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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지구촌

만년설 녹아흐르는 계곡, 가슴 설레임!

2007 피스&그린보트를 타다[2]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피스·그린보트가 지난달 14일부터 28일까지 일본 하치노헤, 쿠시로와 캄차카 반도, 사할린, 블라디보스톡을 거치는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2005년 첫 항해를 시작한 피스·그린보트는 한·일 양국 각계 인사들과 시민들이 역사·사회·경제·환경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아시아 교류 프로그램이다. <시민사회신문> 송성수 기획실장이 이 여정에 동행했다. 피스&그린보트에서 찾은 성찰과 모색의 항해 일지를 연재한다. /편집자


#6. 시간의 여백에 길들여지다

은빛 바다를 가르는 돌고래처럼 후지마루호는 오오츠크해를 넘는다. 흐린 눈으론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창연한 바다. 검푸른 바닷물이 다가와 뱃전에 부서지는가 싶더니 하얀 포말이 하늘을 난다. 이윽고 수줍게 드러내는 청옥색 속살. 첫날밤의 아낙처럼 한 꺼풀씩 속내를 드러내는 파도의 움직임이 황홀하다. 

파도의 리듬을 탄 각종 프로그램들은 선내를 유희하고 있다. 영화상영이 그렇고, 강연회가 또 그렇다. 아침에 댄스 테라피가 있는가 하면, 저녁엔 힙합 라이브 공연에 참여할 수 있다. 꼭꼭 숨겨온 재능을 발휘해 초상화를 그려주는 노인이 있고, 그 옆엔 타로점으로 행운을 빌어주는 젊은 여성도 있다. 마루에 누워 그림을 그리는 선상학교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바다를 배경으로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도 제법 잘 어울린다.

만년설을 향해 뛰어 올르는 일행. 한국은 삼복더위가 한창이나 대자연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경계 넘어에 있다.


무엇을 해도 가로 막는 이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다그치는 이 없다. 모든 시간이 자신의 의지를 따르고 대부분의 책임이 스스로의 통제 아래 있다. 이른 아침 채 온기가 가시지 않은 선내신문을 집어 들고 참가할 프로그램에 동그라미 치며 하루 스케줄을 잡고 부담 없이 일정을 변경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경쟁적으로 사우나실로 향하고 습관처럼 세탁실에 들러 빨래를 걷어오기도 한다. 그렇게 오롯이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만들며 들숨과 날숨의 공간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데 익숙해진다. 그렇게 시간은 7월말을 향해, 이별의 순간을 향해 내닫고 있었다.

#7. 어떤 명작도 자연을 넘어설 수 없다

만년설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후지마루호에서 러시아로의 입국을 기다리는 시간. 항구엔 러시아 군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한때 그들은 악의 축이었으며,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독재정권은 국민들을 세뇌시켰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소통보다는 단절을, 화합보다는 갈등을 가르쳐왔다. 갈등의 대상으로 오랫동안 단절되어왔던 그들의 손에서 여권을 건네받은 후에야 러시아 땅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러시아인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도시 캄차카. 러시아 최강의 태평양 핵잠수함기지가 똬리를 틀고 있는 이 지역은 내국인에게조차 10여 년 전에야 개방되었다고 한다. 하루 건너 1~2도의 지진을 겪어야 하고 91년에는 화산 폭발을 경험하기도 한 이 지역엔 지금도 29개의 화산이 꿈틀대고 있다 한다. 물살을 가르는 연어와 그 위에서 춤추는 불곰, 유황을 내뿜는 분화구와 그 밑에서 스키를 즐기는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까지 캄챠카는 원시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한국에 알려져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북단 극동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그래서 그 이름만으로도 여행 매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꿈의 여행지다. 

생활 쓰레기와 각종 개발의 잔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방의 진주' 블라디보스톡 해안에서 'Clean up' 캠페인을 진행하는 모습.


60여명의 아바차 화산지대 트래킹팀은 3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연기를 내뿜는 만년설을 향했다. 6WD 특수차량이라고는 하나 군용트럭을 개조해 만든, 차체의 진동을 온전히 몸으로 흡수해야만 하는 차다. 들끓는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자갈길 위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계곡을 따라 일행은 40여분 바이킹과 자이드롭, 범퍼카를 번갈아 경험하며 캄차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흔들리는 트럭. 불안과 쾌락의 교차점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흔들림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몸에 힘을 빼고 그 진동에 몸을 맡기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화려하게 뻗어 있는 산봉우리 아래 유장하게 흐르는 벌판. 중간 어디쯤에 일행이 점심을 해결한 베이스캠프가 있다. 푸른 하늘과 눈에 둘러싸인 하얀 산, 그 아래 초록의 대지와 빨간 지붕의 휴식처까지. 과연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할만한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대려 광야의 바람을 맞이하며 문뜩 서울의 일들을 떠올렸다. 

베링해(海)의 초입에서 후지마루는 페트로파블롭스크항(港)을 떠나 다시 남하. 사할린으로 향했다.

#8. 희망은 절망의 나중에 온다

저녁 10시가 넘은 시각 아직 밖은 훤하다. 백야(白夜)다. 한때 세계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에 의해 크게 화제가 됐던 영화 ‘백야’는 충격이었다.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는 믿기 힘든 자연현상이 놀라웠으며, 주인공이 소련을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다는 것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소련은 필자에게 동토의 땅이었으며 폭력과 억압으로 점철된 암흑의 존재였다. 

