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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또 다른 악, 이주여성 인권 유린

시민운동 2.0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은 반가움과 더불어 재빨리 공통으로 나눌 수 있는 수다거리를 찾는다. 무엇이 있을까? 특성이 강한 동호회 모임도,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동료들도 아닌 지난 시간은 공유 했지만, 현재 다른 옛 친구들의 수다거리.

서울 대학로 술집 한 편에 모인(다들 졸업과 동시에 또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죽어라 서울로 올라가기에 소수 몇몇 지역에 남은 자들이 주로 서울을 올라가 만나곤 한다) 옛 친구들의 대화는 대충 남자친구들은 돈벌이와 결혼, 여자 친구들은 한 친구가 결혼을 앞 둔 터라 결혼을 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스무 살 후반 혹은 서른 초입에 들어간 우리들의 전반적인 결혼관이라는 것은 남녀 성을 망라하고 사랑이 전부가 아닌 경제적 조건이 합당해야만 가능한 결합이다. 또한 그러한 결합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주변지인들의 소개는 물론이거니와 멜로영화의 흔한 소재가 되고 있는 결혼중개업체도 이용도 고려해 보는 또는 본 친구들도 있다.

한참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문득 나와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한국남자와 결혼한, 중국계 이주여성과의 대화가 생각이 났다. 그녀가 그랬다.

“한국생활에서 당연히 힘든 점이 많다. 한국어도 힘들고, 먹는 것도 힘들고, 중국의 가족들도 많이 보고 싶다. 하지만 더 많이 속상한건 한국사람 들이 나를 돈만보고 한국남자랑 결혼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또는 생각했던 한국 사람과의 결혼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엄청난 사회적 이슈인 국제결혼문제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순진한 바람이었다. 국제결혼중개업소라는 중매회사를 통해 일정정도 가입비나 성사비등의 돈을 내고, 한국남자를 소개 받고, 그 남자가 마음에 들면 한국에 시집오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조금 더 나은 생활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싶은 것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한국에 와서 직면한 상황은 순진한 바람과 어긋나는 지독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중국 중개업소에서 알려준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남편이 된 사람이 중국에서 만났을 때 말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말과 달리 월세 단칸방에서 사내아이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왔다. 게다가 자신이 중국 중개업소에 준 돈은 빚을 낸 것이었다, 그 사실을 남편이 결혼 전에 이미 알고 한국에 오면 바로 갚아 준다고는 했으나 한국에서의 남편은 그럴 경제적 능력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멀리 타국에서 혼자였기에 남편을 의지하며 살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개인적 어려움 외에도 팔려온 혹은 사온 여자라는 주변인들이 달아준 편견의 꼬리표는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잔인한 사회적 폭력인 것이다.

이주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단순하게 한명의 개인으로 그녀를 보자면, 그녀는 좀 더 나은 경제적 조건을 위해 사랑은 잠시 접고 중개업소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결혼하려는 대학로 한 쪽에 모여 수다 떠는 내 친구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 그녀를 우리는 왜 자신을 판 여성으로 보는 것일까. 우리의 어떤 잘못된 이해가 이주여성이라는 특정한 집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만드는 것인가?

그녀를 다시 빈곤을 벗어나려고(여기서 빈곤은 개인적 빈곤은 물론이거니와 세계적 부의 불평등이 나은 국가적 빈곤을 포함 할 수밖에 없는) 결혼을 통한 국가적 이주를 시도한 이주여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야기가 위에서처럼 단순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빈곤을 원죄로 삼지 않는 이상 결혼이라는 선택에 있어서 ‘돈이냐, 사랑이냐’라고 묻는다면 개인의 선택이 어찌하든 이유는 다양해 질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를 가진 국제중개결혼이라는 것을 택한 중국인 여성 개인이 느끼게 되는 한국사회 내 편견이라는 것은, 그녀를 한명의 존엄한 인간이 아닌 한국 남성들의 성적·재생산적 도구로 위치시키면서, 이주여성이라는 특정한 집단 전체의 권리를 부정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는 것이다.

시작점부터 한국인과는 다른 상황, 때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정한 일들이 한국인에게 유리한 지배적 관점으로 비춰지면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권리조차 이야기 할 수 없고 때로는 자신의 권리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죽은 듯 살아가는 것은 인권유린의 현장이자 우리가 만들어 놓은 또 다른 악(堊)인 것이다.

몇몇의 나와 같이 공부했던 이주여성은 국제결혼환영이라는 현수막에서 보여 지는 외형과는 다른, 하나의 존엄한 사람으로 설 수 없는 한국사회의 이중성 안에서 발을 돌려 모국으로, 제3의 다른 곳으로 떠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기도 했다.

나는 가끔 내가 왜 이 곳에 서 있는 지를 자문하곤 한다. 너무나 달라진 옛 친구들 속에서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매우 불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당신과 또는 당신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결혼, 내가 만난 이주여성의 삶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녀들이 나와 당신과 혹은 당신들과 같이 한명의 존엄한 사람으로 같이 살아가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불안하고 힘들기만 한 이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 가지 않을까?


김미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

 

제16호 15면 2007년 8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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