고 운동방식개선과 조직개편, 여성연합이 이룬 사업과 이뤄야 할 사업 등을 나누는 작업을 내년 총회 때까지 할 예정이다.
그리고 회원단체들이 지속가능한 여성운동을 할 수 있도록 여성활동가 역량 강화 지원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할 생각이다. 여성연합은 회원단체들의 인적·물적 자원을 만들어내고 사회 현안의 주제에 맞는 단체로 대표성을 이양해서 각 단체들간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의 통로 역할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비정규직과 빈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 반대운동이 아니라 대안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대선을 맞아 여성연합은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노동시장에서 임금이나 승진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여성이다. 비정규직의 80% 이상도 여성이다. 빈곤층 구성원 중 대다수가 또 여성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곧 여성의 문제고 빈곤화 문제도 여성문제다. 하지만 단순히 여성문제이기 때문에 여성단체들하고만 해서는 안 된다. 사회경제적인 의제들을 개혁세력과 연대해서 통합적으로 해결해 나갈 때 여성운동이 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민주적으로 진전될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될 이번 대선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운동이 갖는 종합적인 의제들을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연대해서 사회발전이 역행하지 않도록,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심해져 양극화가 심화되고 지역 공동체 파괴로 여성 삶이 더욱 빈곤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다.
국가정책의 주인공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유권자라는 사실을 대선시민연대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알리고 유권자들이 정책을 만들어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여성운동하면서 느낀 점이나 기억나는 활동은.
김상택기자 |
▲84학번으로 대학 때 학생운동하다가만들어 계속 활동가로 일했다. 지역연합을 만들고 전북여성단 3학년 때 총여학생회장이 됐다. 졸업하고 전북민주여성회를 체연합 사무처장으로 2002년까지 있다가 2003년 1년간 안식년으로 필리핀 아시아센터에서 활동하고 2004년부터 여성연합에서 일했다.
2000년 군산 성매매집결지에서 화재사건이 있었다. 전북여성연합에 있었을 때인데 여성운동하면서 성매매 문제 심각하다고 말로만 들어왔던 것을 화재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실과 마주했을 때는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가선 안 된다는 생각에 성매매방지법 제정운동을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성매매가 왜 범죄이고 폭력인지 알려 공감대를 형성하고 법과 제도가 시급함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다가 안식년을 맞아 필리핀에 갔다가 돌아온 2004년에 국회에서 성매매방지법이 통과됐다. 통과되는 그 순간에 방청석에 홀로 앉아서 벅찬 감격을 느꼈다. 이 법이 시행된 9월 23일에는 대법원에서 군산화재사건이 국가 책임이라는 판결까지 났다.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하면서 같이 싸웠던 활동가들과 눈물을 흘렸다. 호주제 폐지될 때도 감동적이었다. 한국의 여성운동이 발전해온 현장에 함께 했다는 게 정말 큰 보람이고 기쁨이다.
신뢰받는 운동사회 노력을
-시민사회운동 위기론에 대한 생각은.
▲독재청산 이후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구가 발생하게 됐다.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준이 됐다. 대중들의 민주화 의식도 향상됐고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온갖 정보를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변화된 조건에 맞게 운동도 역시 새로운 변화를 요구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를 수용해서 우리 운동이 어느 지점에 있고 우리가 어떤 부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나 하는 성찰과 이후에 어떻게 갈 것인가란 좌표를 찾아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위기라기 보단 새로운 요구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매일 30분씩 꾸준히 운동하는 게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이젠 누가 먼저 30분씩 꾸준히 운동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리고 참여를 권유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그렇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이후의 시민운동이 대중으로부터 또 다른 사회의 희망세력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행복한 것 아닌가. 빈곤은 상대적이라 물질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면 끝이 없다. 경쟁사회에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시민사회운동세력은 경쟁사회의 대안으로 돌봄사회를 보여줘야 한다. 이를 직접 우리 삶을 통해 보여줘야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풀뿌리 지역으로 들어가 시민을 중심에 세우는 시민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새로운 요구를 실현할 책임의식이 시민사회의 운동세력에게 있다.
여성연합도 다양한 과제들을 삶 속에서 실천해내면서 대 남성투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문제와 모든 사람이 더불어서 행복하게 나누고 서로 소통하면서 존중하며 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좋은 의견과 지혜 모아달라고 부탁드린다.
사진=김상택 기자
전상희 기자
제17호 3면 2007년 8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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