사할린을 생각할 때 주저 없이 한인동포들과의 만남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포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한과 통절한 아픔을 함께하려는 마음에 기인한 것이었다. 흡사 TV에서 보아온 동포와의 애끓는 상봉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통한의 눈물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인류의 보고 캄차카의 대자연을 마끽하며 최기순 감독의 야생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였다. 오만함이었다. 아니 무관심이었다. 어렵긴 하지만 사할린 동포들은 고난을 헤쳐 냈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미래를 위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얼어붙은 땅을 일궈 희망 씨앗을 심었고 그것이 자라 값진 열매를 맺고 있다. 구소련지역에 구축된 한상 네트워크에서도 사할린 기업가들은 선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사할린의 중심지인 유지노사할린스크시(市)의 경우 한인 기업가들의 납세액이 전체 세수입의 18%를 차지할 정도로 한인들의 경제력이 크다고 한다. 유통업, 숙박업, 건설업계는 거의 한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자랑도 잊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대로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느끼게 마련이다.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며 사할린이 더 이상 한과 눈물의 땅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희망해본다. 그것이 안산 사할린 고향마을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에게 덧 씌어진 또 다른 차별이라는 멍에를 벗게 하는 길이며, 아울러 미국 교포들처럼 사할린 동포를 동등한 눈으로 바라보고 제도와 인식을 바뀌나가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루건너 한 번씩 시계를 수차례 바꿔 맞추다 보니. 오늘이 며칠인지, 몇 시인지 가물가물하다.

#9. 언덕을 타고 흐르는 단아한 아름다움. 블라디보스톡

여행객이 겪게 되는 불행이 있다. 대부분의 여행지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볼 것은 많고 시간은 적다. 잰걸음으로 관광지를 돌아도 숙소로 돌아오는 배낭 속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특히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블라디보스톡이 그랬다. 

2007피스&그린보트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항해 마지막 날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며 갑판에 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침 일찍 기항지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자유여행을 나섰다. ‘동방의 진주’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러시아 극동 최대의 도시로 로마의 나폴리를 연상시킨다. O sole mio(오 솔레미오) 대신 모래시계 테마곡으로 더 유명한 Cranes(백학)을 흥얼거리며 오른 블라디보스톡 언덕은 피로 물든 전장에서 고향땅에 눕기를 갈구하며 한 마리 백학으로 변한 전우를 위로하듯 낮고 단아하게 앉아 있다. 

사람의 말소리에서 최대한 멀어지고자 떠난 나들이. 신혼 첫날밤 사내의 마음으로 시내관광 코스의 반대쪽에서부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셔터를 눌러댔다. 러시아풍의 박물관과 유럽에서나 만나볼 법한 한적한 거리. 언덕을 타고 오르는 키 작은 발코니와 번잡한 발소리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안톤 체홉의 동상까지. 너무 큰 아름다움은 오히려 슬프다.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노천식당에 앉아 맥주 한잔에 지친 다리를 달래며 동방으로 향했던 한 지도자를 생각했다. 시베리아 열차의 종착역에서 철로변 가득 피어난 해바라기와 자신의 남자를 기다려온 한 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전쟁의 땅에서 평화를 되뇌였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소음이나 스트레스,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만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힘을 통해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평화란 마음의 평정을 찾는 것. 끊임없는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통해 평정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으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찾아 나설 평화의 모습일 것이다.

#10. 바람과 별, 그리고 먹먹함에 익숙해지다

팽팽한 어둠이 실타래처럼 천지를 휘감고 있다. 완전한 어둠이다. 후지마루호의 미약한 불빛만이 허공에 뜬 보름달과 교감할 뿐이다. 비우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내 속 어딘가에 자라고 있는 원망의 그림자를 털어내기 위해 꾸린 봇짐이었다. 좀처럼 잠들기 힘든 밤. 유령처럼 선내를 떠돌며 보름간의 기억을 두 눈에 담는다. 

선내에서는 지구온난화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선내 캠페인 모습.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가슴에서 배어나오는 기억이 있다. 추억이라 말하기엔 가슴 저리고 그리움이라 부르기엔 아름다웠던 시간. 어쩌면 우리는 요코하마에서 캄차카를 거쳐 부산으로 온 여정을 떠난 것이 아닐 것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의 여행. 봄이 아닌 느낌의 여정. 채움이 아닌 비움의 시간을 함께한 것은 아닐까? 비행기 구석에 처박혀 고통 속에 도착시간만을 기다리기보다 천천히 바다를 바라보며 사람을 생각할 수 있었고, 종종걸음으로 관광지를 찾아 사진 찍기보다 옆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바람과 별, 그리고 먹먹함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2년 전 어느 날처럼, 요란한 모습으로 서울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를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언젠가 헤어진 인연을 떠올린다. 이별에 익숙해져야 하는 순간. 담담히 대양의 바람과 별, 그리고 지난 시간들을 떠나보내며 일상의 흔들림 속으로 모드를 재조정한다. 


송성수 본지 기획실장

 

제15호 11면 2007년 8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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