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피스·그린보트가 지난달 14일부터 28일까지 일본 하치노헤, 쿠시로와 캄차카 반도, 사할린, 블라디보스톡을 거쳐는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2005년 첫 항해를 시작한 피스·그린보트는 한·일 양국 각계 인사들과 시민들이 역사·사회·경제·환경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아시아 교류 프로그램이다. <시민사회신문> 송성수 기획실장이 이 여정에 동행했다. 피스&그린보트에서 찾은 성찰과 모색의 항해 일지를 연재한다. /편집자
#1. 끊임없는 선택의 길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매 순간 그러지 않은 때가 없다.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그랬고, 여행 짐을 꾸릴 때도 그러했으며, 심지어 요코하마항(港)을 떠나는 배 안에서까지 끝없는 선택의 길 위에서 주춤거렸다. 이 길을 떠나야 하나. 아니면 이쯤에서 멈춰야 하나. 서울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을 이루고 있었으며, 없는 살림에 밤낮을 잊고 사는 신문사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거둘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여행 가방을 풀지 못했으며, 긴 여정의 길에서 되돌아 올 수 없었다. 그것은 2년 전 ‘피스&그린보트(Peace·Green Boat)’에서의 다짐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폐부 속에 남아 있는 한줌의 욕심마저 깊고 푸른 바다에 모두 던져버리고 오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기대와 망설임을 주섬주섬 주머니 속에 밀어 넣으며 길 위에 섰다.
보름간 한일 600명의 시민의 보금자리가 되어 바다를 건넌 후지마루호의 모습 |
2007년 7월 14일 오전 9시 15분. ‘2007 피스&그린보트’ 일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으며, 후지마루호에서의 시간은 2007년과 2005년을 넘나들며 필자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했다.
#2. 느낌도 준비가 필요해
순간 최대 시속 202km에 달하는 초대형 태풍이 후지마루호의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낮게 가라앉아 있는 회색빛 도쿄 시내를 헤집어 놓은 강한 비바람은 이윽고 깊은 잠에 빠져있던 태평양을 흔들어 깨웠고, 포효하듯 으르렁대는 대양은 한 조각 작은 배를 집어 삼켰다. 대자연 앞의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흔들리는 배 안에서 몸소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9시간 남짓 후에 출항하였으나 바다의 경고에 인간은 속수무책이었다. 절반이상의 사람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배 멀미의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안전바를 잡고도 선내를 걷기 어려웠으며, 누렇게 뜬 얼굴을 한 사람들은 아예 방 밖으로 나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첫 번째 기항지인 하치노헤(八戶)에 이르러 바다의 노여움이 가라앉자 ‘후지마루호 식구’들과 ‘피스·그린보트 시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항 전 잠시 들린 메이지신궁에서 그랬듯 보는 것은 느끼는 것을 넘지 못한다. 처음엔 메이지신궁의 단아한 얼굴에 매료되지만, 잠시 후엔 전통복장을 하고 예를 드리는 사람들에 눈길을 빼앗긴다. 그러나 조금만 찬찬히 숨을 고르면 주위를 에두르고 있는 꽃과 나무와 교감할 수 있으며, 이내 수 십년을 이어온 건물의 숨결과 수 백년을 견뎌온 나무의 정령을 느낄 수 있다. 후지마루호와 피스·그린보트도 그렇다. 이제 바라보는 것을 넘어 서로를 느낄 출발선에 선 것이다.
#3. 신념은 욕망보다 강하다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고 그들의 삶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대로 좋은가, 잘못된 것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록카쇼무라(六ケ所村) 핵재처리시설 반대운동을 살펴보기 위해 가는 길에 일행에게 던져진 화두였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록카쇼무라 핵재처리시설은 일본 55곳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된 핵연료를 운반하여 우라늄을 농축하고 저준위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해 재처리를 하는 곳이다. 40여 년 전 낙후된 지역경제를 되살린다는 명분하에 진행된 무쯔오가하라(小川原) 개발정책의 이면에 핵재처리시설 계획이 비밀리에 계획되었으며, 그만큼의 진자로 반대운동에 직면한 곳이기도 하다.
건설사 사장은 ‘비즈니스 찬스’라고 한다.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세탁소 주인은 ‘그 덕분에 살고 있다’하고, 저명한 교수는 ‘최종처리시설도 돈만 많이 준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유치하려 할 것’이라 한다. 이들의 모습이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생각일지 모른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수 극렬주의자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정답은 하나만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 누구의 생각과 삶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정령 이대로 좋은가’라는 의문을 던져야 하며 어떤 인생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일행은 그곳에서 수십 년간 핵연료 재처리시설에 반대하며 살아온 칠순이 훌쩍 넘은 농부와 어부를 만났다. 4대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핵재처리시설을 위해 내줄 수 없다며, 외롭게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고이즈미 킨고(78) 씨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 그 힘으로 자신의 뜻대로 자연을 파헤치려 하는 것을 가슴 속 분노로부터 반대하고 있다”며 “순수하고 투명하지 않는 한 분노는 오랫동안 저항하지 못한다”고 역설했다. 하치노헤에서도 가장 작고 외진 토마리항(港)의 토미키치 사카이(82) 씨는 40여년 온몸으로 핵 재처리시설에 저항한 것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운동은 세계적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과 연결되어있다”고 호기를 부렸다.
인구 1만의 쇄락한 어촌마을, 80대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30, 40대 젊은 활동가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숙인 고개를 들기 어렵다. 지구적 시각과 세계적 비전을 갖고 현실에 대해 끝없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 이것이 지금 필자에게 필요한 삶의 몫은 아닐 런지.
#4. お元氣ですか
홋카이도(北海道)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섬이라는 인상에 하루정도 돌면 다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홋카이도를 생각할 때 마다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렸고 이번 기회에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
한마음으로 하나되어. 선상 체육대회를 통해 서로에 대한 간격을 좁히고 기쁨도 나눴다. |
후지이 이츠끼가 살던 작은 마을. 햇살 가득한 도서관 창가. 자전거의 낭만이 배어나오는 가로수 길과 기브스를 한 채 내달리던 운동장. 무엇보다 설산을 바라보며 절규하던 히로꼬의 뒷모습. 대충 홋카이도에게 이런 것들을 기대했던 것 같다.
대만 크기의 2배,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홋카이도는 보름가량을 다녀야 온전히 둘러볼 수 있으며, 일행이 도착한 쿠시로(釧路)는 이츠끼의 고향 오타루(小樽)와 반대 방향으로 동쪽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필자의 무지의 결과였지만 후지이 이츠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산산이 무너져 버렸다.
안개의 도시 쿠시로는 20세기 일본의 대표적 소설가 ‘이시카와 다쿠보쿠’와의 인연으로 ‘문학의 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람사조약에도 등록된 쿠시로 습원을 비롯해, 3개의 커다란 호수(아칸호, 굿샤로호, 마슈호)와 오호츠크해(海)에서 떠내려 온 빙하를 품고 있는 쿠시로는 혹독한 겨울의 고통을 견뎌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과 눈의 도시로 알려진 홋카이도는 맑고 청명한 고원지대에 푸르게 펼쳐진 감동의 언덕과 눈부시게 늘어선 은사시나무를 곁에두고 있다.
쿠시로엔 해발 1470m가 넘는 아칸이라는 이름의 2개의 산이 있는데 하나는 메아칸산으로 암컷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오아칸산으로 수컷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그중 메아칸산이 세상을 어지럽히던 마왕을 숨겨줬다는데, 그 벌로 하늘에서 이곳에 독한 냄새가 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황이고 때문에 지금도 메아칸산은 심한 유황냄새와 연기를 내뿜고 있다고 한다.
가을을 이야기하기에 아직은 너무 이른 7월의 중턱에서 갑판에 나와 윈드자켓과 장갑을 찾으며 홋카이도를 떠나 캄차카로 향하는 길목에서 가족에게, 친구에게, 선후배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외쳐본다. お元氣ですか.(잘 지내고 계시죠)
#5. 물위에서 뭍의 일을 근심하다
대저 사람의 한 평생 물 흐르듯 살라 했거늘, 물위에서 번잡한 일상을 걱정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대양의 하얀 속살을 헤치며 캄차카로 향하는 길목마다 온갖 시름들이 가로막고 있다. 사무실에 두고 온 기획안 때문일까? 서울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억측과 근거 없는 소문들 때문일까?
“지구 최초의 꿈틀대는 원시 대자연 체험. 캄차카 반도”라는 광고 문구에 매료되어 여행계획을 세우기 여러 해. 그 바람을 실현한다는 설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이놈들의 정체가 야속하기 그지없다. 돌아보면 이 세상 누군들 근심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문제는 그 근심의 속내가 아닐 런지.
어떤 이는 한국의 정치상황을 알지 못해 안절부절 하고, 어떤 이는 뉴욕 증시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한다. 어떤 이는 핸드폰 통화가 되지 않는 것에 불안해하고, 어떤 이는 고향마을에 일어난 지진피해를 걱정한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 잡혀, 긴 호흡으로 자신의 숨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이 모든 세상의 근심 위에 필자도 조용히 서울의 근심을 얹는다.
바다와 눈과 사막의 대자연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고 자연의 광대함과 우주의 영원성에 감동한다는 작가는 부다페스트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어머니의 땅으로 되돌아오면서 자연을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 생각했다 한다. “세상만물 모두가 스스로 그러하니 이제 방황을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때가 되었다”고도 느꼈다 한다.
삼라만상이 스스로 그러한 것일진대, 물에서는 물의 일을 살아가야 하며, 뭍에서는 뭍의 일을 근심해야 할 것이다. 내 안의 거북한 동거를 떼어내고 일체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여행을 통해 얻고자하는 깨달음이 아닐까?
제14호 10면 2007년 8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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